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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뱃속 세균 잡는 유산균 우울증·자폐증도 막아준다

중앙선데이 2015.04.05 02:26 421호 25면 지면보기
‘우울한 노인’ (빈센트 반 고호 작, 1890). 국내에서 중·장·노년층의 우울증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정신의학자들은 우울증이 배앓이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올해 3월24일. 150명의 승객을 태운 독일 여객기가 알프스에 추락했다. 사고당시 정황은 부기장의 자살비행을 추측하게 한다. 그의 집에선 정신과 치료권고 서류가 찢긴 채로 발견됐다.

2009년 조종사 자격 훈련을 마칠 때 이미 그는 심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 후 18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다. 자살자의 60%가 우울증 환자다. 국내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내가 아는 청년은 손목에 칼을 그었다.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진 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자살의 후유증과 공포 탓에 그는 잠시도 가족과 떨어져 있지 못했다. 가족이 그를 살린 셈이다.

날씨 따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듯이 우울한 기분은 누구에게나 생긴다. 자녀의 떨어진 성적, 아내의 잔소리, 상사의 질책으로 하루 종일 기분이 다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봄바람처럼 하루 이틀이면 우울한 기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문제는 지속되는 경우다. 도통 사는 재미가 없고 모든 일이 시시해지는 상황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일단 노란 색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게다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이 반복되고 자살이란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면 빨간 불이 켜진 위험상황이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에서 우울증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병원을 찾는 사람의 13%가 정신과 문제로 고민한다. 어떤 사람들이, 왜 우울증에 걸리는 것일까. 최근 정신의학자들은 우울증·자폐증·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이 배앓이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밝혔다. 배앓이의 주범인 장내세균이 내 머리를 좌지우지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정신질환을 예방하려면 내 뱃속의 장내세균들이 ‘맛’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일까.

예전부터 아이가 배가 아프다면 엄마는 아이의 배를 쓰다듬으며 “엄마 손은 약손, 네 배는 똥배”란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 말이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배를 쓰다듬을 때 두뇌와 복부 사이를 잇는 신경이 자극돼 통증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약손’은 임시처방이다. 뭔가 근본적인 조치가 없으면 아이는 배앓이를 계속 할 것이다. 배앓이는 설사·변비를 동반하고 이런 증상이 반복·습관화 되면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이른다. 특이한 점은 자폐증 어린이의 40~90%가 배앓이를 한다. 배앓이가 정신질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반증(反證)이다.

2015년 ‘국제 정신의학지(Psychiatric Research)’에 실린 결과에 의하면 뇌와 대장을 연결하는 신경망(網)에 장내세균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과정은 이렇다. 잘 유지되고 있던 장내세균의 균형이 병원균 침입, 음식 변화, 항생제 사용 등으로 깨진다. 튼튼했던 대장의 막(膜)에 균열이 생기면서 장 누출(漏出)이 일어난다. 장 누출로 대장의 독성물질이 혈액 내부로 침투해서 대장 전체에 염증을 일으킨다. 실제로 우울증·조울증 환자의 피엔 염증물질의 농도가 높아져 있다. 또 장내세균이 만들고 있던 유익한 두뇌 조절물질(GABA·BNDF)이 줄어든다. 그 여파로 평상심 유지 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우울증이 생긴다. 그런데 인간의 장내세균은 언제, 어떻게 자리 잡게 되는 걸까.

대장세포(회색)와 접해 있는 공생 장내세균 (대장균, 자색). 장내세균은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장내 세균은 균덩이 아닌 또 하나의 장기
조선 왕들은 ‘매화(梅花)틀’이라고 부르는 휴대용 변기에서 일을 봤다. 내의원의 어의(御醫)는 매화, 즉 분변의 냄새와 모양으로 왕의 건강을 체크했다. 건강한 황금색부터 이상이 있는 흑색·적색까지, 매화는 먹은 음식과 장내세균에 따라 변한다. 포유류의 경우 대장과 자궁이 가까이 있어 균(菌)의 이동이 가능하다. 따라서 태아는 출산 과정에서 엄마 자궁 속 균과 접촉하고 하루 지나면 대장에 균이 자란다. 이렇게 형성되기 시작된 장내세균은 계속 늘어나 성인에선 장내세균 무게만 1~2㎏에 달한다. 거의 뇌와 같은 무게다. 장내세균은 모두 1000여종에 이르며 인간보다 150배 많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사람마다 장내세균이 서로 달라서 장내세균은 마치 ‘개인지문’처럼 사용될 수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장내세균은 단순히 ‘균 덩어리’가 아닌 또 하나의 장기(臟器)다.

