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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억대 연봉자, 도쿄대 박사 … 9급 공무원으로 인생 리셋

중앙일보 2015.04.04 00:43 종합 13면 지면보기
9급 공무원 오현호씨. 올해 51세인데도 광주광역시 북구청 복지관리과에서는 막내다. 지난해 1월 신규 임용됐다. 국내 굴지의 통신회사 KT에서 23년간 일한 뒤 이직했다. 그는 “한두 해 선배들이 느닷없이 퇴직한 뒤 대책이 없어 방황하는 것을 봤다”며 “좀 더 오래 일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생각에 직장을 옮겼다”고 말했다.


말단 공직자로 옮기는 4050
“은퇴 선배들 방황하는 것 보고 결심”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 늘리고 싶어”
40세 이상 9급 합격자 4년 새 6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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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일곱인 김정훈씨는 지난해 12월 강원도 동해시청 전략산업과에 9급 신입으로 들어갔다. 동해시가 고향인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문부성 지원으로 도쿄대에서 박사를 받았다. 그 뒤 서울에서 유통업체에 근무하다 9급 공무원이 됐다. 김씨는 “늦게 얻은 다섯 살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여유 있는 직장을 택했다”고 했다.



 오래 일한 직장을 떠나 9급 공무원으로 새출발하는 40~50대가 늘고 있다. 일단 응시자가 확 늘었다. 정부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국가직 공무원 응시자 중 40세 이상은 2010년 2924명에서 지난해 8638명으로 3배가 됐고, 40세 이상 합격자는 같은 기간 21명에서 132명으로 6배 이상 됐다. 좀 더 오래 일하고 미뤄진 퇴직 때까지 퇴직 이후를 설계하며 가족들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려는 선택이다. 2009년 공무원 시험 응시에 나이 상한이 없어진 뒤 9급뿐 아니라 5급, 7급도 도전 가능하게 됐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험준비를 하기에 5, 7급은 버거워 9급에 몰리고 있다.



 서울 노량진의 공무원 수험 학원가에도 40~50대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7일 오후 8시가 되자 서류 가방을 든 40대들이 학원으로 향했다. N학원의 상담원은 “나 혼자만 하루에 9급 공무원이 되겠다는 40대 두세 명을 상담한다”고 전했다. 이날 W수험학원 1층에서 강좌 안내 전단지를 보던 A씨(48)는 “직원 둘을 둔 법무사인데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아 운영이 여의치 않다”며 “안정적이고 비교적 쉽게 될 수 있는 9급 공무원이 어떤지 알아보러 왔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된 40~50대들은 직장·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공직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해 12월 울산시 북구청 안전정보과 정보통신계에 9급으로 들어간 이상효(52)씨가 그런 평을 받고 있다. 이씨의 상사인 북구청 김재신 정보통신계장은 “처음부터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은 막무가내식 민원인을 대할 때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며 “하지만 이씨는 그런 민원인의 말도 끝까지 들으며 원하는 것을 찾아 해결하는 등 ‘진짜 서비스’가 무엇인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통신회사에서 23년간 일하다 공무원이 된 이씨는 “정년퇴직을 미루고 늘어난 기간 동안 기능대학에서 강의하는 인생 3막의 꿈을 이뤄보려고 9급 공무원이 됐다”고 했다. 그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과 달리 지금은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점에서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금융회사 애널리스트로 일하던 김상국(48)씨는 지난해 10월 9급 공무원이 됐다. 현재 대구시 서구청 청소과에서 쓰레기 민원을 담당한다. 김씨는 발령 직후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용 CCTV 11개의 위치를 조정해 쓰레기 발생량을 20% 줄이는 성과를 냈다. 그의 상사인 김천호 청소과 계장은 “하여튼 똑똑한 사람”이라며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했다.



 9급 공무원으로의 전직이 40~50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20~30대 중에도 9급 공무원으로 전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들도 더 안정적인 직장과 여유를 찾아 이직했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 화명정수장에서 일하는 정수빈(26·여)씨가 그렇다. 2011년 12월 LG전자 세탁기연구소 연구원으로 입사했다가 약 3년 만인 지난해 10월 공무원으로 길을 바꿨다. 정씨는 “실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결국 회사를 떠나는 상사들을 보며 직업을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군에 근무하다 2013년 11월 9급 공무원이 된 김상엽(35·충북 청주시 서원구청 총무과)씨는 “근무시간 내내 훈련을 하고 돌아오면 밀려 있는 행정업무와 지휘관 지시사항, 병사 면담 등으로 매일 야근을 해야 했다”며 “가족,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 그리웠다”고 말했다.



 9급 공무원 전직자, 그중에서도 특히 40~50대들은 나이 어린 상사를 모셔야 하는 고충을 겪는다. 상사들이 대접해 줘도 그렇다. 익명을 원한 50대 공무원 전직자는 “팀원들이 존댓말을 쓰면서 나이 대우를 해준다”면서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나를 어색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느껴져 나도 상사 대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사회 경력을 쌓은 40, 50대들이 9급 공무원이 되는 것이 청년 취업을 더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 조성주 인력기획과장은 “40대 이상 공무원 합격자 비중이 아직 5% 이내여서 청년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다”며 “그보다는 사회 경험을 행정 현장에 접목하는 순기능이 크다”고 말했다.



유명한·김윤호·박현영 기자 famouse@joongang.co.kr



[S BOX] 전 직장 업무와 연관성 따져 경력 인정 … 26호봉 받기도



직장에 다니다 9급 공무원이 되면 월급을 얼마나 받게 될까. 경우에 따라 다르다. ‘스카우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시험을 쳐 들어가는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 경력을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9급 공무원의 월 기본급은 128만2800원(1호봉)에서 281만5000원(31호봉)까지다. 여기에 급식비(월 13만원), 직급보조비(월 10만5000원) 같은 각종 수당이 최대 월 100만원까지 붙는다.



 일반 기업에서 일하다 공무원이 됐다면 일단 경력 인정에 따라 기본급이 달라진다. 기준은 전 직장에서 했던 업무와의 연관성이다. 통신회사에서 20년 넘게 일한 뒤 울산 북구청에서 통신업무를 맡은 이상효(52)씨는 경력을 모두 인정받아 26호봉(기본급 268만5000원)이 적용됐다.



 공무원연금 적용 여부는 복잡하다. 전 직장에서의 국민연금 납입 기간을 합해 20년이 넘으면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다. 온전히 공무원연금식으로 계산해 다 받는 것은 아니고,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납입한 기간 비율에 따라 연금을 계산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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