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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쌓인 혼종 문화의 힘 가난함 속에도 잠재력 번득

중앙선데이 2015.04.05 01:21 421호 14면 지면보기
1 500년 쿠바 건축사가 하나로 녹아 있는 저택 팔라시오 데 바예.
“우리는 건물을 만들지만 그 건물들은 결국 우리를 만든다.”(윈스턴 처칠)

쿠바에서 본 쿠바의 미래 <2>

쿠바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쿠바의 건축이다. 몇 백 년 된 쿠바의 건축이 놀라운 것은 아직도 그런 건물에서 사람들이 산다는 사실이다. 건축은 단순히 주거용도를 넘어서 풍성한 삶과 문화가 싹트게 하는 토양이다. 그래서 건축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주민들의 정체성에 가깝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쿠바를 발견하며 스페인 식민시대가 시작됐다. 당시 스페인의 예술은 기독교와 이슬람, 유럽과 아랍 문화의 혼혈이었다. 이런 유행은 쿠바에도 흘러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원주민의 건축양식을 제외한) 쿠바 건축의 시초는 혼합 문화인 무데하르(Mudéjar) 양식이다.

신세계를 여는 열쇠로, 신구 대륙을 잇는 아바나는 빠르게 발전했다. 중남미에서 나온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이 전부 아바나를 거쳐 스페인으로 갔다. 담배·커피·설탕 같은 쿠바 특산품 역시 아바나에서 수출됐다. 오늘날 뉴욕을 봐도 알 수 있듯 자본이 있는 곳에 문화가 모이고 예술이 피어난다.

“무역 중심지였던 18세기 아바나는 보스턴이나 뉴욕보다 부유했고 리마와 멕시코시티에 이어 신대륙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았어요. 당시 ‘백금’이라고 불렸던 설탕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기도 했지요.”

식사를 함께한 쿠바의 역사학자는 자부심을 갖고 설명했다.

“상상을 초월한 부가 쿠바 전역에 퍼졌고 사치스러운 건축물들이 경쟁적으로 지어졌지요. 거기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통해 청나라 문물까지 들어와서 쿠바 문화는 더 풍성해졌죠.”

2 쿠바의 대표 건축물 영국호텔, 아바나 대극장, 엘카피톨리오가 모여 있는 아바나 도심을 달리는 오래된 차들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3 야구는 쿠바인들에게 일종의 신앙이다.
4 쿠바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산크리스토발 성당. 한때 콜럼버스의 시신이 안치돼 있었던 이 성당은 현재 아바나 대교구장 오르테가 추기경의 본부다. 쿠바=정승구
약관의 처칠 투숙했던 호텔도 건재
쿠바는 원래부터 메스티조 예술, 즉 유럽인과 원주민이 결합해 만든 건축이 자리 잡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일단 쿠바 원주민의 노동력은 질적으로 현저히 떨어져 아프리카 노예들을 써야 했다. 이와 더불어 현지에서 조달한 석회석은 질이 고르지 않고 화석까지 박혀 있었다. 이런 조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쿠바 바로크’라는 독특한 형식을 낳았다.

쿠바 바로크의 대표적인 건물은 ‘아바나 성당’이라 불리는 산크리스토발 성당이다. 예수회의 주문으로 1777년 완공된 이 성당의 매력은 거친 외관과 대비되는 부드러운 내부다. 약 50년의 시차를 두고 유럽에서 들어온 바로크가 현지에 적응하며 정체성을 찾은 결과인 듯하다. 좌우가 노골적으로 비대칭인 아바나 성당은 그래서 바로크보다는 로코코에 가깝다. 관능적으로 휘어지는 표면이나 구멍이 무성한 질감은 ‘엄숙한’ 분위기의 바로크 성당과는 거리가 멀다. 이 성당을 보고 있으면 왠지 바다 냄새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올 듯하다. 그래서 쿠바의 한 소설가는 “음악이 석재로 변한” 성당이라고 묘사했다.

1791년 아이티 혁명을 피해 쿠바로 온 프랑스 부르주아들과 1803년 루이지애나 구입으로 북미에서 온 프랑스인들은 쿠바에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전했다.

아바나 신구(新舊) 구역을 나누는 프라도 거리를 걸으면 묘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몇 차례 걷고 난 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거리 양 옆으로 늘어선 기둥들이 질서와 규칙을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연속되는 단순함에 마음이 안정됐고 사력을 다해 무거운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 하나하나가 안전을 상기시켰다. ‘안정’과 ‘안전’이 주는 균형미였다.

프라도 거리를 지나 도심으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영국호텔이 나온다. 이 19세기 신고전주의 건축물은 쿠바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다. 1895년 쿠바에 군사 참관인으로 온 21세의 처칠이 장기투숙한 곳이기도 하다. 처칠이 난생처음 시가를 피우며 봤을 19세기 말의 화려한 아바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마치 늙은 여배우의 화양연화처럼 알 수 없는 향수가 느껴진다.

영국호텔 바로 옆에는 20세기 초에 증축된 네오바로크 풍의 아바나 대극장이 있다. 쿠바가 자랑하는 국립발레단이 공연하는 곳이다. 그 뒤로는 미국 의회를 그대로 베껴 만든 미국발 신고전주의 엘카피톨리오가 거대한 원형 머리를 내밀고 있다.

