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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강한 시진핑 등장은 필연이다

중앙일보 2015.04.01 00:09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얼마 전 중국의 연례 봄철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끝났다. 양회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와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두 행사를 말한다. 양회의 주인공은 총리다. 전인대 개막일엔 두 시간 가까이 중국 전역에 생중계되는 정부 업무보고를 한다. 폐막일엔 500여 내외신 기자를 모아 놓고 전 세계를 상대로 중국의 국정운영 방침을 설명한다. 때론 외신 기자와 설전도 서슴지 않는다. 긴장이 넘치고 이를 현장에서 전하는 CNN에 세계의 시선이 쏠리곤 했다. 적어도 주룽지(朱鎔基) 5년과 원자바오(溫家寶)의 10년 세월이 그랬다. 그러나 리커창(李克强) 총리 들어선 그 열기가 예전만 못하다. 리커창의 존재감이 떨어져서다. 사실 리가 약해서라기보다 중국의 1인자 시진핑(習近平)의 무게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현재 마오쩌둥(毛澤東)이나 덩샤오핑(鄧小平)에 비견될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강성 이미지에선 덩마저 능가해 마오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시진핑은 왜 이렇게 강한 모습으로 다가서는 것일까. 혹자는 그가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 홍색 세대의 후대인 홍이대(紅二代)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선대가 일군 강산을 지켜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개인적 성품에서 원인을 찾는 이도 있다. 부친의 실각 이후 어려서부터 모진 고초를 겪으며 자랐기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석보다는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현시대가 강력한 리더십의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다.



 각 세대는 앞선 세대가 남긴 문제를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덩샤오핑은 마오와 같은 절대 독재자가 다시 등장하는 걸 막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다수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집단지도부를 구성해 국정을 이끌도록 지도 체제를 정비했다. 덩은 또 원로들이 장쩌민에게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자신이 솔선수범해 물러나면서 천윈(陳雲) 등 다른 원로들을 동반 퇴진시켰다. 그리고 장에게는 ‘핵심(核心)’이라는 지위를 부여해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과는 차별되는 리더십을 부여했다. 그러나 장으로부터 대권을 이어받은 후진타오(胡錦濤)에겐 그런 행운이 없었다.



 후진타오에 의한 치세(治世)는 흔히 구룡치수(九龍治水)라는 말을 듣는다.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다스리듯 정치국 상무위원 아홉 명이 중국을 이끌었다는 이야기다. 정치국 상무위원들에겐 각각의 영역이 주어졌다. 총리가 경제를 담당하고 정법위원회 서기는 공안(公安)과 검찰, 법원 등을 맡는 식이다. 서로 상대의 분야를 존중해 간섭하지 않는 게 미덕처럼 여겨졌다. 후안강(胡鞍鋼) 칭화(淸華)대 교수는 이를 집단 대통령제라 부를 수 있다며, 중국의 집단지도체제가 미국의 대통령제보다 더 효율적이며 민주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후진타오의 허약함을 대변하는 말이다. 후진타오는 장에게 주어졌던 ‘핵심’이라는 칭호를 받지 못했다. 또 그의 집권 10년 내내 장쩌민 등에 의한 노인정치(老人政治)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당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장쩌민에게 보고해 동의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후진타오 집권 2기에 들어선 그와 함께 집단지도부를 구성하는 여타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각기 나팔을 불며 서로 다른 노래를 부르는 양상이 벌어졌다. 총리 원자바오는 경제에 올인하는 대신 뜻 모를 정치 민주화의 구호를 부르짖는 일이 잦았고, 저우융캉(周永康)이 맡았던 정법 분야에는 ‘바늘 하나 물 한 방울 들어갈 틈이 없다(針揷不進 水潑不進)’는 독자 왕국이 세워졌다. 군부에선 장쩌민 사람으로 통하는 쉬차이허우(徐才厚)와 같은 인사들에 의한 매관매직이 횡행했다. 멀리 지방에서는 보시라이(薄熙來) 등이 중앙의 정책과는 아랑곳없이 공산당 예찬과 흑사회 때리기(唱紅打黑) 작업을 펼치며 개인적인 인기몰이에 나서기도 했다. 후진타오 시기는 한마디로 각 고위 인사가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고 이익 도모에 나선 시기였다. 군주가 약하니 신하가 군주를 능멸한다(主弱則臣欺之)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강한 시진핑 등장의 배경이다. 후진타오 집권 2기에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하며 후계자 수업을 받았던 시진핑으로선 1인자가 약한 폐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선 권력 분점의 효과를 내는 집단지도부의 구성원을 축소하는 데 착수했다. 후진타오 때 9명이던 정치국 상무위원 수를 자신이 총서기에 오르면서 7명으로 줄였다. 또 개혁심화소조와 같은 여러 소조를 만들고 스스로 조장에 올라 정책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친정(親政) 체제를 확립했다. 이어 원로가 연루됐건 아니면 군부가 관련됐건 성역을 가리지 않는 강력한 반부패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의 강성 이미지는 이렇게 해서 쌓인 것이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이 있게 마련이다(物極必反). 유약한 지도자 10년 세월을 보낸 뒤 중국은 시진핑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음 지도자는 현 지도자의 문제점을 가장 잘 적시하고 이에 대한 해법을 내놓는 자가 될 것이다. 민심이 그렇게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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