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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ㅋㅋㅋ 스님은 큰일났네”

중앙선데이 2015.04.05 03:02 421호 27면 지면보기
갓 출가한 스님들이 기본적인 불교교리를 배우는 승가대학은 상하관계가 아주 명료하다. 그래서 곧잘 ‘군대생활’에 비유한다. 전 과정이 4년인데, 특히 1학년과 2학년의 관계는 매서울 지경이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적어도 내가 다닐 땐 그랬다.

내가 군기를 잡았던 20여년 전인 2학년 때 일이다. 1학년 새내기 스님들이 잔뜩 입학했다. 당시 250명 정도가 살면서 공부를 했다. 새내기만 60명이 넘었다. 걷는 법부터 밥 먹는 법, 질문하는 법까지 출가자의 위의에 대해 가르치고, 잘못하면 곧장 경책에 들어갔다. 사자 없는 굴에 토끼가 왕이라고 3, 4학년과 어른 스님들이 안 계실 땐 2학년인 우리 반이 대장이었다.

그렇게 아랫반을 빡빡 잡고 있던 어느 날, 개나리·진달래가 지천으로 필 즈음 모두 소풍을 갔다. 장소는 호거산, 도시락은 우엉김밥. 음료수와 떡을 한 덩이씩 받아 걸망에 넣었다. 모두 사고 없이 무탈하게 돌아오게 해달라고 손을 모아 가볍게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새벽 예불시간에는 다 죽어가던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쩌렁쩌렁 산자락에 메아리쳤다. ‘키득키득’ 염불을 하면서도 웃음이 잔파도를 이뤘다. 드디어 산행 시작. 산위 암자에 기도하러 갈 때는 다리가 천근만근이더니, 소풍 가는 발에는 바퀴라도 달린 모양이다. 오르막도 평지처럼 가뿐하다. 산중턱에 이르러 모두들 둘러앉았다. 그토록 기다리던 ‘새내기 장기자랑’ 시간이다.

연극도 하고 노래도 하고, 짧은 시간이었을 텐데 1학년이 꽤 많은 것을 준비했다. 우렁찬 박수와 함성이 산속에 울려 퍼졌다. 나무도 산짐승도 귀 기울이는 듯했다. 흥이 한껏 돋을 즈음 사회자가 깜짝 놀랄 비장의 카드라며 마지막 차례를 소개했다. ‘무술시범’이란다. ‘태권도 유도 합기도’ 단수를 모두 합해 엄청난 국가대표급 유단자라는 부연설명이 붙자 다들 긴장한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판자에 벽돌까지 준비하는 것이 심상찮았다. 이때 한 여리여리한 스님이 긴 봉을 들고 나오더니, 갑자기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고 바람을 가르며 마구 휘둘러댔다. 땅도 안 짚고 재주를 폴짝 넘더니, 허걱! 이번엔 앞차기, 옆차기, 이단옆차기에 뒤돌려 차기까지…. 찰 때마다 상하 관계없이 모두의 얼굴이 움찔했다. 기합소리와 함께 여러 장의 벽돌을 격파할 땐 그야말로 얼음. 격파는 결정타였다. “이건 뭐지? 우리가 얻어맞는 것 같은 이 느낌?” 옆에 앉은 도반스님에게 말했더니, 스님 왈 “말도 마. 난 어제 저 스님한테 경책도 줬어.” “크크크크, 스님은 죽었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전직이 경찰교관이었다는 둥 태권도 선수였다는 둥 추측이 난무했으나 아무도 직접 물어보진 못한 모양이다. 출가 이전의 일은 전생사, 묻지 않는 것이 절 집안 예의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선배들을 긴장시켰던 스님은 그 뒤로도 변함없이 얌전한 새내기로 살았다. 그러나 그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달라졌다. 특히 1학년을 대하는 우리 학년의 태도만큼은 뭐~ 한결 부드러워졌다고나 할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면 궁금해진다. 산중턱 너럭바위 위에서 지금도 그 스님이 봉을 휘두르고 있지나 않을까 싶어서.

열심히 살아도 쉽게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미소 지을 수 있는 건 추억뿐이다. 그리고 그런 추억은 지금 이 자리에서 흔쾌히 살아낼 때, 즐기며 살아갈 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봄이다. 지금 이 순간을 한껏 즐겨보면 어떠한가.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와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사회와 접목시키고 있다. 현재 BBS 불교방송 ‘아침풍경’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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