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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 교수의 ‘실리콘밸리 창업마피아’ 마크 핀커스 - 소셜 게임 개척, ‘징가’로 억만장자 대열에

온라인 중앙일보 2015.03.28 00:01
[이코노미스트] 초기 투자한 페이스북 십분 활용 … 돈 된다 싶으면 모방도 불사







인터넷 시장을 검색·공유·쇼핑이라는 3개의 키워드가 장악하고 있을 때 ‘소셜 게임’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개척자가 마크 핀커스다. 그가 만든 ‘징가’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월 3억 명이 넘는다. 1966년생인 마크 핀커스는 아버지를 통해 ‘후츠파’ 정신을 이어받았다. 후츠파란 동구권 유대인 언어인 이디시어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이루어내는 도전정신’을 뜻한다. 마크는 아버지를 통해 유대인 특유의 기질인 ‘무엇을 하던지 하려면 자기의 온 힘을 다 바쳐 제대로 하라’는 삶의 신조를 배운다.



컬럼비아캐피탈 부사장이던 마크는 1994년 세계 최초 인터넷 브라우저 ‘모자익’(Mosaic)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는 그날 밤을 새며 인터넷이 가져올 미래의 모습에 대한 에세이를 쓴다. 그 에세이는 프래드 윌슨이라는 벤처캐피털 투자가와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4개월간 25만 달러 대출을 제안받았다.



핀커스는 제안을 수락하고 ‘프리로더(Freeloader)’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프리로더는 관심 콘텐트를 정기 구독할 수 있도록 기능을 브라우저에 추가하는 툴바다. 관심 콘텐트를 자동으로 다운받는 서비스로 인터넷 기반의 첫 푸시기술이었다. 프리로더는 4개월이라는 약속은 못 지켰지만 회사설립 7개월 만인 1996년 6월 3800만 달러에 팔렸다. 마크 핀커스는 약 750만 달러의 자산가, 곧 백만장자가 되었다. 이후 핀커스는 약 1년을 백수로 지내며 실리콘밸리에서 많은 사람을 사귀었고, 다음 창업을 준비했다.



이 시기 마크 핀커스는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만을 만난다. ‘프랜드스터(Friendster)’라는 소셜네트워크에 함께 투자를 한 인연이었다. 그들은 ‘인터넷이야말로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서로 같았다. 또한 세계적 규모의 프로젝트들에 관심을 갖는 것도 서로 같았다. 이내 둘은 자주 만나며 서로 생각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다. 두 사람은 개인 투자일 경우, 동일한 기업에 동일한 금액을 함께 투자하자는 독특한 약속을 했다. 핀커스는 호프만을 통해 페이팔마피아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그는 그들과 같이 어울려 각자의 아이디어에 대해 품평해 주고 토론하면서 ‘똑똑한 친구 대여섯 명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걸 느꼈다. 프랜드스터는 수백만 명의 사용자가 몰리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마크는 이런 소셜네트워크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2003년 37살 나이에 세 번째 창업인 ‘트라이브닷넷’(tribe.net)이라는 소셜네트워킹 서비스를 시작했다.





‘똑똑한 친구 대여섯 명이면 된다’



그즈음 마크 핀커스는 ‘라이즈오브네이션스(Rise of Nations)’라는 게임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마크는 게임에서 처참하게 지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활을 쏘는 동안 청소년 또래의 상대방은 핵폭탄을 던지기 일쑤였다. 이때 마크는 ‘내가 이들을 이길 수 있다면 돈이라도 쓸테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임과 돈의 연관관계를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이때 마크 핀커스는 마크 주커버그가 막 새롭게 창업한 페이스북에 투자했다. 주커버그는 엔젤 투자를 받기 위해 리드 호프만을 찾아왔고, 리드 호프만은 마크 핀커스와 피터 틸을 함께 엮어 총 60만 달러를 투자한다. 이로써 핀커스는 페이스북 초기 주주가 된다. 이후 핀커스는 2007년 4월 네 번째 창업회사 ‘프레지도 미디어(Presido Media)‘란 게임회사를 만들었는데 페이스북 플랫폼에 게임을 올리면 사람들을 끌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내 그는 ‘인터넷 보물’을 발견했음을 깨닫는다. 2007년 7월, 창업회사 이름을 ‘징가’(Zynga)’로 바꾸었다. 징가라는 이름은 핀커스가 기르던 불독 이름에서 따왔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첫 게임은 포커의 한 종류인 ‘텍사스 홀뎀 포커’ 게임이었다. 소셜 게임은 여러 사람이 함께할수록 게임 진행이 수월해져 친구들을 게임에 끌어들이는 특성이 있다. 게임은 무료였다. 매출은 광고를 통해 올렸다. 징가는 카일 스튜어트, 스캇 데일, 존 도어를 투자자로 받아들여 사업을 진행했다. 징가의 히트작 ‘마피아워즈(Mafia Wars)’와 ‘팜빌(FarmVille)’ 등은 먼저 출시됐던 타사 제품들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한다. 결국 이런 문제는 비공개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했다. 징가는 수익이 난다면 모방도 불사했다.





70억 달러 기업공개 성공했지만



징가 성장의 핵심은 매출의 90% 이상이 나오는 페이스북이었다. 징가의 빠른 성장과 바이럴 마케팅으로 페이스북은 징가 게임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용자들은 이를 귀찮게 여겨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페이스북은 게임의 노출을 줄였고, 징가는 수천만 사용자들을 잃었다. 또 다른 악재도 있었다. 페이스북은 징가가 벌어들이는 수억 달러의 매출에 대해 수수료를 받고 싶어했다. 이로 인해 핀커스와 쥬커버그는 갈등에 쌓인다. 페이스북 플랫폼의 형태는 클릭 몇 번으로 누구든 네트워크를 사용할 수 있다. 징가의 엄청난 사업규모에도 징가와 페이스북 간에는 서면협약서가 없었다. 만약 페이스북이 일방적으로 징가의 문을 닫아버린다면, 징가는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었다.



이 시기에 존 도어가 중재에 나서 2010년 5월 두 회사는 전략적 합의점을 찾는다. 페이스북은 징가에 5년간 플랫폼을 열어주고, 징가는 가상 상품 판매액의 30%를 페이스북에 지급하기로 했다. 큰 문제가 해결되자 핀커스는 공격적 확장에 나선다.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해 175개국에 월 이용자 2억4000만 명을 거느린 회사로 성장했다. 2007년 연매출 70만 달러의 작은 개발사가 2011년에는 연매출 11억 달러가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연평균 성장률 635%에 달하는 놀라운 성장이었다. 그해 말 징가가 상장되었는데 70억 달러(약 7조원) 가치였다. 웹서비스로는 구글 이후 가장 큰 금액의 기업공개였다.



아쉽게도 상장 이후 징가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시가총액도 20억 달러(약 2조원)로 주저앉았다. 핀커스는 결국 2013년 7월 CEO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으로만 남아있다.



글=홍익희 - 배재대 교수. KOTRA 근무 32년 가운데 18년을 뉴욕·밀라노·마드리드 등 해외에서 보내며 유대인들을 눈여겨보았다. 유대인들의 경제사적 궤적을 추적한 [유대인 이야기] 등을 썼으며 최근에 [달러 이야기], [환율전쟁 이야기], [월가 이야기]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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