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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의 그림을 팝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2015.03.28 00:01
[뉴스위크] 피카소의 손녀 마리나, 개인적 경로 통한 작품 매각 계획 밝혀 ...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격 폭락 우려로 미술계 술렁



올해 초 마리나 피카소(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손녀)의 친구 한 명이 뉴욕포스트에 마리나가 할아버지의 작품 여러 점을 매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리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확인해 줬다. 그녀는 자선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중이다.



마리나는 “내가 물려받은 할아버지의 작품을 팔아서 그 돈을 인도적인 사업에 쓰겠다”고 지난 2월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나중에 그녀는 그 작품들을 두고 “사랑이 결여된 유산”이라고 말했다.



마리나 피카소는 얼마나 많은 작품을 팔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녀는 피카소의 작품 중 7점에 대한 개인적인 구매 제안을 이미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작품들의 총 판매액은 약 3억740만 달러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소식에 미술계 일부 인사들이 그렇게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가 뭘까? 마리나는 왜 하필 지금 피카소의 작품을 팔려고 할까? 그리고 이 작품들은 어떻게 그녀의 소유가 됐을까?



영국 저널리스트 앨런 라이딩은 1999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파블로 피카소의 친척들에 관한 기사에서 “돈 많고 유명하고 힘 있는 가문의 자녀들은 순탄하게 사는 경우가 드물다”고 썼다. 하지만 피카소의 후손들은 유난히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피카소는 1918년 러시아 발레단의 무용수 올가 호흘로바와 첫 번째 결혼을 했다. 그들은 1930년대 중반부터 별거했지만 1955년 올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결혼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의 아들 파울로(1921년 생, 피카소는 이 아들을 자주 학대했다)는 피카소의 유일한 적자였다.



파울로에게는 3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첫째 부인과 낳은 마리나(1951년 생)와 파블리토(1954년 생), 둘째 부인과 낳은 베르나르(1959)다. 파울로는 1971년 간경변으로 사망했다.



피카소는 1973년 세상을 떠났다. 손자 파블리토(마리나의 남동생)도 같은 해 표백제를 마시고 자살했다. 4년 후 피카소의 전 연인 마리 테레즈 발터가 목 매달아 자살했고, 그의 둘째 부인 자클린 로크는 1986년 권총으로 자살했다. 피카소는 서면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사후에 상속자들 사이에 유산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가 남긴 유산의 가치는 당시 약 2억6000만 달러로 추정됐다. 회화와 드로잉, 판화, 조각, 도자기 등 3만5000여 점의 작품과 부동산, 주택이 포함됐다.





피카소가 남긴 유산 가치 2900억원(1973년 기준)



미술품 전문 감정가 모리스 랭스는 5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이 작품들의 가치를 평가하고 목록을 만들었다. 회화 1885점, 드로잉 7089점, 도자기 3222점, 판화 1만7411점, 접시 1723점, 조각 1228점, 석판화 6121점, 석판 453점, 태피스트리 11점, 양탄자 8점이 포함됐다.



피카소 사망 직후 프랑스 정부는 상속세법을 개정해 피카소의 상속자들이 현금 대신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프랑스 정부는 피카소 작품 3800점을 소유하게 됐다. 그 작품들은 파리 피카소 미술관의 근간이 됐고 나머지는 가족에게 분배됐다.



피카소 유산 분배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미망인 자클린에게 작품의 약 10분의 3이 돌아갔다. 세금 공제 후 값어치가 1977년 기준으로 약 5200만 달러였다. 3명의 혼외자 마야와 클로드, 팔로마는 작품의 10분의 1(당시 추정가 1800만 달러)을 받은 반면 마리나와 베르나르는 각각 작품의 5분의 1(당시 추정가 3500만 달러)씩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베르나르는 노르망디에 있는 부아젤루 성을, 마리나는 칸의 별장 라 칼리포르니를 상속 받았다.



다른 상속자들과 비교할 때 마리나와 베르나르의 상속분에는 피카소의 시대별 작품이 더 고루 포함됐다. 이 둘은 나머지 사람들에 비해 초기 작품을 더 많이 상속 받았다. 그들의 할머니 올가가 피카소와 함께 소유했던 공동 재산이기 때문이다. 올가는 1935년 피카소와 별거에 들어갈 때 변호사를 통해 당시 피카소의 재산 목록을 챙겨뒀다.



