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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이 만난 사람] 연정 실험 100일, 남경필 경기지사

중앙일보 2015.03.28 00:07 종합 14면 지면보기
“경기도 연정(聯政·연합정부)이 통합정치의 성공적 모델이 될 것이다.”


권력 내려놓으면 더 커져 … 여당, 총선 이기면 야당에 부총리 줘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얼마 전 남경필(새누리당·50) 경기지사를 찾아가 이렇게 덕담을 건넸다. ‘남경필의 연정 실험’을 공개적으로 칭찬한 것이다.



 연정은 낯설다. 사전적 의미론 ‘의원내각제에서 다수당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때 다른 정당과 협력해서 구성한 정부’를 뜻한다. 한국정치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다.



 경기도의 연정 실험이 100일(3월 16일)을 넘어섰다. ‘지도에 없는 길’을 찾아낸 주연은 남경필 지사다. 갓 100일을 넘긴 연정 실험. 그는 무엇을 얻었으며 어디로 가려는 걸까. 궁금증을 안고 지난 24일 남 지사의 집무실을 노크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연정을 제도화·안정화하는 시기였다”며 “가시적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내려놓지 않으면 연정을 못한다. 그런데 권력을 내려놓으면 정말로 권력이 더 커진다”고 했다.



 남 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다수당이 되면 부총리를 야당에 주고, 새정치연합이 다수당이 되면 야당에 총리 추천권을 넘겨서 임기 말 안정적인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권력은 썩는다. 감시받고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경필 경기지사. 뒤편엔 연리지를 형상화한 ‘경기도 연정나무’가 보인다. [김경빈 기자]


 -연정으로 얻은 게 뭔가.



 “정치적으론 ‘연정이 되겠어?’ 하던 데서 ‘아, 가능하네’라는 인식이 생긴 게 소득이다. 그러나 연정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정치가 안정되고 투자나 경제성장으로 이어져 일자리가 생기는 선순환되는 구조를 만들자는 건데 성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전체 일자리의 44%를 경기도에서 만들었고 올 들어 2월까지 54%를 만들고 있다. 국내외 여러 기업에서 투자 의향이 들어오고 있다.”



 -연정 때문이라고 보는 건 성급한 판단 아닌가.



 “온전히 연정 때문이라고만 볼 순 없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을 떨어뜨려 기업활동 하기 좋은 조건이 마련됐다는 게 중요하다. 연정협의체에서 합의되는 정책은 약간의 조정은 있겠지만 거의 통과된다는 걸 보여줬다. 지난해 대한민국 전체로 10조원의 세수가 줄었는데 경기도는 1조5000억원이 더 걷혔다. 연정 효과라고 본다.”



 -연정은 어떻게 운영되나.



 “도지사 선거 때 여야가 공약한 것 중 합의 가능한 공통분모를 추려 20개 항의 연정 정책합의문을 만들었다. 마을공동체 복원, 따복마을 조성과 야당 공약이던 생활임금, 공공 산후조리원 설치 등이 포함됐다. 야당 출신인 이기우 사회통합부지사와 경기도의 양당 지도부, 도청 집행부들로 연정실행위원회가 구성됐는데 여기서 연정 정책을 어떻게 실현할지 논의한다.”



 -그렇게 복잡한 연정을 왜 하나. 여소야대 의회가 아니었어도 연정을 제안했을까.



 “연정 제안은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 선거 중에 했다. 부지사를 야당에 주겠다고 했다. 여소야대가 되면서 필요성은 더 절박해졌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권한을 줬다. 인사권도 상당히 줬다. 사회통합부지사에게 6개 산하기관에 대한 인사추천권을 보장했다.”



 -지사 권한의 일부만 준 것 아닌가.



 “하다 보니 6개 분야 이외 인사도 이 부지사와 협의하게 되더라. 도 공무원 인사는 내가 거의 관여 안 한다. 3명의 부지사와 기조실장·자치행정국장이 합의하면 받아들인다.”



 -정치쇼다, 야당이 들러리서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사라졌나.



 “지금도 있다. 지금 연정은 법적 근거가 없는 정치행위다. 연정하면 좋다는 인식을 확산해 법·제도적으로 구조를 짜도록 하는 게 남아 있다.”



 -어려웠던 일은 뭔가.



 “도 정부 출범(2014년 7월)하고 6개월가량을 기다렸는데 그때가 제일 힘들었다. 야당은 물론 우리 당 안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마냥 기다리다 안 되면 시간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 하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새정치연합의 김태년 경기도당위원장의 도움이 컸다.”



 경기도는 새로운 ‘예산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4월 3, 4일 31개 시장·군수, 도의회 상임위원장단, 경기도의 국장급 이상 간부가 합숙하면서 경기도의 예산 방향을 설명하고 도 의회의 의견을 반영해 예산 편성을 협의할 것이라고 한다. 광역 화장장 문제 등 시·군 간에 갈등이 있는 이슈에 대해선 양보하는 곳에 예산을 추가 지원해주는 인센티브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도지사 재량으로 쓸 수 있는 돈이 그렇게 많나.



 “세금을 거둬 나라에 내면 일종의 수고비인 시책추진비를 준다. 지난해엔 2000억원가량 썼다. 이 돈을 알뜰하게 쓰고 지사가 자기 기분 덜 내면 된다.”



 -연정정책 1호가 생활임금이다. 적용 범위를 놓고 갈등이 여전하다.



