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占은 일시적 위안 … 내면 변화 위해선 정신과 편견 버려야

중앙선데이 2015.04.05 00:58 421호 10면 지면보기
김현정 정신과 전문의는 “정신의학 선진국인 미국에서도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서는 상담이 활성화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나는 한번쯤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다』 책 표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부조종사 탓에 일어난 독일 저먼윙스의 항공기 추락사고를 계기로 정신 상태에 대한 불안감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위험분자로 돌변해 대형 사고를 저지르게 만드는 불안한 정신 상태. 이런 부조리한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최근 정신과 상담 치료에 대한 책을 쓴 김현정 정신과 전문의(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38)에게 현상과 원인, 그리고 대책을 물어봤다.

정신 흔들리는 시대, 정신과 전문의 김현정의 처방전

오늘날 학문 세계에서 정신 건강의 문제를 핵심적으로 다루는 분야는 정신의학이다. 『나도 한번쯤은 정신과 상담을 받고 싶다』는 책을 낸 그를 1일 중앙SUNDAY 회의실에서 인터뷰했다.

그에게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생활 최전방 전선에서 하루하루 싸우면서 살고 있는 게 우리 시민이다. 편견이 우리의 싸움을 더 힘들게 한다. 편견은 무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살기 힘든 것은 맞다. 물론 세상 자체가 바뀌면 좋지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결론적으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 모두 행복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행복을 위해 한번쯤 상담을 편안하게 편견 없이 받았으면 좋겠다. 의외로 정신과 내원을 후회하는 사람은 없다.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를 안 그래도 힘든 세상에서 소외되고 고립되지 않도록 소통의 통로로 활용해야 한다.”
 
-사람들이 정신과 상담을 회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진료 기록이 남는다는 것이다. ‘홍길동’이라는 가명으로 상담하면 안 될까.
“본인 이외에는 상담 기록 열람이 절대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알게 될까 두려워할 정도로 본인이 안고 있는 짐이 있다면 비밀을 지키겠다고 선서한 의사가 안전한 대상이다. 술자리에서 가볍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그 다음날 그 이야기가 회사에 다 퍼져 있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분이 겪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알려면 인간 정체성의 핵심인 이름까지 속여선 의미가 없다. 돈 낭비, 시간 낭비다. ‘내 친구가요…’라고 3인칭으로 이야기해도 안 된다. 효과를 보려면 솔직해야 한다. 기록에서 빼달라고 하면 다 빼준다. 자살이나 타살의 위험이 있는 사람은 직계가족, 타살의 대상에게 알리게 돼 있다. 그 외에는 절대 비밀을 유지한다.”

-정말 모를까.
“자신의 입으로 ‘나 정신과 다녀왔어’라고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관심이 없다. 요즘 사람들의 문제는 자신은 공감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데 남들에게 신경 쓸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마음은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자신 문제에 대부분의 사람이 파묻혀 있기에 이 사람이 시간을 비워 뭐 했는지엔 관심이 없다.”

변화 바라는 솔직한 사람이 치료 효과 커
-상담 비용은.
“한 시간 면담에 3만원이다. 피부미용 서비스를 받는 데 수십만원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소중한 정신에 그 정도는 투자해도 되지 않을까.”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라는 게 있나.
“내방자(client)를 보면서 정상과 비정상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든다. 우리가 인간의 마음을 완벽히 다 파악해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하라’고 규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떤 현상이 병리적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다. 이에 해당되는 분에겐 필요한 약물을 권해 신경전달계에 안정을 찾게 해드리고 대화를 통해 그분의 상태를 이해하거나 설명해 주는 것은 가능하다.”

-내방자와 면담을 통해 느낀 것은.
“사람은 모두 다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예상했던 것과 다르다. 때로는 진짜 ‘내가 이분 같아도 죽고 싶겠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는데 어느 날 굉장히 좋아진 상태로 찾아오기도 한다. 반면 잘 지내는 분인 줄 알았는데 비극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는다.”

-누구를 죽이고 싶다거나 아니면 자신을 죽이고 싶은 내방자도 약을 먹으면 효과가 있나.
“그렇다.”

-대하기 쉬운 상대와 대하기 어려운 상대가 따로 있나.
“제일 쉬울 때는 내방자가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다. 또 본인 스스로 생각할 때가 수월하다.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반갑다. 왜냐하면 스스로 변하고자 하는 의욕과 욕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사가 일일이 쫓아가서 그분들의 삶에 개입할 수는 없다. 제일 안타깝고 힘든 건 어린 친구들의 부모님들이 자아 성찰을 전혀 하지 못한 채 미성숙한 상태로 찾아오는 경우다. 성인의 경우는 ‘약만 달라’고 하는 경우가 힘들다.”