저명한 과학전문지인 『사이언스』(Science)엔 올해 장내 유익한 세균이 인체면역을 견디는 ‘특수방호복’을 소지하고 있다는 연구논문이 실렸다. 장내 유익균(有益菌)은 장내 유해균(有害菌)을 공격한다. 장내세균은 또 종류에 따라 ‘뚱뚱형’과 ‘날씬형’으로 구분될 만큼 소화대사에 깊이 관여한다. 게다가 면역의 ‘맷집’을 키워 신체의 과민반응인 알레르기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처럼 대장은 단순히 변(便)을 모아두는 창고가 아니라 면역ㆍ대사의 핵심센터다. 이런 대장은 정신질환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제2의 뇌(腦)’라고도 불린다.

장내 세균 물려줘야 진화에 유리
자폐증 환자를 다룬 영화 ‘말아톤(2005년)’의 실제 주인공 배형진 씨는 최연소 철인3종 경기 완주 기록을 갖고 있다. 또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레인맨(1988년)’에서도 자폐증 환자인 주인공이 숫자에 대한 특별한 기억력 덕분에 카지노에서 많은 돈을 따기도 한다. 이 두 영화에서처럼 자폐증 환자들은 때론 비상한 운동능력이나 집중력을 지닌다. 하지만 대다수 자폐증 환자들은 사회 적응력이 떨어진다. 진화학자들은 이들의 사회성 부족 원인이 비(非)정상 장내세균 탓이라고 해석한다. 장내세균 없이 태어난 쥐가 자폐증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그 증거로 내세운다. 자폐증 아이들에게 유독 장 누수 증상이 많은 것도 강조한다. 장내세균에 문제가 있으면 왜 사회성이 떨어질까.

미국에서 목조주택을 구입할 때는 먼저 흰개미가 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흰개미가 나무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미는 나무를 소화하진 못 한다. 장내세균이 대신 나무를 분해해 포도당으로 만들어준다. 반대로 개미는 나무를 분쇄해주고 장내세균이 거주할 장소를 제공한다. 둘은 짝짜꿍이 맞는 공생(共生)관계다. 모든 동물은 장내세균을 보유하도록 진화했다. 사람의 장내세균은 병원균을 막아주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소중한 장내세균을 자녀에게 빨리 물려줘야 진화에 유리하다. 그래서 과거엔 가족이 서로 뭉쳐 살았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가족과 사회를 이뤄야 다양한 장내세균을 후대에 쉽게 전달할 수 있다. 장내세균은 사회성 형성에 필수적인 존재다.

장내세균에 문제가 있으면 자폐증에 걸리기 쉽다는 주장은 이래서 나왔다. 다른 쥐들과의 접촉을 꺼리는 ‘수줍은’ 쥐들에게 교류가 활발한 쥐의 장내세균을 옮겨 봤다. 그 결과 수줍어하던 쥐들이 처음 보는 쥐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갔다. 이 연구결과는 자폐증 치료에 중요한 실마리를 던져 주었다. 사람끼리도 장내세균을 옮기는 일이 가능할까.

사람끼리 유익한 장내세균 교환 가능
지난해 미국 MIT 공대 생물공학 교수가 벤처회사를 설립했다. 공생세균 회사다. 이 회사에선 개인의 장내세균 조성을 검사한 뒤 비만ㆍ배앓이를 치료한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세균을 통째로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먼저 건강한 사람의 분변(糞便)을 물에 섞는다. 그리고 물 위에 뜨는 균(菌)을 모아 상대의 항문으로 주입하면 끝이다. 현장에서 맨투맨 방식으로 옮길 수도 있고 동결건조 후 보관해도 된다. 주사제가 아니어서 감염 위험은 적다.

