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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태초에 요리가 있었다

중앙일보 2015.03.28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17세기 화가 클라라 페테르스(Clara Peters) 가 그린 ‘게, 새우 그리고 가재가 있는 정물.’ 당시 귀족들의 화려했던 음식 문화를 보여준다. [그림 다른세상]


탐식의 시대

레이철 로든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 세상

584쪽, 2만4000원




음식의 언어

댄 주레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어크로스

408쪽, 1만7000원






하버드대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에 따르면 요리는 거의 200만 년 전에 시작됐다. 도구를 사용한 직립원인인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하면서다. 영국 출신의 음식·역사·정치 연구가인 『탐식의 시대』 지은이는 “직립으로 손을 자유롭게 쓰게 된 바로 그 인류”가 손으로 도구를 사용해 요리를 해먹으면서 비로소 문명이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인류는 ‘호모 요리쿠스’라는 얘기다.



 『탐식의 시대』는 요리가 제국의 탄생과 권력 이동, 종교의 확산 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살펴본 일종의 ‘음식 문명사’다. 요리는 인류를 다른 생물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만들어줬다. 침팬지는 음식을 씹는 데 하루 다섯 시간을 소비한다. 하지만, 인류는 요리를 통해 부드럽게 한 음식을 먹게 되면서 먹는 데 들이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 소화에 시간이 덜 들뿐 아니라 흡수하는 에너지도 더 많아진다. 인류는 이렇게 얻은 잉여시간을 창조적인 일에 투입해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요리는 그 자체로 문화가 됐다. 맛을 더해줬기 때문이다. 피 맛이 나는 날고기는 불에 익으면서 육즙이 풍부한 스테이크가 됐다. ‘음메’하고 우는 소가 자연이라면, ‘지글지글’하는 스테이크는 문화다. 인류가 지리적인 영역을 전 세계로 확장한 것도 요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지역의 동물과 식물에서 얻은 양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고 가공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인류의 시간과 공간은 확대됐다.



 고대부터 요리는 문명을 주도했다. 요리사는 문화와 과학을 주도하는 창조적 존재였다. 사람을 맛있게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은 곧 권력이 됐다. 고대 중국 탕왕의 요리사였던 이윤은 재상에 올랐다. 요리사는 농부들이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요리를 제왕에게 올렸다. 신분과 존귀함은 먹는 요리가 좌우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서사시 『길가메시』에는 까다로운 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정성스럽게 차린 제물 이야기가 나온다. 요리는 신을 모시는 의전의 하나였다.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수메르의 도시 우르크에서 제작된 설화석고 꽃병을 보면 제관이 이난나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과일과 곡식이 담긴 바구니를 옮기는 장면이다. 곡물과 함께 버터와 맥주도 보인다. 이렇듯 요리는 신을 경배하는 의식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제사 뒤 제물을 먹는 것은 인간이 신과 교신하는 행위로 여겨졌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된 설형문자 점토판 중에는 그런 요리의 레시피 기록이 수두룩하다. 인류가 발명한 문자의 초기 용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이처럼 ‘신의 요리책’을 만드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에도 인류는 다양한 요리를 즐겼다. 설형문자로 기록된 빵의 종류가 300가지가 넘을 정도이니 말이다. 곡물 가루 반죽을 커다란 도기 단지의 안쪽 면에 붙여서 만드는 제빵 방식은 지금 중동에서 ‘난’을 만드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의 요리 문명 탐구는 동서와 고금을 넘나든다. 인류의 첫 잉여농산물이던 보리는 닌카시 여신에게 바칠 맥주로 만들어졌다. 보리와 맥아로 만든 맥주를 ‘기쁨의 원천’이라고 찬양하는 건 현대에서 ‘마시자, 한 잔의 술’이라고 외치는 것과 일맥상통해 보인다. ‘입안을 채워주는 귀부인’이라는 뜻의 닌카시 여신은 고대 세계에서 맥주의 여신으로 숭앙받았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양젖으로 만든 치즈나 요구르트에 올리브 기름이나 참기름, 또는 포도즙과 대추야자로 만든 감미료를 가미해 먹었다. 이 감미료와 벌에서 얻은 것을 모두 꿀이라고 불렀다. 성경에 나오는 ‘꿀’이 반드시 양봉의 산물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힌트다.



 먹는 문화는 인도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원전 800년에 나온 경전 『야주르베다』의 기도문은 “바라건대 이 제사로 저를 위해 젖과 수액, 액상버터, 꿀이 풍성하게 나도록 해주소서”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오늘날에는 요리 재료가 아니라 이를 구입할 돈을 바라는 마음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제국의 불교 요리는 고기와 알코올을 피하고 쌀과 설탕을 중시했다. 고기가 넘치던 고대의 제사문화가 종교에 의해 결연하게 단절됐다. 채식 위주에 술을 멀리 하는 오늘날 인도 음식 문화의 뿌리다.



 알코올을 금지한 이슬람은 허전한 혀를 달랠 고기요리와 풍부한 디저트의 음식 문화를 발전시켰다. 커피 문화도 융성했다. 이슬람 세계의 커피와 디저트는 15세기 오스만 튀르크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지면서 세계의 식탁을 풍성하게 했다. 오늘날 점심 식사 뒤 커피전문점에 앉아 즐기는 음료와 다과의 뿌리는 이처럼 멀고먼 여정을 거쳐 온 것이다. 인류 문명사는 곧 요리의 역사다.



 와인·토스트·케첩·칵테일 등 이제는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즐기는 식음료 이름의 근원과 유래, 변형의 과정을 따져보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댄 주레프스키의 『음식의 언어』와 함께 읽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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