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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셋으로 먹는 생선회 요리기술 넘은 요리예술

중앙선데이 2015.03.21 01:02 419호 28면 지면보기
‘계절 생선회’.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예술적으로 구성했다. 생선회는 달랑 석 점이지만 다른 재료들은 모두 15가지가 넘는다. 하나하나가 다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마치 예술을 하는 것처럼 요리를 하는 셰프들이 있다. 좋은 재료는 기본이다. 열심히 정성스럽게 만든다.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우직하게 기본을 지키면서 어려운 길을 고집한다. 바로 작가 정신이다. 여기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더하고 예술적인 터치를 통해 미각뿐 아니라 오감 모두를 만족시켜 주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낸다. 오랜 공부와 수련을 통해서 쌓은 내공이 이를 뒷받침한다. 표현되는 결과물이 음식이라는 것뿐이지 예술 행위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55> 신사동 류니끄

▶류니끄(Ryunique) :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20-1 1층. 전화 02-546-9279. 휴일은 따로 없다. 세트 메뉴만 있다. 점심 3만8000 원 저녁 10만 원. 류 셰프의 멋진 요리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저녁 메뉴를 권한다
일본 유학 뒤 런던 고든 램지서 수련
이런 셰프들은 단순한 한끼 식사를 인생의 큰 즐거움을 주는 이벤트로 업그레이드 시켜준다. 아주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기술자’는 많아도 이런 ‘예술가’는 생각보다 많지가 않다. 국내 국외 모두 마찬가지다.

최근에 내가 만난 ‘예술가’ 셰프가 한 분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 근처에서 ‘류니끄(Ryunique)’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류태환(35) 셰프다. 일식과 프렌치를 베이스로 한 현대식 창작요리를 전문으로 한다.

류 셰프는 요리를 늦게 시작했다. 예술을 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방황하던 그에게 요리를 해보라고 아버지가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제대 후 인생을 요리에 걸어 보겠다고 결심한 그에게 아버지는 “한번 시작했으면 최고가 되라”고 격려했다. 그 말씀은 그의 요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좌우명이자 나약해 질 때 이끌어 주는 힘이 됐다.

그때부터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자신의 레스토랑을 여는 것이 목표였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핫토리라는 유명 요리 학교를 졸업하고 고급 일식집에서 경험을 쌓았다. 5년 후에는 호주와 영국으로 가서 그곳 최고의 레스토랑들에서 서양 요리를 익혔다. 영어도 잘하지 못했고 경험도 많지 않았지만, 용감하게 직접 부딪혀가며 기회를 찾아냈다. 특히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인 런던의 ‘고든 램지(Gordon Ramsay)’에서는 혹독한 수련을 받으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렇게 8년이라는 준비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2011년 본인의 레스토랑 ‘류니끄’를 오픈했다.

류 셰프의 요리는 창의적이고 정성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물론 맛도 좋다. ‘테이스팅 메뉴(Tasting Menu)’라고 이름 붙인 저녁 식사 메뉴를 보면 코스 요리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세 가지로 나눠서 나오는 ‘아뮤즈 부쉐(Amuse Bouche·식전 한입 요리)’중에서 작은 화분을 이용한 것이 있었다. 식탁에 올려 놓을 화분을 가져왔나 싶었는데 그 이파리에 두 점의 치즈 튜일(Tuile·치즈를 끓여 만든 과자류)을 크림으로 붙여 놓은 것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기발했다. 이쯤 되면 벌써 식사 시간이 재미있는 퍼포먼스를 즐기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회 석점과 15가지 재료의 조화 ‘계절 생선회’
요리 모두가 평범하지 않지만 특히 ‘계절 생선회’라고 이름 붙인 메뉴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까만색 오석 플레이트 위에 여러 재료를 이용해 예술적으로 요리를 구성한 것이다. 생선회는 달랑 세 점 밖에 없지만 15가지가 넘는 다른 재료들이 들어가 있었다. 그린 허브 퓌레·오이로 만든 폼(Foam)·당근·오이 피클·마늘종·쪽파·세모가사리 해초·생월계수잎·석류 등으로 그림처럼 멋지게 구성을 해 놓았다. 그리고 독특하게 의료용 핀셋을 줬다. 섬세하게 맛을 감상하라는 것이다.

작은 재료 하나하나를 핀셋으로 집어서 맛을 보는데, 각자 고유의 맛이 있으면서 나름의 존재 이유가 느껴진다. 생선회 세 점 밖에 없는 플레이트를 이렇게 천천히 그리고 만족스럽게 먹기는 처음이었다.

얼마 전 영국의 유명 외식 전문지 ‘레스토랑(Restaurant)’에서 선정한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류니끄’가 포함됐다. 한국에서는 단 세 곳이 선정됐다. 국제적인 수준에서도 그의 요리가 인정을 받은 것이니 류 셰프는 ‘최고가 되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의미에서 더욱 자랑스럽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다.

앞으로도 평생을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가며 계속 노력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자 희망이라고 하니 머지 않아 전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으로 선정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엔 이미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예술’이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과 아무 말없이 지금까지 뒷바라지 해주셨다는 어머니를 위해서도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주영욱 음식·사진·여행을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음이 담긴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 박사. 베스트레블 대표. yeongjy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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