 “도가 직접 고용하고 있는 750여 명에게 (최저임금의 130%를 인상하는 방안을) 적용, 올 예산에 20억원을 반영했다. 4월에 생활임금 조례도 통과시킬 것이다.”



 -야당은 민간으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민간 부분에까지 강요할 순 없지만 폭은 더 넓힐 거다. 연정협의체에서 논의 중이다.”



 생활임금이란 근로자들의 생활 향상을 위해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일종의 복지제도다. 노동계는 생활임금을 민간 기업에까지 확대하길 바라고 있다. 생활임금이 관철되면 최저임금 상승을 견인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를 남 지사가 수용하고 있는 까닭은 뭘까.



 “저소득층 근로자의 생활수준과 임금을 올리지 않고는 경제 엔진에 불을 붙일 수 없다. 왕창 올릴 순 없지만 폭은 넓혀야 한다. 민간으로 넓히려면 대기업의 이익이 중소기업으로 흘러들어가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이 임금을 올려줄 여지가 생겨야 가능하다. 경기도지사 차원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 모델을 만들려 한다. 법도, 공권력도 없으니까 설득해야 하는데 설득에 시간이 걸린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으로 파장이 일고 있다.



 “이해는 안 가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과거엔 프레임을 짜고 갈등을 일으키고 부각이 되고 거기서 정치적 이득을 보는 리더십이 많았다. 나도 그랬다. 이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평소엔 임금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다가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하는 리더십이 지금 필요하다.”



 -무상급식·무상보육 정책이 포퓰리즘 논란에 휘말리고 있다.



 “지금의 복지 수준이 과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의 문제는 성장률의 문제가 아니고 내수시장이 죽어 돈이 안 도는 게 문제다. 어떤 정책을 써 파이를 키울 것이냐에 주력해야지, 이렇게 됐으니까 무상급식을 줄이는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건 하수(下手)다. 무상급식 때문에 나라가 이렇게 된 게 아니고 나라가 이렇게 되니까 무상급식이 문제가 된 거다.”



 -홍 지사와는 다른 접근이다.



 “생각의 차이다. 위기가 오면 근본적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정치인이 있고 뭔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 희생양은 잠깐의 대리만족일 뿐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다. 마치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게 나라의 근본을 바꾸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프레임 정치다. 여기엔 보수언론의 책임도 있다.”



 -언제 연정 구상을 하게 됐나.



 “독일 공부를 하면서 에르하르트 총리를 다시 보게 됐다. 에르하르트는 사회적 시장경제와 질서 자유주의를 심어 전후 독일의 새로운 시스템을 짠 사람이다. 독일이 강국이 되는 바탕이 된 독일의 구조를 설계했다. 에르하르트가 고민했던 것처럼 한국 정치인은 앞으로 70년 갈 체제와 구조를 바꾸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르하르트 총리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해진다.”



 -5선 의원 출신 도지사다. 대통령의 꿈은 없나.



 “당연히 꿈이 있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자리가 아니다. 한국정치의 틀을 바꾸는 사람, 틀을 바꾸려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중앙 정치에서도 연정이 실현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총선 후 의석 수에 따라 새누리당이 다수당이면 총리나 부총리 하나 정도를 야당에 주고 야당이 다수당이면 총리 추천권을 넘겨서 안정적인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임기 말에 대통령이 일을 못하고 지나가는 건 아깝다. 대통령이 연정의 틀을 짜서 야당의 협력을 얻으면 국가가 잘 굴러갈 것 같다.”



 -차기 대선 때 연정이 화두가 될까.



 “모든 대선후보 진영이 공약으로 내걸거나, 거기까진 안 가더라도 질문은 받지 않겠나. 그러면서 현실화되지 않겠나.”





[S BOX] 이기우 경기 부지사 “남경필 들러리? 정책에 야당 의견 반영하며 상생”



경기도 연정 실험의 조타수는 이기우(49) 사회통합부지사다. 성균관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경기도의원을 거쳐 17대 열린우리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 국회의원을 지냈다. 지난해 경기도의회 투표에서 8대 1의 경쟁을 뚫고 부지사에 당선됐다.



 -역할이 뭔가.



 “양당 대표와 함께 연정실행위원회 공동 대표를 맡아 연정 정책 합의문을 어떻게 실현할지 논의한다. 연정의 2차 과제를 찾아내는 논의도 하고 있다. 재정전략회의 의장으로서 재정건전성 여부, 중장기 재정 운영 비전, 내년 예산 방향을 잡는 것 등을 논의한다.”



 -‘남경필 들러리’란 반대 여론도 상당한데.



 “당연히 그런 여론이 있다. 새누리당은 우리 자린데 왜 야당에 주느냐고 하고 야당에선 우리가 다수당인데 왜 들러리를 서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합의에 의해 연정이 된 거니까 단순히 자리를 주는 게 아니고 생활정치 영역에 우리 당의 정책을 반영하는 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만족도를 매긴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제도화·안정화는 빨리 자리 잡은 것 같아 70~80점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선거를 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연정 참여가 약점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저 혼자 욕심으로 하는 게 아니고 중앙당·도당·도의회가 함께했다. 서로 스크린하면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상생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나.



 “1차 임기가 내년 6월까지다. 선거 나가려고 부지사하는 게 아니다.”



글=이정민 정치·국제 에디터 jmlee@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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