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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교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중앙일보 2015.03.26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지난주 학부모 총회에 가서 마치 엄마가 초등학생이 된 양 담임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마무리가 될 때쯤 개인 상담 일정을 알려줬다. 그런데 선생님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어머님들 학교 오실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마세요. 커피 한 잔도 안 됩니다. 진짜요.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세요.”



 이날은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이 ‘2015년 불법찬조금 및 촌지 근절대책’을 발표한 다음날이었다. 교직원이 촌지 받은 사실을 신고하면 최고 1억원의 보상금을 준다는 초강력 방침을 선생님이나 학부모나 모두 알고 있을 터. 선생님의 한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궁금했다. 촌지 없애자는데 간식까지 막는 이유는 뭘까. 학부모 선배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간식 하나에도 생길 수 있는 차별에 대한 가능성을 아예 봉쇄하자는 거다. “누구 엄마가 마트에서 주스를 사 가면 다른 엄마는 백화점에서 100% 과즙을 가져오게 되죠. 그러면 선생님도 사람인데, 더 맛난 걸 좋아하지 않겠어요.”



 맞다. 선생님도 좋은 게 뭔지 아는 보통 사람이다. 도덕성 면에서도 보통 사람일 확률이 높다. 듀크대 행동경제학 교수인 댄 애리얼리에 따르면 세상 98%는 절대 성자도 절대 악인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다. 그러기에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하다. 스스로를 ‘대체로 착하다’고 자평하면서도 무의식중에 악행을 저지른다(『거짓말 하는 착한 사람들』).



 악행이라고 해서 별게 아니다. 가령 MIT 기숙사에서 공용 냉장고에 1달러짜리 6장을 넣어놓으니 학생들이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 하지만 가격으로 따지면 이와 비슷할 콜라 6개들이 한 팩을 넣어놓았더니 결과가 달라진다. 그건 72시간 안에 모두 사라진다. 말하자면 돈의 추상성이 강해질수록 부정행위의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현금은 좀 그렇지만 문화상품권은 받게 되더라”던 교사 친구의 고백도 연장선상에 있다.



 또 보통 사람의 가장 큰 맹점은 한 번 사소한 비행을 저지르면 무뎌지기 쉽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다이어트를 한 뒤 저녁에 쿠키 한 조각을 먹고 나면 폭식으로 이어지는 경우라거나, 문제집을 풀다 답안지를 들추게 되면 멈추지 못하는 때도 그렇다. ‘어차피 이렇게 된 바에야’라는 심리다.



 촌지는 학부모와 교사를 떠나 평범한 한 인간을 시험대에 오르게 하는 일이다. ‘달라니까 준다’는 카더라식 경험담만큼이나 ‘주면 받더라’는 사례도 아직은 심심찮게 들린다. 전자라면 고민이 깊겠지만 적어도 보험 들 듯 건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안 받으면 그만 아니냐”는 학부모는 무책임하다. 같은 논리라면 “안 주면 그만” 아닌가.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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