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속으로] 왜 테헤란로보다 명동을 더 걷고 싶을까

중앙일보 2015.03.28 00:03 종합 19면 지면보기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지음

을유문화사, 392쪽

1만5000원




한 세기 전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는 단편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삶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지, 근간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천사는 벌을 받아 인간을 관찰하고 ‘무엇으로 사는지’를 찾아낸다. 그 무엇이 있기에 매일 다투며,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 같은 인간에게도 희망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책은 주어를 사람에서 도시로 바꿨다. 던지는 화두는 톨스토이 단편집과 연장선상에 있다. 건축가 유현준은 머리말에서 “건축물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이성적, 감성적 행동들의 결집체”라며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건축물과 도시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도시에서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관찰해서 ‘무엇을’ 찾고, 인간 행동의 결집체인 도시가 더 나아질 수 있게 방향과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홍대 건축대학 교수인 저자가 그린 홍대 앞의 모습. 카페에 설치된 데크가 공간의 속도를 낮춰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고 있다. [사진 을유문화사]
 흔히 광장은 커야 좋다고 생각한다. 다음 사례를 보면서 고정관념을 깨보자. 미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는 규모나 지리적 위치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밤에는 우범지대로 전락한다. 너무 커서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 보스턴의 코먼 공원은 밤에도 안전하다.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고, 주변에 고층 주거 시설로 둘러싸인 덕에 CCTV효과를 자연스럽게 얻고 있다. 여기서 영감을 얻은 저자는 우리나라 학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운동장 주변에 단층 상가를 배치하자고 제안한다. 운동장을 광장처럼 사용하면서 학교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들 수 있고, 보안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도시인들은 주변의 아파트보다 그리스 산토리니섬의 언덕을 따라 들어선 흰색 회벽집이나 이태리 토스카나의 벽돌집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과거 도시에는 교통망이나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쌓아 집을 만들었다. 휴먼스케일의 아담한 집은 이런 한계에서 비롯됐다. 지금은 크레인과 철골구조의 도움으로 고층빌딩을 지을 수 있고, 재료도 세계 어디에서든 구해 쓸 수 있다. 사람들은 요즘 도시를 보면서 최근 온라인에서 유행한, 성형수술로 쌍둥이처럼 변한 ‘강남 미인’의 느낌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보다 명동이나 홍대에 걷는 사람이 많은 데도 이유가 있다. 거리 위 출입구 빈도와 속도 때문이다. 오밀조밀하게 상점이 많을수록 사람들은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다. 전체적인 공간의 속도는 사람의 보행 속도인 시속 4㎞에 맞춰져야 걷고 싶은 거리가 완성된다.



 총 15장으로 구성된 책의 장 별 키워드는 ‘왜’다. ‘왜 어떤 거리는 걷고 싶은지’ ‘현대 도시들은 왜 아름답지 않은지’ ‘강북의 도로는 왜 구불구불한지’…. 저자는 집요하게 도시를 관찰하고, 그 이면에 있는 정치·경제·사회·기술·예술·문화인류학적인 배경을 풀어놨다.





[S BOX] 할렘가 정비 일등공신, 스타벅스와 반스앤드노블



미국 도시 개발업자들이 환경 개선을 위해 잘 쓰는 두 가지 비밀 무기가 있다. ‘스타벅스’와 ‘반스앤드노블 책방’이다. 반스앤드노블 책방에 스타벅스가 들어간 경우도 많다. 여하튼 이 둘이 들어가면 동네가 좋아지고 개선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뉴욕시의 개발업자들이 할렘가 정비 사업을 하면서 이 방법을 썼다.



시는 개발업자들에게 버려진 건물 한 채당 1달러에 100년을 임대하는 조건으로 장기 임대를 해줬다. 슬럼가를 공짜로 개발하면서 세금도 걷고 치안도 좋아지게 하는 묘수였다. 개발업자들은 할렘가를 블록 단위로 나눠 북쪽으로 스타벅스와 반스앤드노블 책방을 점차 전진 배치하며 빈민가를 없애 나갔다고 한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