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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후에라도 가족 찾겠다" 2만여 명, 유전자 채취 원해

중앙일보 2015.03.28 00:17 종합 12면 지면보기
이산가족의 눈에 고인 저 눈물. 우리의 아픈 역사가 만들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잊고 산다. 분단 70년의 비극이 이산가족에겐 지금도 현재진행형임을. 우리가 직시해야 할 엄중한 현실임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안다. 당장 부치지 못한다는 걸. 수년이 지나도 끝내 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현장 속으로] 분단 70년 … 그 아픔 기록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한 해 많게는 수천 편씩 제작되는 편지가 있다.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이름은 분명한데 받는 사람 주소가 없는 편지. 받는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는 편지. 바로 이산가족이 북한에 살아 있으리라 믿는 가족을 향해 보내는 영상편지다.



 통일부·대한적십자사가 지원해 신청자에 한해 제작되는 이 편지가 벌써 8044편이 쌓였다. 이 중 휴전선을 넘은 건 2008년 남북 합의에 따른 20편뿐. 그래도 1만2800명이 촬영 순번을 기다린다.



 이들이 차례가 오길 기다리는 건 또 있다. 유전자 채취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라도 후손이 북의 가족을 확인해주길 바라서다. 지난해 시작된 이 사업으로 1211명의 유전자가 모아졌는데 2만여 명이 더 원한다.



 물론 이산가족이 가장 바라는 건 상봉이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1988년 이후 상봉을 신청했던 12만9668명 중 6만2028명이 가족을 못 만나고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3000여 명, 올 2월에만 676명이 사망했다. 내년에는 상봉 신청자 중 생존자보다 사망자 누계가 많아질 전망이다.



 올해는 분단 70년이다. 길게는 70년간 가족과 생이별한 이의 아픔을 이산가족 아닌 사람이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영상편지를 만들면서, 유전자를 채취하면서, 상봉 신청서를 정리하면서 이산가족의 애끓는 마음을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점차 ‘어떻게든 이산가족이 남기려는 말을 제대로 담고자’ 밤을 새우고, 딸에게 “네가 엄마를 50년간 못 본다면 어떻겠니”라 묻게 됐다. 이들의 이야기를 각자의 목소리로 정리했다.



 



 ◆“영상편지는 시대의 아픔에 대한 증거” 정주영(37) KP커뮤니케이션 PD=처음엔 그냥 ‘일’이었다. 그저 찍고 편집하면 되는 줄 알았다.



 지난 2년간 이산가족을 100명 넘게 만난 지금은 달라졌다. 이 일을 하면서 한 가지 원칙이 생겼다. ‘이분들이 남기려는 모든 말씀을 담는다’.



 그게 가능하냐고?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일을 해보면 안다. 왜 그런 원칙을 세울 수밖에 없는지.



 한번은 헤어진 가족과 금방 만날 것처럼 기뻐하며 촬영에 응한 분이 있었다. 한창 편집하는데 전화가 왔다.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영상을 빨리 받아볼 수 있습니까. 장례식 때 쓰고 싶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래도 촬영했다면 운이 좋은 경우다. 분명 자료엔 ‘생존’이라 돼 있는데 연락하면 세상을 떠난 분이 많다. 촬영 직전 “돌아가셨다”는 연락도 받아봤다.



 촬영 날이면 이들에게 영상편지가 어떤 의미인지 더 잘 보인다. 댁에 가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셨거나 단장에 신경 쓴 티가 역력한 어르신들이 맞아주신다.



 자기소개, 살아온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하다 헤어졌을 때 상황을 말한다. 여든이 넘은 어르신들이 감정에 북받쳐 눈물 속에 말씀을 잇지 못한다. 물론 어쩌다 가끔 “누구야, 보고 싶다”며 애써 웃으며 말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극히 일부다. 눈물 없이 이야기하는 분은 드물다.



 가장 많이 하는 말씀이 뭔지 아나. “살아서 만나자”다. 그런 말씀을 반복한다. “제발 건강히 살아만 있어라” “난 여기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라”…. 그러다 이런 말도 나온다. “자식들, 후손들이라도 만나라. 좋은 날이 오면, 너희들이라도 꼭 만나서 지금까지 헤어져 살았던 한을 풀거라”고.



 이렇게 찍다 보면 반나절을 훌쩍 넘길 때도 있다. 했던 말씀을 또 하거나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시기도 한다. 아픔을 다시 건드리는 건 이렇게 힘들다. 이를 10여 분 분량으로 편집하려면 밤새우는 건 각오해야 한다.



 그래도 쉽게 편집해버릴 순 없다. 이들이 이렇게 아파하는 건 이들 잘못이 아니어서다. 바로 우리 역사 때문에 이렇게 아프신 거여서다.



 이들의 증언을 남기는 건 내게도 중요하다. 이렇게 우리 역사로 아픈 이들이 있었음을 후손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촬영본을 다 보관한다. 시대의 아픔에 대한 증거이자 기록이니까. 같은 일하는 동료 30여 명도 한마음인 것 같다. 모이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 역사가 이렇게 슬픈 줄, 이런 분들이 곁에 있는 줄 몰랐다”고. “꼭 통일이 돼야겠다”고.



