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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옷 맞춰 책상 바꾸는 한국의 힘

중앙일보 2015.03.28 00:01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디드로 효과’라는 게 있다. 어떤 상품을 산 뒤 관련 제품을 이어 구입하는 현상을 일컫는 경제용어다. 이를테면 구두를 사고 나서 그것에 어울리는 바지를 또 사는 걸 말한다.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가 서재용 가운을 선물받고 옷에 맞춰 책상과 의자를 바꿨다는 데서 나왔다.



 그런데 자기 이름이 그런 정도로 쓰이는 줄 알면 디드로가 대단히 실망할 수도 있겠다.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답게 좀 더 심오한 정치사상이 깃들어 있어야 만족할 텐데 말이다. 디드로가 자기 이름의 쓰임새로 더욱 마음에 들어 할 일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옷에 맞춰 책상을 바꾸는 ‘심오한’ 정치행위다.



 어제 공포된 ‘김영란법’이 대표적이다. 위헌 여지는 전문가들도 생각이 다 다르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오기 전이니 언급하기 섣부르다. 정작 웃기는 건 그것의 입법 취지다. 김영란법이라는 게 왜 만들어졌던가. ‘벤츠 여검사’ 사건 때문 아닌가. 여검사가 내연관계의 변호사가 맡은 사건을 동료 검사에게 청탁해주고 벤츠와 샤넬 백을 받은 사건 말이다.



 사람들이 위헌이니 과잉이니 떠들고 있을 때 여검사가 대법원 무죄 판결을 받았듯,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의 금품수수를 막기 위한 거였다. 그런데 법이 이상해지면서 원인 제공자인 검찰이 더욱 거대권력화하는 역설을 막을 수 없게 됐다. 적용범위가 공직에서 민간으로까지 넓어지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의 표적·과잉 수사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가뜩이나 대화로 문제를 푸는 게 본업인 정치권마저 고소·고발을 먼저 하는 ‘사법 공화국’에서 말이다.



 또 다른 권력기관인 국회의원들은 ‘선출직 공무원 등이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예외로 만들어 빠져나갔다. 가장 개연성 있는 두 집단이 어물전 고양이가 되고 미꾸라지가 된 사이, ‘애먼’ 선생님들과 언론인들이 빈자리를 메웠다. 그나마 언론인들은 펜이나 마이크를 붙잡고 부당함을 외치기라도 했지만, 선생님들은 아무 소리 못하고 잠재적 범죄자의 탈을 뒤집어썼다.



 정치 개혁도 그렇다. 옷 문제가 책상 문제가 되고 있다. 선거구별 인구편차 비율이 2대 1을 넘지 말라는 헌재 결정과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라는 선관위 제안이 엉뚱하게도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방향으로 흐른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지역구를 포기할 리 없고 그들에게 맡겨놓으면 선거제도의 개악이 불 보듯 뻔하니, 선제적으로 그들의 재선 욕구를 충족시켜줘 제도 개혁을 이끌어내자는 얘기다. 정치권에서 군불을 때고 학계에서 이론적 뒷받침을 한다.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면 특권과 부패도 줄어든다는 주장들이 서슴없이 나온다. 어느새 선량들의 비리와 특권 남용이 국회의원 수가 부족한 때문이 됐다. 개혁 대상이 개혁의 최대 수혜자 (최소한 개혁의 피해는 전혀 안 보는)가 되는 것이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자신을 욕한 네티즌 1000여 명을 명예훼손으로 싸잡아 고소했다는 홍가혜 여인의 얘기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진 상황 속에서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한 당사자가, 지나쳤을지는 몰라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행동을 한 사람들을 또다시 합법적으로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옷을 바꾸다 책상을 바꿀 수 있는 게 대한민국의 힘(?)이다. 때론 책상과 의자까지 바뀔까 겁나서 옷을 바꾸지 못하는 경우마저 생길 성싶다. 따라서 디드로 효과의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 ‘무슨 문제를 해결하든 원인 제공자가 이득을 보는 걸로 끝나는 현상’으로 말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



 그 결과는 어떨까. 디드로가 결자해지하는 게 좋겠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입맛에 맞는 거짓말은 게걸스럽게 삼키면서, 쓴맛 나는 진실은 아주 조금씩 입안에 넘길 뿐이다.” 배탈이 크게 한번 나봐야 그것이 거짓이었는지 안다는 말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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