내가 감독을 맡고 있는 온라인 피카소 프로젝트에는 현재 그의 작품 2만5159점이 등록돼 있다. 여기서 석판화와 판화, 도자기, 사진 등의 복수 미술품을 뺀 작품이 1만9332점이다. 이 중 598점이 여전히 마리나 피카소 컬렉션에 속해 있고, 326점은 과거에 그 컬렉션의 일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로 미뤄 볼 때 마리나는 이미 자신의 소장품 중 약 35%를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



마리나는 할아버지의 작품에 감정적인 애착이 별로 없는 듯하다. “할아버지와 예술가로서 그의 위상을 존경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난 그의 손녀이자 상속자다. 하지만 마음으로 연결된 손녀는 아니다.”





미술 시장의 영원한 강자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후 해결해야 할 큰 문제 중 하나가 작품 마케팅이었다. 1980년 한 미술상은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피카소의 작품은 현존하는 미술가의 작품처럼 다뤄야 한다. 작품 수가 워낙 많아 오랜 시간에 걸쳐 아주 조심스럽게 마케팅을 해야 한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작품이 시장에 나오면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 후 몇 년 동안 마리나 피카소의 대리인 역할을 하던 제네바의 미술상 얀 크루기어는 마리나 피카소 컬렉션 전시회를 몇 번 개최했고 국제 순회전을 두 차례 열었다. 2006년 크루기어는 회화 7점과 조각 2점, 그리고 드로잉 여러 점을 전시했다. 당시 그는 아트뉴스페이퍼에 “작품가가 미친 듯이 치솟았다. 이 때문에 현재 피카소 작품이 시장에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술상 닉 매클린은 같은 기사에서 “요즘 시장에서 피카소 작품에 대한 수요는 끝이 없는 듯하다”고 밝혔다.





가격이 폭락할까?



이런 관심은 점점 더 고조됐다. 지난 9년 동안 미술 시장에서는 다른 어떤 미술가보다 피카소의 작품에 더 많은 돈이 쏟아졌다. 뉴욕에 본부를 둔 미술 시장 데이터베이스 아트넷에 따르면 2014년 160억 규모의 국제 미술품 시장에서 피카소의 작품 경매 액수는 앤디 워홀(4억4900만 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매년 경매로 거래되는 피카소의 작품은 1500점이 넘는다.



미술 시장의 비밀주의 때문에 어떤 작품들이 여전히 마리나 피카소의 소장품으로 남아 있는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난해 그녀의 소장품 중 어떤 작품들이 경매로 팔렸는지는 알 수 있다. ‘술잔과 술병’(1914), ‘나뭇잎과 끈, 망사가 있는 콜라주(기타)’(1926), ‘단발머리 여인이 있는 구성’(1930), ‘마리-테레즈의 초상’(1932), ‘주름 장식 옷을 입은 여인’(1941), ‘옆으로 누운 나부’(1946), ‘꽃다발’(1969) 등이다. 이 작품들의 판매로 마리나는 지난해에만 총 1060만~1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피카소의 다른 상속자들도 가끔 작품을 팔지만 갈수록 더 많은 작품을 시장에 내놓는 사람은 마리나뿐이다. 하지만 개인적 이득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그녀는 작품 판매와 전시회 수익을 고아원 설립부터 베트남 농업 보조금 지원, 유럽의 정신건강 운동까지 다양한 분야의 자선사업에 써 왔다.



마리나는 지난해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함께 뭔가를 하고 싶다. 이번 작품 판매는 할아버지를 내 필생의 사업에 참여시키는 방법이다.” 올해 매각될 작품의 총 판매액은 지난해를 능가할지 모른다.



마리나가 이번에 매각할 작품 중 하나인 ‘가족’(1935)은 피카소의 작품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사실주의 양식으로 그려졌다. 그 밖에 ‘여인의 초상(올가)’(1923, 추정가 6000만 달러)과 ‘모성’(1921), ‘만돌린을 든 여인’(1911, 추정가 6000만 달러) 등이 매각될 것으로 알려졌다.



마리나의 작품 매각 소식은 투자자와 경매인, 미술상의 우려를 자아냈다. 마리나는 뉴욕타임스의 도린 카르바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작품들을 개인적 경로를 통해 팔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피카소 작품 중 몇 점을 매각할지는 “하나씩, 필요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녀가 피카소의 작품들을 이렇게 의외의 방식으로 팔려고 한다는 소식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시장에 공급이 넘쳐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또 미술상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개인적 경로로 작품을 하나씩 팔 경우 공식 판매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에 팔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일었다. 가디언의 미술 전문 기자 마크 브라운에 따르면 이번 피카소 작품 매각이 미술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마리나가 자신의 방대한 컬렉션에서 얼마나 많은 작품을 팔 것인가에 달렸다.



글=엔리케 말렌, 번역=정경희



[ 필자 엔리케 말렌은 텍사스 샘휴스턴 주립대학의 언어학·미술사학 교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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