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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 이심전심 … 뇌파로 비행기·로봇 조종

중앙선데이 2015.03.28 22:01 420호 1면 지면보기
마인드 컨트롤 머신 뇌의 전기신호를 이용해 작동하는 기계장치다. 뇌 신경세포는 전기신호로 정보를 주고받는데 특정 이미지를 떠올릴 때 방출되는 신호 패턴을 명령어와 연결해 기계를 조종하는 원리다. 뇌 특정 부위에 칩을 이식해 전기신호를 직접 수집하거나 두피 등에 센서를 부착해 전기신호를 측정한다. 손실된 신체를 대체하는 로봇 팔·다리 같은 인공기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손을 대지 않고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종할 수 있을까. 공상과학 속 ‘초능력’이 21세기 첨단과학을 입고 ‘기술’의 범주에 들어왔다. 생각이 곧 동력이 되는 ‘마인드 컨트롤 머신(Mind Controlled Machine)’이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하반신 마비 청년이 이 기술 덕에 개막식을 ‘기적의 시축’으로 장식했다. 로봇 다리(외골격·exoskeleton)를 신고 특정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방출되는 뇌파로 다리를 움직여 공인구 ‘브라주카’를 멋지게 차 날렸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제다이가 정신집중 훈련을 통해 생각만으로 비행기를 움직이는 것처럼 파일럿의 뇌파를 기계와 연결하는 신개념 조종시스템이 전 세계 연구실 곳곳에서 잇따라 시도되고 있다.

SF영화 속 ‘마인드 컨트롤 머신’ 현실화

뇌파 감지하는 센서 달린 헬멧 쓰고 상상
마인드 컨트롤 머신은 뇌-기계 상호작용 기술(BMI·Brain Machine Interface)을 기반으로 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두피에 전극을 접촉시켜 뇌 활동에 따라 변하는 뇌파를 측정하는 방법이다. 또는 손·다리의 동작을 제어하는 뇌 특정 부위에 임플란트처럼 칩을 이식해 뉴런의 전기신호를 이용한다. 두 가지 모두 뇌의 신호를 해석해 명령어와 연결시켜 기계를 조종한다.

 예를 들어 무인 헬리콥터를 조종하는 과정은 이렇다. 조종사는 뇌파를 감지하는 센서가 달린 헬멧을 쓴다. 그 다음 머릿속에서 손바닥을 쫙 펴는 상상을 한다. 헬리콥터를 왼쪽으로 이동시키려면 양손을 위로, 반대쪽으로 이동시키려면 양손을 아래로 내리는 상상을 하는 식이다. 이미지에 따라 변하는 뇌파 신호는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명령어로 해석한다. 해석된 신호는 헬리콥터에 전달된다. 헬리콥터를 원활하게 조종하려면 뇌파를 강화하는 집중력 훈련이 필요하다.

 학계·산업계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뇌 비행(brainflight)’ 프로젝트는 마인드 컨트롤 머신의 실현 가능성을 입증했다. 올해 초 포르투갈에서는 조종사의 뇌파만으로 드론을 조종하는 테스트가, 지난해 독일 뮌헨공대에서는 생각만으로 모의 비행기를 이착륙시키는 실험이 시연됐다. 이들은 몇 개월에 걸친 뇌 훈련으로 컴퓨터 스크린에서 작은 원을 그리거나 비행기를 상하좌우로 움직이는 기술을 습득했다. 기술을 시연한 무인항공기 업체 ‘테케버(Tekever)’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리카르도 멘데스는 “뇌파를 이용한 조종이 항공 분야의 혁신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론 조종 시연 당시 테케버는 이 프로젝트로 장애인의 조종 기술이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마인드 컨트롤 머신은 전신마비 환자나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환자에게 신체를 대체하는 기술로 주목받는다. 뇌파로 움직이는 로봇 다리, 로봇 팔이다. 2012년 피츠버그대 의학센터는 9년 동안 사지마비 상태였던 환자가 로봇 팔을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팔과 손의 동작을 제어하는 뇌 부위에 전기 신호를 감지하는 칩을 이식했다. 96개의 접촉점이 있는 0.75인치 크기의 정사각형 전극 2개다. 칩을 통해 특정 동작을 행하려는 생각과 이때 나타나는 신경 패턴의 관련성을 분석해 명령어로 적용했다.

 올해 초에는 이보다 한 단계 진화한 로봇 팔 제어시스템이 의학학회지 ‘랜싯(Lancet)’에 실렸다. 피츠버그대 실험에서는 로봇 팔이 환자와 독립돼 있었지만 이번 빈대학 연구팀은 팔을 절반 가까이 절단한 환자에게 로봇 인공 손을 이식했다. 손을 움직이려는 뇌 전기 신호가 절단된 팔 부위 근육을 거쳐 로봇 손에 전달된다. 환자들은 생각으로 통제하는 로봇 손 훈련을 통해 조리도구로 요리를 하고 컵에 물을 부을 수 있게 됐다.

리모컨 조작 않고 TV 채널 맘대로
로봇 신체를 조작하는 것을 넘어 뇌파로 가전을 컨트롤하는 일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로열필립스’와 ‘액센추어’는 뇌파로 조명을 켜거나 TV를 조작하고 메일을 송신하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신체마비 환자가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뇌를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로 뇌파를 포착해 소프트웨어에 전달하면 필립스의 스마트 전구·TV 제품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다. 뇌과학 전문가들은 2025년이면 생각 신호로 조종하는 무인 탱크·비행기가 군사작전에 투입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뇌파 정보 유출 막는 기술 개발이 숙제
남은 과제는 정밀한 기술력이다. 뇌파 인식 오류로 인한 오작동이 걸림돌이다. 몸이 간지럽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등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잡음이 발생해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른 뇌파의 평균 진폭·파장을 제어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창의미래연구소 이승민 실장은 “기술이 상용화하려면 시간이 지나도 동일한 성공률이 보장돼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축적된 성과가 없다”고 말했다. 뇌와 관련한 기술인 만큼 까다롭다는 것을 방증한다.

 뇌과학 분야는 인간의 민감한 부분을 다루는 분야다. 뇌파 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해 악용하는 것을 막는 해킹 방지 기술도 고민해야 한다. 동의 없는 마인드리딩·뉴로해킹으로 개인정보를 불법 유출할 가능성이 있다. 여러 실험에서 뇌파 감지장치로 개인정보나 생각을 수집하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익숙한 숫자(암호)를 보면 뇌파의 특정 패턴이 강력히 나타나는 식이다. 이승민 실장은 “칩 이식으로 인간의 신체를 침습하거나 시험하는 등 부작용 우려가 크므로 이와 관련된 안전·윤리 이슈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민영 기자 t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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