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방주가 만난 사람] “약물 원료산업 개척 15년 … ㎏당 30억원 제품 만들어”

중앙선데이 2015.03.29 04:46 420호 10면 지면보기
김재일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교수가 용매 용기를 들고 펩타이드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보형 객원기자
광주과학기술원 생명과학과 김재일(56) 교수는 독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뭔가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과학자이자 사업가다. 과학자로는 세계 최정상급 과학학술지 네이처를 비롯해 100여 편의 국제 논문을 발표했다. 사업가로서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부로부터 초기 자금을 지원받아 기업을 살려냈다. 2000년 광주과기원에서 창업한 교수 중 유일하게 올해 주식시장 상장을 앞두고 있다. 학문과 사업 두 가지를 그는 모두 잘하고 있다.

산학 융합으로 통증치료제 개발한 광주과기원 김재일 교수

 그의 저력은 실력을 바탕으로 한 독기와 치열함인 듯하다. 그가 30여 년간 연구해 온 학문과 사업 아이템이 동일한 것도 이 두 가지를 잘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김 교수의 학문 분야는 생리활성 펩타이드의 제조 및 기능 분석이다. 인체는 단백질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몸을 빌딩에 비유하면 그 원료인 아미노산은 벽돌, 펩타이드는 벽돌을 몇 개 또는 수십 개 쌓아 만든 중간 조립 부품이다.

펩타이드 약물 원료 국산화해 대량 생산
펩타이드로 만든 신약은 전립선암·유방암·골다공증·당뇨병 등 각종 질병에 탁월한 효과를 내면서도 기존 화학합성약물에 비해 부작용이 아주 적다. 세계적인 제약업체들이 너도나도 펩타이드 신약 개발에 나서는 이유다. 그러나 펩타이드 신약은 개발하기가 어려워 이제야 50여 개 약품(시장 약 120억 달러·약 14조원)이 시판되고 있을 뿐이다. 초기 시장 확대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펩타이드 약물의 핵심 원료인 생리활성 펩타이드 소재를 전량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 교수가 대표로 있는 ㈜애니젠은 외국에서 특허가 끝난 펩타이드 약물 원료를 독자기술로 국산화해 대량생산하고 있다. 펩타이드를 냉동 건조하면 백색 분말이다. 사과상자 서너 개 분량 정도는 돼야 무게가 1㎏이다. 그 값은 몇 억원에서 30억원에 이른다. 애니젠은 ㎏당 30억원 정도의 신경병증성 통증치료제인 지코노타이드를 개발해 수출용으로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다. 지코노타이드는 국내 보험 약값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비싸 외국에서만 팔리는 펩타이드 약물이다. 이 밖에 애니젠에서 개발한 펩타이드 약물로는 유방암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신경병증성 진통제, 요실금 치료제 등이 있다. 그의 공장에선 하얀 눈처럼 보이는 펩타이드 분말이 소리 없이 동결 건조되고 있다.

 김 교수는 펩타이드 약물 원료산업을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단히 뿌듯해한다. 그는 “노다지나 다름없는 하나의 약물 원료산업을 국내에서 처음 시작해 사업 시작 15년 만에 결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부 창출에도 앞으로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애니젠 상장을 앞두고 그는 수백 통의 전화를 받는다. 애니젠 주식을 상장 전에 자신들한테 싸게 팔라는 친구나 친척, 지인들의 전화다. 김 교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애니젠 직원 49명 중에는 초창기부터 같이 일한 사람이 20여 명에 이른다. 김 교수는 그동안 아무런 관심도 없던 사람들보다 고생한 직원들이 부자가 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애니젠을 일구기 위해 번 돈 대부분을 투자했다. 지금도 월세로 살고 있다. 한번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 애니젠을 일구는 과정,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방암·당뇨병·요실금 치료제도 개발
그가 펩타이드와 인연을 맺은 것은 30년 전 부산대 석사과정 시절이다. 거기서 펩타이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한 뒤 국내 민간기업에 잠시 근무하다 일본 도쿄대로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일본 미쓰비시에서 펩타이드 의약품 연구개발을 담당했다. 미쓰비시에서 약 5년 근무하면서 연구실적 평가에서 1등을 했다. 하루 4시간을 자며 미쓰비시 사원주택과 연구실을 오가는 것 외에는 모든 시간을 연구에 쏟아부은 결과였다. 미쓰비시 연구소장이 그에게 일본 귀화를 권유하기도 했으나 그는 자식들 때문에 거절했다. 그 당시만 해도 그는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미쓰비시에 오래 근무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기회는 곧 찾아왔다. 도쿄대 약대에서 조교수 자리를 제안해 그쪽으로 옮겼다. 미쓰비시는 휴일근무를 하면 대체휴가를 쓰도록 하고 있는데 김 교수가 사직서를 낼 때 남아 있던 대체휴가 일수가 250일 정도였다고 한다. 휴일과 평일의 구분 없이 연구에 매진했던 것이다. 미쓰비시에서는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도쿄대로 옮긴 이후에도 사원주택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이후 광주과기원에서 그를 스카우트해 지금에 이르렀다.

 사업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던 그가 벤처기업 세계에 뛰어든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벤처 바람 때문이다. 우수한 연구성과를 사업화해야 한다며 2억원씩의 초기 사업자금을 정부가 지원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삼성이 애니젠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로 하고 계약까지 맺었다. ‘애니젠’이라는 회사 이름도 휴대전화 ‘애니콜’ 신화의 영향을 받은 삼성의 제안으로 지어졌다. 잘나가는가 싶던 애니젠은 삼성이 대기업 투자제한 규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휘청거렸다. 계약을 백지화했던 탓이다. 다행히 국내 벤처 캐피털의 적극적인 투자 지원을 받고, 전라남도에서 공장건물을 지어줘 위기를 극복했다. 공장 건설비는 지금도 갚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40여억원이다.

석·박사 과정 제자 10명과 함께 연구
괜찮은 펩타이드 원료물질 10개 정도만 개발해 시판하면 연간 1000억원 매출은 거뜬할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다. 그만큼 시장 전망이 밝다는 것이다. 일본 다케다가 개발한 전립선암 치료용 펩타이드 신약은 한 제품으로만 연간 3조~4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전망이 허황된 것 같지는 않다. 회사에는 김 교수의 친인척이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무엇이든 냉정하고 독하게 해야 성과가 나온다는 게 그의 행동 수칙이다.

 그가 가장 개발하고 싶어 하는 펩타이드 약물은 ‘먹는 치료제’다. 경구용 펩타이드라고도 하는데 세계적으로 아무도 개발하지 못했다. 펩타이드 치료제는 모두 주사제다. 먹으면 소화액에 의해 분해돼 약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경구용 펩타이드도 어느 정도 연구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지도하고 있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은 10명. 이들과 함께 개발한 기술은 대학을 통해 애니젠으로 기술 이전한다. 물론 기술료를 대학에 지불한다. 은근슬쩍 기술을 애니젠으로 빼돌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자신의 연구실과 애니젠 간에는 확실하게 선을 그어놓고 있었다.

 그는 하루에 담배를 두 갑이나 피우는 ‘골초’가 됐다. 벤처를 하기 전에는 하루 반 갑 정도 피우던 것이 계속 늘었다. “해야 할 일이 많으면 담배 피울 일도 많다”는 게 그의 변명이다. 그의 휴일을 가족에게 돌려줄 수 있는 날이 그리 빨리 오지는 않을 것 같다. 



박방주 교수=중앙일보에서 20여 년간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했으며, 2009~2012년 한국과학기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가천대 전자공학과 교수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