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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챌린저 & 체인저] '뚱' 하고 해뜬 날

중앙일보 2015.03.23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퍼즐 게임인 패션왕 뚱을 개발한 지오팝스 허두범 대표(사진 오른쪽에서 두번 째)가 패션왕 뚱 게임의 모티브가 된 국내 토종 캐릭터 뚱이 완구를 들고 웃고 있다. 사진 왼쪽에서 두번 째가 배정현 공동대표. [김경빈 기자]


2014년 6월 게임 개발업체 대표였던 허두범(45)씨는 부인에게 굳게 약속했다. 연말까지 기회를 찾지 못하면 모든 미련을 버리고 게임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이번이 마지막 도전이라고.

<3> '옥탑방 집념' 게임 개발자 … 허두범 지오팝스 대표
마이클 잭슨 캐릭터 게임 개발 맡고
국내외서 상 휩쓸다 잇단 창업 실패
캐릭터 상품서 '패션왕 뚱' 아이디어
24만 명 다운로드 … 미·중·일 수출도



 시간은 6개월. 사업자금은 중고 컴퓨터 그래픽카드 등을 처분해 마련한 85만원이 전부였다. 사업실패로 살던 집까지 경매에 넘어간 상황. 그만큼 절박했다. 소호 사무실 월세 두달치 54만원을 한꺼번에 내고 게임 개발업자 배정현(41)씨와 하루 20시간씩 게임 개발에 매달렸다. 간에 심각한 이상이 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허씨의 게임업계 이력은 화려했다. 국내 게임업체 1위인 넥슨에 근무하던 2001년, 현 넥슨 부사장인 정상원씨와 함께 개발한 택티컬커맨더스란 게임으로 미국의 권위 있는 게임관련 행사인 게임개발자콘퍼런스(GDC) 내 인디게임부문에서 대상을 포함해 6개 부문 상 중 4개 부문을 수상했다. 국내 게임의 첫 수상이란 점도 의미가 컸지만, 4개 부분 수상은 그 전에 없었고 그 이후 아직까지도 없는 수상 성적이다. 특히 30여명 가량이 투입돼 개발한 다른 경쟁 게임과 달리 택티컬커맨더스는 허씨를 포함한 세 명이 만든 작품이어서 전세계 게임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GDC 직후 마이클잭슨 측에서 허씨에게 연락이 왔다. 마이클잭슨을 캐릭터로 하는 게임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허씨가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허씨는 바로 넥슨을 그만뒀다. 그리고 자기사업을 한다는 생각으로 1년 정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게임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경영진의 투자자금 문제로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됐다. 허씨는 실망했으나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개발할 기회가 다시 있을 것으로 보고 2002년초에 넥슨에 재입사했다.





상품 캐릭터와 연결한 가상현실세계 구상



2006년 봄 드디어 허씨에게 창업기회가 왔다. 4년간 넥슨에 다니면서 모은 3억원을 가지고 비즈피오컴이란 게임 회사를 차렸다. 잘나가는 게임개발자로 안정된 직장 생활이 보장됐지만, 자신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은 욕망을 누를 수 없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해 게임업계 흐름을 바꾸고 싶은 욕심도 컸다.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게임을 잘만 개발하면 전세계인을 상대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확신도 있었다. 출발은 좋았다. 대한민국 게임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성과도 냈다. 5명의 직원과 게임 하나를 개발하는 데 허씨의 돈 3억원이면 충분했지만, 창업투자회사들의 끈질긴 권유로 20억원을 추가로 투자받았다. 단기에 투자 성과를 내야하는 창투사들은 허씨에게 여러 게임을 동시에 개발하길 요구했고 허씨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직원을 40명까지 늘렸다. 자신감이 넘쳐 회사 규모를 키운 게 화근이었을까. 비즈피오컴이 출시한 첫 게임이 예상과 달리 시장에서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자 자금사정이 꼬이기 시작했다. 게임 개발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돈 관리나 사람 관리 등에서 문제가 생겼다. 홍보도 미숙했다. 분위기를 바꾸려면 두번 째 게임과 세번째 게임을 출시해야하는데 돈이 부족했다. 처음 회사를 차릴 때는 여기저기서 돈을 대주겠다고 했지만 첫 게임이 실패하자 세상의 대접은 달라졌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급기야 사채까지 끌어다 썼지만 허사였다. 2009년 12월엔 갓 100일된 첫 딸과 보증금 300만원, 월세 25만원인 경기도 고양시의 옥탑방으로 집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이 후 웹사이트 디자인 등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다 2011년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또 실패. 게임회사를 차리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고 시작한 일이었으나 워낙 자금이 부족했다.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나 허씨는 포기할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환호하는 게임을 만들어야 하는 게 숙명처럼 느껴졌다.



