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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밥과 친구가 있는 학교

중앙일보 2015.03.28 16:03
지방대학 교수였던 어머니에게 내가 먹을 1주일 치 도시락을 미리 챙겨주시는 것이 큰일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니 두 배가 필요해, 같은 반찬을 담은 도시락들로 냉장고가 가득 찼다. 한 주 내내 같은 메뉴였지만 솔직히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친구들과 책상을 붙여 도시락 반찬을 나눠먹었다. 숟가락 하나 들고 ‘빈대’ 붙는 친구가 오면 반찬 위에 침을 뱉어 방어했다. 나름 학창시절 공부는 웬만큼 한 편이지만 돌이켜볼 때 공부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들과 밥을 함께 먹던 일은 생생하다.



그 기억을 일깨워준 일이 있었다. 내게 찾아오는 10대 환자 중엔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이 문제인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는 가족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왕따 피해자도 아니었다. 공부는 잘 하지 못했지만 열린 마음의 부모는 다행히 아이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신과적으로 우울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부모가 겉으로 보기엔 게임만 하고 학교를 툭하면 빼먹는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게임이 너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상담 중에 아이는 “학교는 재미없어요.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학교에 왜 가야하죠?”라고 물었다.



그 순간 내 생각의 흐름이 탁 멈췄다. 돌아보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가 혼연일치 돼 달리고 있는 학교에서 이 아이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잘못한다고 분해하지도 않는다. 다만 흥미가 없을 뿐이다. 노력은 해봤지만 쉽사리 성적이 오르지 않고 이미 망친 내신이라 4년제 대학에 들어가기 어려운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런 입장이니 아침에 학교에 가 우두커니 교실에 앉아 무슨 말인지 모를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여길 만했다. 솔직히 반박할 논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리 싫어도 학교는 다녀야지”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육시스템에선 소수의 상위권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에게 학교생활은 그저 들러리일 뿐이기 쉬운 현실이니 말이다.



그때 떠오른 것이 내 고등학교 때 기억이었다. 마침 그 아이도 친구들과는 잘 지내고 있었다.



“이제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학교는 밥 먹고 친구 만나러 가는 거야. 우리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이와 부모는 처음엔 어리둥절해 했다. 만일 학교란 공부만 하는 곳이라면 소수의 우등생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좌절의 공간이 된다. 그러니 학교의 목적을 따뜻한 점심 한 끼 먹고, 친구들 만나 사회성을 기르는 곳으로 보면 더 많은 아이들이 등교의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요즘 난 단어 몇 개 더 외우는 것보다 적절한 사회성을 획득하는 것이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는 걸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수많은 우발적 폭력들도 사회성의 결핍으로 일어난 일이라 볼만하다. 말이 통했는지, 다행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그래도 전보다는 자주 등교를 하기 시작했다. 이 같이 난 더 많은 10대가 학교를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선 학교 가는 목적을 필요하다면 과감히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가는 곳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 명제는 앞뒤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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