이 세 건물을 배경으로 반세기를 넘긴 올드카들이 나란히 신호를 기다리는 장면은 언제 봐도 근사하다. 잊고 있던 전생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액션콜을 기다리는 시대극 영화 현장 같기도 하다. 미국과 유럽이 쿠바에 뿌린 문화가 고루 섞여 있는 그 광경은 혁명 전 근대 쿠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의 가난은 일시적 현상에 가까워
모든 건물은 부식하고 변한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행히 건축에도, 인간에게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예술의 본질이고 인간의 영혼일 것이다. 우리는 ‘그 무엇’ 덕분에 건축이 번역해주는 지나간 시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다른 세대와의 대화로 축적된 지혜로 만들어진 20세기의 변종이 바로 절충주의 건축이다.

쿠바 건축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절충주의의 꽃은 단연 ‘팔라시오 데 바예(Palacio de Valle)’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식당이 된, 시엔푸에고스에 있는 이 건물은 20세기 초 어느 설탕 귀족의 의뢰로 지어졌다. 무데하르식 아치와 신고전주의를 연상시키는 구조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내부는 마치 아랍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연분홍색 외관과 가시처럼 가느다란 에메랄드 철제 난간들이 저택을 더욱 섬세하게 잡아주고 고딕풍 아우라까지 풍겨 무어인 배트맨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은 상상이 펼쳐진다.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 실망스럽다는 것만 빼면 팔라시오 데 바예는 500년 쿠바 건축사의 아름다움을 한 번에 보여주는 위대한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세상에 행복과 아름다움만큼 모호하고 정의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둘 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과 아름다움의 본질은 통한다. 행복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다움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면 그 둘의 연결고리는 아마 예술일 것이다. 예술 중에서도 구체적인 실체가 있고 삶과 가장 밀접한 건축이야말로 행복과 아름다움의 정체를 이야기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쿠바인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지탱해주는 건축의 힘은 ‘순종’이 아닌 ‘잡종’이라는 특성에 있다. 쿠바는 500년 전부터 외부로부터 많은 자원과 다양한 문화가 유입됐다. 다양성은 아름다운 건축을 배출해냈다. 그래서 쿠바는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문화적으로 유복하다.

아니, 쿠바는 ‘가난’하지 않다. 그들이 겪은 20세기 말의 가난은 쿠바 역사에서는 일시적인 현상에 가깝다. 쿠바의 건축유산이 이를 증명한다. 쿠바가 시간이 멈춰버린 보물섬이라면 아바나는 그 섬을 지키는 왕자다. 왕자는 잠시 누더기를 입었을 뿐이다. 문화유산이란 그저 오래된 건물과 박물관을 채우는 소품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일부이고 인생을 즐기게 하는 교양이자 ‘행복의 기술’이다.

공원에선 열띤 야구 토론
아바나 도심 공원의 ‘뜨거운 모서리’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오후마다 야구광들이 모여 열띤 토론을 벌인다.

“댁은 어디서 왔소? 차이나?”
한 노인이 내게 물었다.
“한국이요.”
“북한? 남한?”
“남한이요.”
“그래? 거기도 펠로타(야구) 좀 하지.”
“시, 베이힝 올림피코!”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2008년 베이징에서 김경문 감독이 이끈 올림픽 대표팀이 결승전에서 쿠바를 꺾고 금메달을 땄던 일을 나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듣던 대로 쿠바인들의 야구 사랑은 신앙 수준이었다.

며칠 뒤 나는 아바나 팀의 개막전을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았다. 정규 시즌이 9월에 시작되고 홈팀이 3루 더그아웃을 쓴다는 것 외에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7회 말 팽팽한 2-2 동점에 1사 3루. 투수는 강속구를 연달아 던지고 있었다. 카운트는 투앤투, 변화구를 던질 타이밍이었다. 승부수를 찍기 위해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강속구의 투구폼과 동일한 체인지업이었다. 관중석에서 보기에도 공이 허공에 멈춘 듯했다. 그러나 노련한 타자는 기다렸다는 듯 그 느린 공을 정확하게 맞혀 적시타를 뽑아냈다. 짜릿한 통쾌함에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열광하는 관중으로 구장은 들썩였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행복이 무엇인지를.

행복은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이라는 것은 예측 불허한 반전과 기승전결이 있는 스토리 속에서 포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불행이 섞여 있는 드라마에서 행복을 쉽게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기술’일 것이다.

연속된 강속구 다음에 들어온 체인지업을 맞히는 타법은 요행도 우연도 아니다. 오랜 훈련의 결과물이다. 쿠바인들이 행복한 것은 일상에서 행복을 포착해내는 기술을 오래전부터 연마해 왔기 때문이다. 내가 사진을 찍어 순간을 간직하듯 그들은 일상 속 행복을 자유자재로 찾아내 느낄 줄 알았다.

어쩌면 내가 쿠바에서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것들은 한국의 일상에서 얻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불만인지도 모른다. 쿠바인들은 부유한 나라에서 온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들을 보면서 묘하게 슬펐다. 경제적인 유복함보다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봄이다. 한국의 야구 시즌이 시작됐다.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자. 과연 체인지업을 칠 수 있는지.



정승구 영화감독, 작가. 쿠바를 좋아한다.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하버드대에서 정책학을 공부했다. 장편과학소설『영원한 아이』를 썼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를 쓰고 연출하고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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