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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칼럼] 학생 선택의 폭을 오히려 줄이는 대학 개혁

중앙일보 2015.03.28 00:01 종합 25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박현신
한성대학교
한국어문학부 3학년
“내가 바보가 아닐까.”



 초·중·고 12년 동안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특히 아무리 많은 돈과 시간을 수학에 투자해도 여전히 수학을 못할 때 그 생각은 더 강해졌다.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나도 잘하는 게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 건 대학 1학년 때 ‘문학의 이해’ 발표 시간 덕분이었다. 늘 선생님이 해주시는 시 해석을 받아 적기만 해오다 조원들과 토론하며 시를 주체적으로 해석했던 그 과정이 참 신선했다. 특히 같은 텍스트를 읽고 다른 생각을 해도 모두의 생각이 답이 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전율이 있었다. 그때부터 고등학교 시절보다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가끔 학과공부가 버겁고 힘들어도 순간 순간이 재미있었기에 그동안 학교에서 보낸 3년 반의 시간은 행복했다.



 최근 중앙대는 학과를 개편한다고 발표하면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다빈치형 인재’를 길러내겠다고 밝혔다. 개편안에 따르면 학생들은 3학기 동안 전공탐색의 시간을 갖고, 그 뒤 주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얼핏 보면 학생들의 선택 기회가 넓혀진 듯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다고 본다. 첫째는 ‘정말로 학생들의 선택 기회가 넓어졌느냐’다.



 인기학과인 경우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선발하게 된다.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선택권을 침해받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대학의 존재 이유가 오직 취업인가’이다. 대학은 말 그대로 삶을 위해 큰 배움을 얻는 곳이다. 그 배움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뿐 아니라 미래 사회를 살게 될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이라 믿는다. 이런 점에서 취업률이라는 단 하나의 지표에 따라 과의 존폐가 갈리고 당장 유용한 학문만 배워야 한다면 미래사회에도 좋을 것이냐는 의문이 든다. 대학은 ‘어떻게 하면 이 학생이 취업을 잘 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늘 행복하도록 가르침을 줄 것인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런 고민을 하는 대학이라면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우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다빈치가 되는 것만이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법은 아니다. 앞으로 나와 내 아이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다빈치뿐 아니라 하버마스, 하이젠베르크, 휘트먼, 박경리, 이중섭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대학의 미래가 어떻게 바뀌든 학생 모두가 각자의 소질을 발휘하며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배움을 제공하는 곳이 대학이란 원칙만은 늘 유지됐으면 한다.



박현신 한성대학교 한국어문학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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