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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 피플(84)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KHC 회장 - 오일달러로 자산 불린 ‘중동의 워런 버핏’

온라인 중앙일보 2015.03.28 00:01
[이코노미스트] 금융·미디어·문화·IT 등 손대는 분야마다 대박 … 사업가로 시작해 투자가로 변신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KHC 회장.




2013년 3월5일의 일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거대 기업인 킹덤홀딩스(KHC)가 씩씩거리면서 성명을 냈다. 공신력 있는 세계 부호 순위를 매년 발표하는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를 상대로 포문을 열었다. “포브스가 부정확한 재산 계산 방식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포브스가 하루 전에 내놓은 ‘2013년 세계 부호 순위’에서 자사 회장의 재산을 220억 달러로 평가해 전 세계 26위에 올려둔 데 대한 반론이었다. 킹덤홀딩스는 “포브스가 사우디 증권시장의 주가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를 제대로 평가했으면 자사 회장의 재산이 296억 달러로 평가돼 세계 10위 안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실제 재산이 훨씬 많은데 제대로 평가를 하지 않아 부호 순위에서 밀렸다는 불만의 목소리였다.



바로 그 사람이 킹덤홀딩스의 알왈리드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60) 회장이다. 그 해 포브스의 부호 순위에서 1위는 멕시코 카를로스 슬림(730억 달러), 2위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670억 달러)였고, 3위는 스페인 패션 업체 자라의 창업자인 아만시오 오르테가(570억 달러)였다. 한국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30억 달러(약 14조1219억원)로 69위에 올랐다. 쉽게 말하자면 알왈리드는 자신의 재산이 이건희 회장의 2.3배나 되는데 1.7배 밖에 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며 분통을 터뜨린 것이다.



“내 재산 과소평가 됐다” 포브스에 항의



알왈리드는 ‘중동의 워렌 버핏’으로 불린다. 미국시사잡지 타임이 지난 1997년 그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별명대로 그는 투자의 귀재로 평가 받는다. 알 왈리드 회장이 1980년 창립해 9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KHC는 세계적 투자회사다. 자산 규모가 2013년 기준으로 180억 달러에 이른다. 포브스지의 글로벌 200에 들어가는 대기업이다. 씨티그룹의 최대 주주이며 펩시콜라·애플·트위터·타임워너 등 다양한 유망 글로벌 기업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그의 재산을 300억 달러로 추정했다. 2013년 12월 아라비안 비즈니스지는 그의 재산이 312억 달러이라고 보도하고, 알왈리드 회장이 아랍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타임의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에 2008년부터 매년 오르고 있다.





알왈리드 집안은 사우디에서도 별종



어디를 기준으로 하든 알왈리드의 재산은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전 국왕이 남긴 180억 달러보다 많다. 국왕보다 더 부자인 사우디의 대표 기업인이자 투자가이다. 그 유명한 뉴욕의 플라자 호텔 지분도 전량 보유하고 있다가 2004년 미국-이스라엘 유통 그룹인 엘애드에 75%를 팔고 25%만 보유하고 있다.



뉴욕 플라자 호텔은 뉴욕 명물의 하나로 비틀스, 엘리노어 루스벨트, 마크 트웨인 등 역사적 명사들이 애용했다. 객실 230개의 이 유서깊은 호텔은 영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과 [나 홀로 집에 2] 등의 무대로도 이름을 날렸다. 1985년 주요 7개국(G7) 정상들이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춘 플라자 합의를 이곳에서 하는 바람에 이 호텔 이름을 땄다. 이로 인해 1980년대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치솟으면서 일본 기업들이 뉴욕 록펠러센터 빌딩 등 미국 부동산을 대거 사들였다가 1990년대 철수한 바 있다.



알왈리드 회장의 이름을 보면 그의 집안 이력이 드러난다. 알왈리드가 이름이고 맨 뒤의 알사우드는 가문의 이름이다. 알사우드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지배하는 왕조의 이름이니 알왈리드가 사우디의 왕족임을 알 수 있다. 빈 탈랄 빈 압둘아지즈는 ‘압둘아이지의 아들인 탈랄의 아들’이라는 뜻이니 아버지의 이름이 탈랄이고 할아버지의 이름이 압둘아지즈다. 할아버지 압둘아지즈는 현대 사우디 아라비아를 건국한 인물이다. 현재 국왕인 살만 빈 알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알왈리드의 아버지인 탈랄은 압둘아지즈의 아들이다. 그러니 알왈리드 회장은 사우디 초대 국왕의 손자이자 현 국왕의 조카다.



알왈리드의 집안은 사우디에서도 별종으로 통한다. 알왈리드 회장의 아버지인 탈랄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84)는 ‘붉은 왕자’라는 별명이 있다.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의 아들 중 가장 진보적인 성향의 사우디 왕자이기 때문이다. 탈랄은 1960년대 초 사우디의 재정경제장관과 통신장관을 지냈음에도 왕조국가인 사우디에서 헌법 제정과 입헌군주국화를 주장해왔다. 법 앞의 만인평등과 법치도 요구했다. 1954년 이런 주장을 하는 ‘자유 왕자 운동’을 조직해 1964년까지 활동했다. 1962~63년에는 이집트로 추방되기까지 했다. 당시 사우디의 숙적인 이집트에서 사우디 민주화 운동을 했다. 그러다 가족의 설득으로 귀국했다. 9·11테러가 벌어진 2001년에도 선거로 선출된 의원으로 구성된 진짜 의회 설치를 주장했다. 현재 사우디에는 의회 대신 국왕 자문위원회만 있다. 탈랄은 일찌감치 왕위 계승권에서 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가 인근 부족장이 압둘아지즈 국왕에게 선물로 바친 아르메니아계 기독교계 여성이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그의 어머니는 물론 사우디에 살게 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압둘아지즈가 총애한 부인 중의 한 명으로 알려졌다.



