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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냄새, 파스 냄새 나는 무대 고생한만큼 박수로 돌아오네요

중앙선데이 2015.03.21 00:45 419호 17면 지면보기
연극 ‘유도소년’(극본 박경찬·연출 이재준, 5월 3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은 지금 대학로에서 가장 표를 구하기 힘든 공연이다. 지난해 초연 당시 90회 매진, 객석 점유율 104%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지난달 7일 재개 이후 인기는 다시 불붙어 전석매진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초연 배우인 박훈(34)-차용학(33)은 주인공 트리플 캐스팅 중 자칭 ‘가장 인지도가 떨어지는’ 커플이다. 하지만 굳이 누구와도 비교하고 싶지 않을 만큼 이들의 무대는 최고였다. 매트 한 장 달랑 깔린 ‘고교 운동선수들의 좌충우돌 성장스토리’에 30대 아저씨 배우들이 쏟아내는 비지땀이 왠지 진짜같고, 짜릿했다.

객석 점유율 100% 연극 ‘유도소년’의 배우 박훈과 차용학

박훈 1981년생. 백제예대 뮤지컬학과를 나왔지만 방황하느라 연기를 제대로 못 배웠다. 대리운전, 철거용역, 배달, 웨이터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27살에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로 데뷔했다. 이후 대학로의 ‘차이무’ ‘간다’ 등 유서깊은 극단에서 기본기를 닦으며 ‘늘근도둑이야기’ ‘달빛요정과 소녀’ 등에 출연했다. 학창시절 육상선수로 활동했다.
때는 1997년. 한때 유도 꿈나무였지만 ‘아픈게 싫고 지는게 싫어’ 슬럼프에 빠진 전북체고 2학년 경찬(박훈)은 후배들이 저지른 사건에 휘말려 전국체전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야할 위기에 처한다. 대회를 위해 상경했지만 배드민턴 선수 화영에게 첫 눈에 반해버리고 그녀와 썸타던 복싱국가대표 민욱(차용학)과 대립하다 탈락 위기를 맞는다. 실제 유도선수였던 박 작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배우들이 각자의 경험을 녹여 함께 만든 대본이다.

모든 등장인물이 운동선수다. 극장이 아니라 도장에 온 듯, 적당히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진짜 선수처럼 각 잡힌 품새와 실감나는 액션은 전 출연진이 부상을 훈장처럼 달고 실제 선수급 훈련을 소화한 결과다. 박훈과 차용학은 실제로 육상과 킥복싱을 즐기는 ‘생활 체육인’. 하지만 우월한 건 체력만이 아니다. 테이블 너머로 레이저광선처럼 쏘아대는 강렬한 눈빛들이 영 범상치 않았다.

진짜 선수같던데 연습을 얼마나 했나요.
차용학(이하 차): 두달 동안 아침 10시에 복싱팀은 복싱장, 유도팀은 유도장에 가서 각자 종목훈련을 했죠. 오후에 다같이 만나서 무술감독이랑 합을 짰구요.
박훈(이하 박): 유도는 기술이나 룰이 단순해요. 일주일이면 동작은 다 배우는데, 숙련 시간이 필요하죠. 남들은 2, 3년 동안 숙련해야 하는 코스를 압축하다 보니 배우들 부상이 많았어요.

어느 정돈가요.
차: 작년에 공연 끝나고 어깨 수술을 받았어요. 제작비가 모자라 시멘트 바닥에 매트 한 장 달랑 깔았었거든요. 매일 갈비뼈 무사한가 확인했는데, 다행히 올해는 매트가 두꺼워졌죠.
박: 지난 시즌엔 병원도 다녔는데, 이젠 왠만큼 아픈건 일주일 참으면 되는거 아니까…. 다치는 과정이 큰 공부죠. 고작 이거 하면서 이렇게 다치는데 선수들은 얼마나 참고 하는 걸까 싶고. 지난 시즌에 김재범, 왕기춘 선수가 보시고 유도인으로서 감사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큰 보람을 느꼈어요.

