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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물감과 붓끝에서 나오는 또 다른 경제학

중앙일보 2015.03.31 00:20 종합 28면 지면보기
전수경
화가
그림을 파는 것은 짜릿하다. 그림을 구입하는 것은 뿌듯하다. 원하는 것을 구입하고 귀하게 파는 일은 시장의 완성이고 경제이론의 실현이다. 미술은 생존의 필요에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삶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는 대상을 화폐로 지불하는 행동은 경제상식 밖의 일이다. 그래서 미술품의 거래는 항상 특수한 사건으로 비친다.



 금융위기의 한파로 미술시장의 거품이 빠지던 2010년 초여름, 나는 청담동의 커피숍에서 한 여성 경영자와 야심 찬 남성 사업가와 합석했다. 나는 동료 미술가의 작품을 그 여성분에게 열심히 소개했다. 나의 설명이 채 끝나기 전에 곁의 그 남자분은 곧장 친구의 작품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제대로 된 정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얼핏 그의 결정은 무모해 보였다.



 지난해 11월 서울옥션의 홍콩 경매에서 제프 쿤스(Jeff Koons)의 작품 ‘꽃의 언덕’이 무려 24억4800만원에 낙찰됐다. 그것은 작은 앉은뱅이 밥상 정도의 크기에 꽃과 이파리를 유리로 유치하게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것은 유일한 작품이 아니다. 동일한 에디션이 두 점이나 더 생산됐다. 그중 한 점은 영국 에든버러의 국립 스코틀랜드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 낙찰가는 너무 황당해 보였다. 이렇게 비싼 작품이 예금보험공사가 부실 저축은행에서 압류한 것이라니 더 그랬다.



 미술품 거래의 비일비재한 무모함과 황당함은 미술품이 여타의 상품과 달리 경제의 논리와 시장의 생태에 정확히 일치하지 못하는 특성 때문인 것 같다. 일찍이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그림의 생산가로 그 판매가를 가늠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손을 놓았다.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역시 미술을 그의 ‘노동가치론’에서 예외로 취급하며 건드리지도 못했다. 기껏 스탠리 제번스(Stanley Jevons) 정도가 그의 ‘한계효용론’에서 “어떤 상품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능력이 크면 클수록 그 가격이 높다”고 했지만, 그가 말하는 욕망은 측정할 수 없고 또한 주관적이기에 한계를 갖는다.



 최근엔 문화 경제학자들이 미술품 거래에서 발생하는 측정 불가능해 보이는 그 애매함에 도전하는 것 같다. 특히 향락이나 욕구 충족의 가격을 산정하기 위해 ‘향락의 가격함수(hedonic price functions)’를 이용하는 게 눈에 띈다. 네덜란드의 경제학자 올라브 펠투이스(Olav Velthuis)는 이를 도구 삼아 2005년 네덜란드 미술시장의 가격결정 기준을 설명한 적이 있다.



 하지만 향락을 계측하는 이런 시도는 고가의 명품이나 부동산, 고급 승용차의 수요와 그 거래를 설명하는 데 그친다. 그리고 이들은 구매자의 욕구 충족과 함께 소비된다. 반면 미술은 소비되지 않고 남는다. 여기에다 미술품 거래 역사에서 돌발적인 구매는 숱하게 등장하고, 쿤스의 작품처럼 황당한 가격에 거래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 행동과 가격에는 일말의 맹목적 선택까지 엿보인다.



 예술이 세상의 변화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은 아니다. 홍콩에는 ‘아트 수퍼마켓’이 있다.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예술품에 다가서고 선뜻 지갑을 열도록 만드는 새로운 장터다. 사실 그 원조는 25년 전 스위스 바젤의 니티만갤러리다. 독일의 기욤 바일이 자신의 전시장을 수퍼마켓처럼 꾸며 누구든 마음에 드는 작품을 쇼핑 카트에 담아 사 가도록 시도했다. 예술가와 관람객 사이의 보이지 않는 거리가 좁아졌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예술시장을 ‘가진 자들의 리그’로 여기는 분위기다. 오래전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을 때 가장 부러웠던 장면은 장바구니를 든 중년 부부들이 가벼운 차림으로 그림을 구경하던 모습이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소품을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값에 선뜻 구입하기도 했다.



 우리도 그런 풍경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아트 수퍼마켓’까지는 아닐지라도 예술작품과 소비자 사이의 문턱이 낮아졌으면 한다. 그림이 마음에 들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눈이 머는 것과 같다.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일 수 있다. 그림을 팔 때의 짜릿함과 그림을 살 때의 뿌듯함을 단순한 거래관계나 경제이론으로만 설명하려는 게 부질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전수경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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