지난해엔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사람 간 장내세균 교환을 의료행위로 공식 인정했다. 남의 분변을 받는다는 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고 비(非)과학적으로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위막성 대장염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 강력 항생제인 반코마이신보다 분변치료는 3배나 높은 효과를 보였다. 분변치료가 효과적인 이유는 설사의 원인이 단일 유해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해균·유익균 간의 ‘전투’에서 유해균들이 우세를 보인 탓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분변을 한번 옮겼다고 해서 장에 해당 분변의 균이 바로 자리를 잡는 건 아니다. 결국 분변을 받은 사람이 무엇을 먹는가에 달려 있다. 분변에 든 세균의 종류는 분변의 DNA 검사만으로도 알 수 있다. 먹는 걸 조절해 내게 맞는 최적의 장내세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간단한 방법은 유산균을 먹는 것이다.

티베트에서 만났던 유목민은 야크 우유 요구르트를 내게 건넸다. 이들은 산에 널려있는 약초와 섬유질을 수시로 먹었다. 아마 이들의 장은 세계에서 가장 튼튼할 거다. 그 때문인지 티베트 아이들은 까맣게 그을리긴 했지만 모두 건강해 보였다. 유산균을 먹으면 아이들의 장은 좋아진다. 늘 칭얼대던 아이에게 유산균을 먹였더니 보채는 시간이 줄어줄었다는 미국 의학학회(AMA)의 지난해 발표도 유산균의 장 건강 개선 효과를 뒷받침한다. 과학자들은 식이섬유·올리고당·유산균을 지속적으로 먹을 것을 추천하고 있다. 살아있는 유산균(생균제)을 먹으면 이중 20~40%가 위를 통과해 대장 건강을 돕는다.

대장 내시경에서 용종이 자주 발견되면서 난 유산균 요구르트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매번 사 먹기가 번거로운데다 가격이 비싸고 설탕 성분이 첨가된 것이 걸렸다. 그래서 요즘은 내 방식대로 직접 만들어 먹는다. 시판우유 1ℓ와 농후 발효유(50㎖)를 섞어 방에 놔두면 2~3일 만에 끈끈한 요구르트가 된다. 냉장 보관된 요구르트에 블루베리를 섞어 먹으면 맛도 최고다. 최근 연구결과는 이렇게 직접 만든 요구르트가 장내 유익균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준다. 요구르트 덕분인진 모르겠지만 내 몸에 지난 2년 동안 용종이 생기지 않았다. 장내세균을 잘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은 각자 장내세균 검사를 받은 뒤 유익균이 많아지도록 ‘개인 맞춤형 식단’을 짜는 것이다.

배앓이는 아이를 칭얼거리게 하고 두뇌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이가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하면 엄마는 배를 쓰다듬어 먼저 마음과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좋다.
『만들어진 우울증』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레인(미국 정신약물학자)은 수줍음까지 병으로 분류해 약 처방을 하는 과잉진료를 우려한다. 최근 전 세계의 정신의학계는 새로운 정신질환 치료방안으로 장내세균에 눈을 돌리고 있다. 장내세균은 인간이 지구상에 나온 후로 뱃속에서부터 늘 같이 지내온 ‘동료’다. 이들과의 공존의 지혜를 찾아내야 한다. 이제 엄마는 아이가 ‘배가 살살 아프다’고 하면 배를 쓰다듬어 먼저 마음과 통증을 가라앉혀야 한다. 그리고 매일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과 더불어 유산균을 먹도록 배려하는 것이 현명한 엄마다. 장내세균을 잘 관리해 정신질환을 치유하자. 그래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살률 1위 국가의 불명예를 씻자.

“산다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사는 즐거움이다.”

장님·귀머거리·벙어리의 3중고를 극복한 미국의 여성 사회운동가 헬렌 켈러의 말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테크놀로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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