왈리드는 7살 때 부모가 이혼해 레바논에서 자라다 사우디로 돌아왔다. 어려서 수시로 가출하기도 했는데 수도 리야드의 군사학교에 들어가 엄격한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비로소 자기 통제를 시작해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을 익혔다. 그 뒤 미국 유학을 떠나 캘리포니아의 먼로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뉴욕주 시라큐스 대학에서 1985년 사회과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4차례 방문



사우디로 귀국한 그는 왕실 가족답지 않게 창업을 했다. 작은 가건물에서 건설회사의 문을 열었다. 왕족으로서 특혜를 받으며 사치나 하며 살기보다 직접 사업으로 돈을 버는 길을 택한 것이다. 건설 수주와 부동산 투자를 바탕으로 차곡차곡 돈을 모았으며 당시 오일 붐이 일던 사우디는 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알왈리드는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번 돈으로 투자회사를 만들어 전 세계를 상대로 투자에 나섰다. 성공의 문은 1991년 열렸다. 씨티그룹의 핵심인 씨티코프에 5억55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미국 금융 붐으로 이 돈이 10억 달러로 불어난 것이다. 1997년에는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인 뉴스코프 지분 5%를 확보해 미디어 분야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중동의 미디어 그룹과 엔터테인먼트 그룹에도 투자했다. 이후 아메리칸 온라인, 애플, 모토롤라 등 미국 IT기업에 선도적으로 투자해 거액을 벌어들였다. 미디어와 문화산업 투자를 통해 돈과 영향력 양쪽을 모두 거머쥔 셈이다. 이후 사우디를 대표하는 투자가로 자리를 잡게 됐다. 이후 그는 운전 금지 등 사우디 여성에 대한 제약을 완화하라고 요구하는 등 사회 참여 발언도 수시로 하고 있다. 아버지의 뜨거운 피를 속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알왈리드는 사우디 사회에서 갈수록 더 중요한 인물이 될 전망이다. 이자를 죄악시하는 율법이 작용하는 이슬람 사회에서 금융 투자 대신 합법적인 투자로 돈을 불리는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율법 때문에 사실 사우디 왕실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서방에서 준 석유 채굴 로열티를 받아 금고에 쌓아뒀을 정도다. 은행에 넣어 두고 이자를 받는다는 것은 사우디 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사우디 왕실은 18세기 부족장인 압둘아지즈 빈 무함마드 알사우드(?~1803)와 수니파 종교개혁가 무함마드 이븐 암드 알와하브(1703~1787)의 딸이 결혼하면서 정치와 종교의 결합을 이룬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알와하브는 18세기에 시작된 수니파 이슬람의 종교개혁 운동인 살리피즘(도는 와하비즘)을 창시한 인물이다.



살리피즘은 정통파, 초보수파, 엄격파, 근본주의자, 이슬람 청교도 등으로도 불린다. 이단적인 요소를 일절 배제하고 이슬람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운동이다. 따라서 그 후손인 사우디 왕실에서 율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금융 대신 투자가 발달한 이유다. 사우디 투자의 정점에 바로 알왈리드가 있는 것이다. 유가가 떨어지고 석유 외의 수입이 필요할수록 알왈리드는 사우디 사회에서 중요성이 더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알왈리드 회장이 올해는 10억 달러를 할당해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유통·제약·음료·세면용품 등에 투자할 계획이라는 점이다. 한국과 관련이 많은 업종이다. 최근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기업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알왈리드 회장은 지난 3월 1일부터 8일까지 사우디를 포함한 중동 4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이 만난 현지 기업인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다. KHC는 박 대통령이 사우디 방문 중인 지난 3일 한국 측의 한국투자공사(KIC)와 공동투자협력 MOU를 체결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알왈리드 회장을 직접 만나 양국간 투자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알왈리드 회장은 이미 지금까지 한국을 4차례 방문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 사우디의 인프라 구축 과정에 참여한 한국의 건설사들과 오래 전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현대자동차에 1억 달러를, 대우에 5000만 달러를 각각 투자한 적이 있다. 경원대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도 받을 만큼 한국과 인연이 깊다. 박 대통령이 사우디에서 직접 만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알왈리드 회장은 “이번 MOU가 투자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의미가 있다”며 호텔산업이 가장 발달한 프랑스·영국·캐나다 등 3개국에 집중적으로 공동 투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한국이 강점이 있는 기술 분야와 최근 활황세에 있는 사우디 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도 제안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양국 간 협력이 기존 에너지·건설 중심에서 원전, 재생에너지, 보건·의료, 정보통신기술(ICT)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돼 가고 있는데 주목할 만한 분야를 제안하고 싶다”며 “한국의 문화산업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며 한류 분야 투자를 부탁했다. 그러자 알왈리드 회장은 “박 대통령의 문화산업 관련 이야기를 듣자마자 관심이 생겼다”며 “주사우디 한국대사를 통해 관련 자료를 전달해달라”라고 요청했다. 알왈리드가 한국 문화산업에 대거 투자할 것인지, 한국은 그의 자금을 바탕으로 문화산업 융성의 날개를 달것인지 주목된다.



글=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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