영상편지 촬영하는 카메라 든 정주영 PD(사진 위). 유전자 보관 냉동고 앞에 선 황춘홍 대표(가운데). 영상편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 관리하는 허정구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 팀장.
 ◆“유전정보 기록은 남북이 하나였다는 뿌리 찾기” 황춘홍(45) 다우진유전자연구소 대표=영하 80도. 우리가 채취하는 이산가족의 혈액, 머리카락, 구강 상피세포가 보관되는 초저온 냉동고의 온도다. 최대한 오래 유전자 검체를 보관하기 위한 환경이다. 통일이 돼야 이를 활용할 텐데, 그게 언제쯤일지….



 유전자를 얻으러 어르신 댁에 가면 사후에 가족을 찾기 위해 하는 일이어서인지 이런 말씀을 많이 한다. “살아서는 못 만나도, 죽어서라도 가족을 찾고 싶다” “북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수 있는데 어머니 뼈, 무덤이라도 찾고 싶다”고. 그러면서 많이 우신다.



 사실 연세가 있는 분들이라 모근이 약하다. 머리카락 뽑는 게 따가울 텐데도 자꾸 더 뽑으라 하신다. 혈액도 젊은 사람에 비하면 조금씩밖에 안 나온다. 그래도 우리한테 “고맙다” “감사하다”고 하신다. 그런데 나중에 자녀들에게 전화가 오는 경우가 많다. 혹시 부모가 보이스피싱 같은 데 당했는지, 유전자가 범죄에 이용되진 않는지 걱정한다. 그만큼 그 의미를 모르는 이가 많다. 내용을 알아도 채취를 반대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채취하라는데 자제분이 전화해 “우리는 그런 것 안 한다. 통일되지도 않을 건데 왜 내 DNA를 나라가 관리하게 해야 하느냐” 한다. 어떻게든 가족을 찾고 싶어하는 부모를 자녀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딸에게 이야기해봤다. “남북 간 전쟁으로 가족과 헤어진 분들이 있는데, 너도 엄마를 50년간 못 본다면 어떻겠니.” 딸은 “마음이 아프시겠다”고는 한다. 하지만 과연 실감할 수 있을까. 나도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다. 그 아픔을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다.



그래도 이산가족 유전정보를 기록하는 건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이라 난 믿는다. 피로 연결된 가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 북한이 남이 아닌 거다. 사실 말로만 북한이 동포라 하는 건 소용없다. 이산가족 자녀도 이해 못하는데 인연 없는 후손은 북한이 같은 핏줄이라 더 생각 못하지 않겠나. 통일돼야 한다는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산가족을 보면 남북이 하나였다는 걸 실감한다. 유전정보를 기록하는 건 그런 뿌리를 찾는 일이다.



 ◆이산가족 기록을 총괄하는 허정구(48)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장=이산가족들에게 영상편지 제작, 유전정보 보관을 얼마나 원하느냐고 물었다. 영상편지는 1만6824명, 유전정보 보관은 2만1914명이 원했다. 이게 무슨 의미겠나. 생전에 북의 가족과 연락은 어려울 듯하니 포기하고 사후에라도 가족을 찾겠다는 이가 더 많은 것 아니겠나. 그래도 나를 포함해 우리 팀 4명은 제작되는 영상편지를 전수 검사한다. 당장 전달은 못하지만 언젠간 전할 수 있는데 편집 실수가 있어선 안 돼서다. 몰입해 보면 눈물이 절로 난다.



 지난달엔 이산가족 13명이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새로 등록했다. 이 시스템에 지금 등록했다는 건 이산가족 상봉을 이제 신청했다는 뜻이다.



 왜 이제야 신청하느냐고? 사실 등록된 12만 명은 이산가족 중 일부다. 혹시 북의 가족에게 해가 될까 봐 그런 등록조차 조심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다 세상을 떠나며 자녀에게 “북의 가족을 찾아라” 유언을 남긴다. 그래서 자녀가 뒤늦게 상봉을 신청한다.



 하지만 이산가족의 기억은 자녀도 잘 모른다. 분단이라는 역사적 아픔을 직접 겪은 이들이 살아계실 때 어떻게든 기록을 남겨야 한다.





[S BOX] 상봉 신청서 보관 환경 열악 … 일부는 물에 젖어





이산가족 관련 기록물이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될 수 있을까.



 1983년 제작된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가 올 6월 결정된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분단 70년과 이산가족에 대한 관심을 다시 높일 계기”라고 한다.



 반면 상봉조차 못한 남북한 이산가족 관련 기록은 아직 관심도 못 받고 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은 “오히려 상봉도 못하고 처절한 삶을 살아온 이산가족 자체가 남북 분단의 실존 아니겠나”라며 “그들의 삶이 적극적으로 기록돼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에 친인척을 둔 국내 이산가족은 71만 명으로 추산된다. 2005년 시작된 영상편지 제작 등은 이산가족 일부의 증언이라도 남길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수요를 못 따라간다. 이산가족이 대부분 고령이라 매해 3000여 명이 사망한다. 예산 당국은 이런 점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일까.



 이미 작성된 기록의 보관 환경도 열악하다. 이산가족 영상편지 8044편, 이산가족이 88년부터 직접 손으로 작성한 ‘남북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 수십만 건 등이 모두 서울 남산 기슭 적십자사 건물의 13.2㎡(약 4평) 남짓한 방에 보관되고 있다. 본지가 이산가족 찾기 신청서를 살펴봤더니 일부는 물에 젖어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영상편지는 소형 테이프→DVD→USB 등 매년 형태가 바뀌어 제작되긴 하지만 처음 만들었던 소형 테이프 등은 박스째 쌓여 있었다. 이산가족의 유전자도 민간 연구소가 보관 중이라 체계적인 공적 관리가 필요하다.



글=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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