 기회는 우연히 왔다. ‘뚱’이라는 국내 토종 캐릭터를 만든 친구와 얘기하다가 뚱 캐릭터를 활용한 애니팡 같은 퍼즐 게임을 만들기로 한 것. 뚱은 2012년 MBC에서 방영한 애니매이션 ‘내 사랑 뚱’의 캐릭터인데 국내보다는 중국·태국 등에서 더 인기가 있다. 중국에서는 뚱 캐릭터를 활용한 제품이 5000종이나 나왔을 정도다. 국내도 국내이지만 동남아에서 인기를 끌 수 있는 ‘게임 한류’를 이끌 수 있겠다는 직감이 왔다. 이 때가 바로 2014년 6월.‘마지막 도전’을 결심한 때다. 회사이름은 지오팝스, 게임이름은 ‘패션왕 뚱’이라고 짓고 혼자서 만든 시제품을 가지고 배정현씨를 찾아갔다. 배씨 역시 넥슨에서 주가를 올리던 잘 나가는 게임개발자였지만 회사를 옮기고 개발한 게임이 실패해 몇달 째 월급을 못 받는 상황이었다. 둘은 의기 투합했다. 밤을 세워가며 두달동안 프로그램 업데이트를 115번이나 할 정도로 개발에 공을 들였다. 개발하는데만도 힘에 부쳤지만 힘을 더 냈다. 은행과 휴대폰 판매점 등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에게 게임을 설명하고 권했다.





“잘하는 분야 집중, 다른 건 동료 맡겨야”



이러던 차에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왔다. 지난해 11월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구글 플레이의 인디게임 섹션에 패션왕 뚱이 금주의 게임으로 2번이나 소개되면서 게임 다운로드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후 지금까지 24만명이 다운로드를 했고 관련 매출이 1억3000만원 생겼다. 또 해외에서도 잇따라 연락이 왔다. 이미 중국·대만·태국·홍콩에 패션왕 뚱 게임을 서비스하기로 계약을 맺고 계약금 60만달러 정도를 받았다. 또 다음달에는 일본과 미국에도 게임을 수출할 계획이다. 일본과 미국 계약이 마무리되면 총 수출 계약금액이 100만 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허씨는 보고 있다. 허씨는 해외 진출을 위해 구글 애널리틱스 같은 도구로 분석을 했고 게임과 페이스북을 연결해 많은 사용자와 소통을 했다.



 허씨는 앞으로 뚱 캐릭터를 활용한 가상현실세계 ‘뚱 월드’를 만들 계획이다. 예를 들어 뚱 캐릭터 화장품을 구입하면 화장하는 내용을 다루는 뚱 게임의 게임머니를 주는 식으로 이미 오프라인상에 다양한 형태로 나와 있는 뚱 캐릭터 상품과 게임을 연결하는 것이다.



 허씨는 어려울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찾아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을 말하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국내 최초의 민간 인터넷서비스업체(ISP) 아이네트를 창업했고 네오위즈인터넷 대표를 역임한 허진호씨를 지오팝스 고문으로 영입한 것도 그런 노력 덕분이다.



 허씨는 이번이 마지막이고, 꼭 성공할 것이란 생각으로 창업을 했지만 한 두번 실패한 게 아니어서 이번에도 두려움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 가족이 겪게 될 고통을 생각하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실패의 공포를 느끼게 된 이유도 가족 때문이고 두려움을 이기게 한 원동력 역시 가족이라는 얘기다.



 또 그동안의 실패에서 배운 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하고 다른 분야는 믿을 만한 파트너에게 맡기는 게 좋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뼈속까지 개발자’라고 말하는 허씨는 앞으로 회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지더라도 자신은 게임 게발에만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허씨의 마지막 도전은 성공중이다.허씨는 6개월안에 반드시 기회를 만들겠다는 부인과의 약속을 지켰다.



글=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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