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가 무행동이면 쿨하게 돌아서라

중앙일보 2015.03.28 00:01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형경
소설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가끔 상대방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해 당황한다. 특히 여자 입장에서 남자친구가 갑자기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도 씹을 때, 데이트 약속을 계속 미룰 때, 굳게 약속해 놓고 바람 맞힐 때 그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혼돈스러워한다. 말로써 감정을 잘 표현하는 여자들은 남자들이 ‘행동하지 않기, 반응하지 않기’ 같은 방식으로도 의사를 표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남자들은 주로 몸을 사용하는 운동, 음주가무 등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보다 미숙한 남자는 불편한 감정을 주변에 흩뿌리는 방식으로 해소한다. 만만한 상대를 골라 비난하거나, 상황에 대해 불평하거나, 권위에 반항하는 행동을 한다. 그보다 더욱 나쁜 남자의 감정 표현법이 행동하지 않기, 반응하지 않기다. 퇴근하면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식탁에서 먹는 일 외에는 모두 남에게 시키기, 그토록 당부하건만 양말을 아무데나 벗어놓기 등은 실은 남자가 감정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직장 생활에서 받은 피로와 스트레스에 짓눌려 소파에 죽은 듯 누워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번 아웃’ 상태가 될 때까지 일하면서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불안이고, 그런 노력을 가정에서 인정받고 위로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감정이 분노다. 귀가 후 소파에 누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때 남자들은 불안과 분노의 감정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셈이다.



 무행동, 무반응의 감정 표현법을 사용하는 이들은 점진적으로 자기 삶을 갉아먹는다. 무기력한 상태로 머물고, 늦장부리며 할 일을 미루고, 자주 약속을 잊어버리고, 책임을 회피하면서 비능률적으로 행동한다. 그렇게 삶을 퇴보시키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공격자로 만든다. 무행동, 무반응의 감정 표현법을 사용하는 남자에게는 어김없이 그에게 촉발당해 잔소리를 쏟아내는 여자가 있다. 전문가들은 그런 행동을 ‘수동 공격’이라 명명한다. 무행동 남자와 잔소리꾼 여자, 무반응 남편과 요구적 아내는 그렇게 견고한 관계를 정립해 자녀에게 똑같은 방식을 물려준다. 수동 공격적 감정 표현은 사실 여자도 많이 사용하는 테크닉이다.



 만약 남자친구가 무행동 무반응의 감정 표현법을 사용한다면 재빨리 그를 포기하는 게 낫다. 그는 연인에게 싫증이나 화가 난 상태지만 그 사실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이에게 걸려들어 평생 잔소리쟁이로 살고 싶지 않다면 이쪽에서 쿨하게 돌아서는 게 상책이다. 소설가



김형경 소설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