몸을 써야하니 배우끼리 호흡도 중요하죠.
박: 신체능력이 서로 다르니까…용학이랑은 편해요. 다들 같이 운동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잘 할거란 믿음이 있고, 몸을 부딪히다 보니 전우애도 생겼죠. 내가 과감하게 해도 잘 받아줄거란 믿음으로 더 세게 하기도 해요.

흔한 성장스토리인데 왜 이렇게 인기죠?
박: 재미를 넘어선 또 다른 면을 보는 것 아닐까요. 몸 아끼지 않고 열정으로 연기하는 배우들 보면서, 다시 한번 해보자는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요.
차: 일부러 3D, 4D극장 가지 않나요. 땀냄새, 파스냄새 풍기며 몸으로 직접 부딪쳐 만들어내는 감동이 다른 거 같아요.
박: 그 부분은 압도적으로 우리 둘이 제일 잘하는 거 같네요(웃음). 운동부 경험해 봐서 그 감성 아는데, 그 부분은 양보하고 싶지 않아요.

비지땀 흘리는 거 코앞에서 보면서 연극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박: 언젠가부터 ‘겉’이 중요해졌어요. 연극도 세트가 정교해야 하고 내용과 상관없이 겉만 훌륭하면 ‘돈값’했다고 하죠. 우리 무대는 매트 하나 밖에 없지만 관객들은 배우들이 흘리는 땀을 봐요. 땀의 진정성은 흉내낼 수 없고 겉보기로 만들어낼 수 없거든요. 굉장히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의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는 이상(웃음). 그런 원초적인 순수함과 진정성에 가장 크게 희열을 느끼는 거 아닐까요.

차용학 1982년생. 체대를 준비하던 고3 때 장학금을 타려고 TV 체육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다가 배우로 발탁됐다. 시트콤,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다 군 제대 이후 연기를 제대로 배워보려 대학로로 전향했다. ‘간다’ 소속으로 꾸준히 활동하며 ‘올모스트 메인’ ‘에쿠우스’ ‘뜨거운 여름’ 등에 출연했다. 전문 헬스 트레이너 경력이 있고, 연예인 킥복싱 동호회 ‘패대기’ 일원이다
청춘의 방황·사랑·우정·승부 촘촘하게 엮어
무대에 감도는 박진감은 단순히 스포츠를 소재로 해서가 아니다. 이 무대가 유독 펄떡이는 이유는 탁월한 구성력에 있다. ‘어느 해 전국체전’이라는 단순한 배경에 청춘의 방황·첫사랑·짝사랑·삼각관계·우정·대립·승부·성장 스토리를 촘촘히 엮었다.

1997년이 배경이라 연극판 ‘응답하라1997’ 인가도 싶지만, 흔한 추억 마케팅은 애써 피해갔다. ‘캔디’ ‘인형의 기사’ ‘뿌요뿌요’ 등 그 시절 유행가가 간간이 들려오지만 넘치지 않게 분위기만 띄웠다. 어쩌면 90년대의 존재이유는 순수한 아날로그 감성인지도 모른다. ‘오빠는 오늘부로 너랑 더 친해지고 싶어’ ‘널 처음 본 순간, 내 심장은 순간 멎어버렸다’ 등 소위 ‘손발 오그라드는’ 대사들이 객석을 철저히 무장해제시키기 때문이다.

“경찬의 이야기가 97년도일 뿐이지 드라마처럼 굳이 추억을 들춰낸 건 아녜요. 우리도 돌아보면 경찬의 고민이 있었고, 포기하지 않고 즐기며 계속하자는 이야기가 먼저죠. 작년 공연 모르는 분들은 ‘토토가’ 유행에 편승한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기도 해 아쉬워요.”(차)

“90년대는 초심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에요. 다시 불태우고 싶은 열정에 대해, 그 순간의 설렘을 환기하기 위한 것이죠. 추억을 노렸다면 IMF에 경찬의 집이 망하든지 훨씬 더 나갔겠죠.”(박)

연습도중 에피소드도 많겠어요.
박: 몸을 쓰는 신은 오히려 수월했어요. 4강전이나 민욱과의 대결 부분은 하루만에 짰죠. 작품의 감성에 다가가는 게 재밌었어요. ‘민욱-화영’씬 짜는데, 우리끼리 ‘죽음의 4장’이라고 불렀죠. 아무리 수정해도 뭔가 어색한 거에요. 고딩 감성을 너무 잊고 지낸거죠. 자기 청소년기는 유치하지 않았다고 믿으니까, 그걸 깨야되는데 나는 안 그랬다 우기고…나중엔 그 장면 한다하면 다른 배우들이 다 나가요. 얼마나 오래 걸릴지 아니까.
차: 한달 정도 첫 만남 씬만 팠죠. 얘기해야 될 게 많으니까요. 화영, 민욱 캐릭터도 보여줘야 되고 고백도 해야되고…. 결국 다같이 만든 장면이에요.

