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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내조 정치를 許하라

중앙선데이 2015.04.05 03:32 421호 31면 지면보기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아내 김정숙(61)씨가 인천 서구·강화을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 나섰다는 소식은 뜻밖이었다. 물론 정치인의 아내라고 선거 운동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린 이미 ‘정치인 내조’라고 명명돼 온 장면들을 숱하게 봐 왔다.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추운 날 김장을 담갔고, 보육원을 찾아가 아이를 안고 해맑게 웃었으며,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자기 남편을 위해서였다. 아무리 김씨가 “강화의 딸”이라곤 하지만, 남의 선거판까지 찾아가 두 팔 걷어붙이는 건 흔한 게 아니다. 이 정도면 가히 ‘전국구 내조’다. 남편이 당 대표가 되니, 내조 역시 대선주자급으로 커져야 하는 모양이다.

과거 이력을 보면 김씨의 이런 행보가 영 뜬금없는 건 아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책이 하나 나왔는데, 저자는 문 후보가 아닌 아내 김정숙씨였다. 제목은 『정숙씨 세상과 바람나다』. 당대표 경선이 치열했던 올 1월 대구지역 합동간담회에선 문 대표를 대신 참석해 정견 발표까지 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인 길을 가는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라며 “당을 총선 승리로 이끌 후보, 국민이 가장 사랑하고 원하는 후보가 누구입니까”라고 똑 부러지게 주장했다. 기성 정치인 못지 않았다. 성악가 출신인 덕인지 무대에서 전혀 주눅드는 법이 없다고 한다. 대중 친화력 등에선 오히려 문 대표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다.

오랜 기간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 아내’란 불편한 존재였다. 한편에서 “여자가 왜 이리 설치냐”는 소리를 피하려고 무조건 두문불출했다면, 반대편에선 아내의 치맛바람으로 나라가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5공화국 시절 “박사 위에 육사, 육사 위에 여사”라는 풍자는 그 절정이었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 정도 이뤄졌고, 다양성과 전문성에 대한 요구가 이만큼 늘어났다면, 정치인 아내에 대해 정형성을 강요하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일지 모른다.

미국 인기 정치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에서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의 최고 정치 파트너는 동지도, 로비스트도, 측근 보좌진도 아니다. 다름 아닌 아내 클레어다.

세련된 이미지로 남편의 저돌성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냉정한 판단으로 남편의 묘수를 추동해내곤 한다. 클레어까진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 정치판도 이젠 ‘그림자 내조’만이 미덕인 세상은 지나갔다.

선거 운동을 한다며 “도와주세요, 아시잖아요”라며 괜한 겸양을 떨 필요는 없다. 기왕 하는 거라면 지연·학연만 의존하지 말고, 민감한 사안에도 적극 발언하는 게 최근 트렌드와도 맞아 떨어진다. 혹시 아는가, 여성 대통령이 나온 마당에 한국판 힐러리 클린턴까지 조만간 나올지.


최민우 정치부문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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