-알코올 등 뭔가에 중독된 경우는.
“뭔가에 중독됐다면 이미 신경전달 체계에 변화가 온 것이다. 그 물질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안 된다. 의지로 끊을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어렵다. 중독 치료는 자신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술을 10년간 끊었다가도 한잔 먹고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알코올 중독자 가족들이 오해를 좀 한다. ‘어떻게 아버지를 병원에 가두냐’는 것이다. 중독된 분들은 술만 마시지 안주를 먹진 않는다. 우리 몸에 필요한 필수영양소가 결핍되기 때문에 신체 기능이 원활할 수가 없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이 왜 패륜인가.
국가에서 인증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요법으로 보호해 준다. 그것이 ‘홀로 술 드시다 돌아가시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 나쁜 거냐’고 물으면 대부분 수긍한다. 3~6개월 정도 있어야 신체적으로도 많이 회복된다.”

일기는 자신의 생각 정리할 때 좋은 자료
-정신 상담의 최대 적은.
“편견이다. 정신과에 대한 이상한 편견 때문에 행복 지수가 낮다. 자살률 1위에 청년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다. 정신과 상담에 대한 편견과 무지, 잘못된 인식 때문에 많은 사람이 손해를 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급성장하면서 정서는 많이 등한시했다. 정서와 정신을 돌볼 때가 됐다.
하루 열 번은 꼭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약 먹으면 중독되는 것은 아닌가요, 정신과에 오래 다니면 바보 되는 건 아닌가요, 약 먹으면 미치는 거잖아요, 정신과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요, 약은 안 먹어야 되잖아요···. 정말 레코드판을 틀고 싶을 정도로 같은 질문을 하더라.”

-알코올 중독뿐만 아니라 ‘신앙 중독’도 나쁘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앙 중독 때문에 오는 분은 없다. 문제는 신앙으로 정신 문제를 이기려고 할 때 발생한다. 약으로 치료하면 ‘한 큐’에 될 것을 기도로 이기겠다고 기도원 다니고 묶고 때리고 하다가 정말 피폐한 상태로 입원하러 오기도 한다. 그런 분들은 ‘종교가 있으세요’라고 묻고 시작한다. 저는 대답을 안 한다. 왜냐면 섣불리 이야기하면 ‘당신하고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고 하나님은 또 인간으로 하여금 약을 만들도록 도와주셨다’고 하면 설득되는 분들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가끔은 목사님도 오신다. ‘현대적’인 목사님은 신도를 보내기도 한다.”

-정신과의 최대 라이벌은 어쩌면 점집이다. 벤치마킹할 것은 없을까.
“용한 점쟁이들은 ‘내방자’를 적절히 위로해 준다. 아들에게 집착하는 엄마에게 ‘아들에게 할 만큼 했으니 마음을 놔라. 때가 되면 제 구실을 할 것이다’ ‘엄마와 애가 상극이니 어쩔 수 없다. 이해하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오래가지 못한다. 영구적인 내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일시적인 위로는 되지만 말이다. 스스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고 힘이 생기게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정신의학이다.”

-일기 쓰기나 친구가 정신의학을 대체할 수 있는가.
“친구도 참 중요하다. 그러나 의존적인 사람은 자신을 착취하는 사람과 친구 관계를 맺기도 한다. 꼭 친구를 많이 둔다고 해서 바람직하지는 않다. 힘들 때 내게 와 줄 수 있는 사람은 있어야 한다. 일기도 자기 감정이나 생각의 흐름을 흘려 보내지 않고 문서로 남기기 때문에 나중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 할 때 좋은 근거 자료가 된다.”

저먼윙스 사고, 허무주의적 망상 탓일 수도
-경제적·물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정신적 문제의 태반이 해결되는 것은 아닌가.
“여러 연구에서도 나와 있지만 돈이 행복을 위해 적당히 필요하지만 행복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우리 ‘실버’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우울감·우울증을 체험하고 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신의학 단독으로는 안 되고 국가·사회·교육계·가정·의학계가 함께 나서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 사회가 성숙된 사회여야 하는데 정치하는 분들 중에도 인격 장애가 많은 것 같다.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고 저 자리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회가 성숙하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신과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게 안타깝다.”

-법적·제도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자살 예방만 해도 다른 나라에 비해 거의 100분의 1 정도의 예산만 쓰고 있다. 계속 떠드는데도 아무도 관심이 없다.”

-150명의 인명이 희생된 저먼윙스 여객기 사고는 왜 발생했을까.
“사고를 일으킨 이의 정신 상태가 허무주의적 망상(nihilistic delusion) 수준까지 내려간 게 아닌가 싶다. ‘다 필요 없다···’ ‘다 망할 것이다…’ 하는 환청이 들렸을 수도 있다. ‘나만 죽기 억울하다’는 감정이 원인이라고 보기에는 강도가 너무 세다. 아무런 숨소리 변화가 없었다고 보도됐다. 아무런 갈등·불안이 없었다는 것은 ‘내 할 일을 한다’는 심리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어라 죽어라… 너 같은 놈은 살 이유가 없어… 왜 너만 죽어 다 데리고 죽어…’라는 환청을 매일매일 들으면 실제로 환청이 시키는 대로 한다. ‘에잇 열 받아’ 수준과 다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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