30대 중반들이 고등학생을 연기하니 몰입이 안된다는 지적도 있어요.
박: 제가 작가랑 한 살 차이에요. 동년배끼리 통하는 감성이 있죠. 진짜 삐삐를 쓰던 감성과 그걸 모르고 흉내내는 애들 연기는 다르지 않을까요. 드라마 ‘응답하라’ 배우들이 실제 그 시대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 감성을 아는 사람이 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요.
차: 2015년의 고딩 이야기를 우리가 하면 이상해지겠죠. 노래방에서 고백하고 시티폰 땅에 내려놓고 어쩔줄 모르고, 비슷하게 그 때를 지냈던 배우들이 다같이 만든 이야기라 가능한 것 같아요.

결국 ‘버티기’의 결과가 승리가 아닌 목깁스로 돌아오는데, ‘버티는 삶’에 희망적이진 않은 결말이에요.
차: 그 후에 경찬의 삶을 생각한다면 실패라고 볼 수 없죠. 굳이 유도가 아니어도 다른 시도를 했을 테니까. 우리가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하나에요. 정확히 ‘내가 끝낼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거죠.
박: 만화 ‘슬램덩크’ 엔딩이 기가 막혔죠. 전국대회 8강에서 떨어지고 그냥 끝나요. 많은 이야기가 남았겠지만 거기서 끝나서 아름다웠죠. 이기든 지든 결과주의일 뿐 중요하지 않아요. ‘다시 도전할 용기 얻었다면 성공’이라는 그 철학을 전달하고 싶은 거죠.

몸 힘들고 보수 적지만 “하고싶어서 한다”는 진짜 배우들
‘유도소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들로 시작된 젊은 극단 ‘간다’의 10주년 기념작으로 기획됐다. 다른 작품보다 육체적으로 몇 배 힘들고 극단 작품이라 상업 프로덕션보다 보수도 적지만 “그냥 하고 싶어서” 돌아왔다는게 이들의 이구동성이다.

“지난 시즌 배우 전체가 돌아왔죠. 힘들어 못하겠다던 사람도 나머지가 다 돌아온다니 ‘너네들끼리 재밌는 꼴 못보겠다’며 돌아왔어요. 함께 해서 너무 재밌고 즐거우니까 하는 것 같아요.”(차)

“사실 연극사에 드문 작품이죠. 판권이 영화사에 팔리고 객석 점유율 100%를 넘긴다는 게 쉬운 게 아니에요. 이익 추구 집단이라면 오픈런으로 배우를 계속 돌리며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겠지만, ‘간다’는 양질의 공연을 보여주는 작업 자체를 즐겨요. 제작여건은 대형 회사가 낫겠지만 우리는 즐겁게 하는 것만으로도 족해요. 그러니 초연 멤버도 다 돌아오고, 유명 배우까지 들어온 거겠죠.”(박)

명대사가 많던데.
차: ‘훈련은 산수다. 땀 흘리는 만큼 정확히 다시 돌아온다’는 코치 대사가 와닿아요. 스포츠뿐만 아니라 정직하게 내가 땀 흘린만큼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땀흘린다면,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돌아오지 않을까요.

연극도 그런가요.
차: 땀흘린 이상 돌아오고 있어요. 지난 시즌 마지막 공연날, 관객 전체가 기립박수를 주시는데 기쁜 걸 넘어 소름 끼쳤어요. 형식적인 박수가 아니고 고생했다, 잘봤다, 고맙다는 마음이 담긴 박수였죠. 언제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싶은 감동이었어요.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공연배달서비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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