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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심리를 척척 읽어내는 빅데이터의 마술

중앙선데이 2015.03.21 01:13 419호 32면 지면보기
저자: 송길영 출판사: 북스톤 가격: 1만5000원
통큰 TV는 누가 사는 것일까. 사실 기업이 처음 제품을 내놓았을 때 예측한 소비자는 싱글층이었다. 40인치 이하, 50만 원 부근이라는 설정도 그 때문이었다. 작은 집에 부담이 되지 않는 사이즈면서도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이른바 맞춤형 상품이었던 셈이다.

『상상하지 말라』

하지만 구매는 전혀 다른 곳에서 이뤄졌다. 수요는 많지만 브랜드는 중요하지 않은 모텔 혹은 멀티방 주인 등이 대량 사들인 것이다. 정작 1인 가구가 원한 건 70인치 모니터였다. 직접 컴퓨터에 연결해야 하는 수고로움이나 300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은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매일 같이 게임을 하고 동영상을 보는 싱글에게 모니터는 동반자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상상하지 말라’는 저자의 단언은 남다른 관찰력에서 나온다. 다음소프트 부사장인 그는 사람들이 매일같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쏟아내는 데이터를 분석한다. 하루 등록되는 트위터만 5억 건이라고 하니 가히 ‘기록하는 인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맥락도 정확하게 짚어낸다. “바쁜 며칠이 지나고 카페에서 아이패드와 폰에 딱 붙어서 여유로운 금요일을 보낸다”라는 문장에는 시간과 장소, 행동이 모두 들어있다. 반면 “스마트폰 홈버튼이 고장났다”와 같이 정보가 없는 텍스트는 해석 대상에서 제외된다. 빅데이터를 읽으면 라이프스타일이 보이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읽는 내내 몰래 쓴 일기를 들킨 것 마냥 뜨끔했다. 백화점에 가는 이유는 옷을 보기 위함이지 사는 것이 아님을, 그보다는 새로 입점한 맛집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데이터는 모두 알고 있었다. 전체의 15%에 불과했던 식당이 2배로 많아지니 나 역시 백화점에서 약속을 잡는 횟수가 늘어났던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최근 들어 부쩍 맛을 들인 에일 맥주 역시 데이터의 산물이었다. 룸살롱의 법인카드 사용액수가 2010년 9963억원에서 2013년 7467억원으로 25% 가량 줄면서 폭탄주 회식 대신 가볍게 한잔 하는 우아함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는 관찰을 기반으로 한 상상이 정설이 되었음을 증명한 셈이다.

TV만 틀면 먹방과 육아 예능이 나오는 이유 역시 명쾌하게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요즘 죽도록 먹는다. 배고프다는 말도 입에 달고 산다. 뇌가 비어서 느끼는 허기와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맞물려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더 먹고 싶어진다는 것. 또 여성 고용률이 높아지면서 남자들도 독자적인 생존 방법을 찾아야 했다. 누구나 삼시세끼 해결과 함께 가사노동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육아를 마땅히 해낼 수 있어야 하기에 ‘아빠’가 가장 먼저 잡혀오게 됐단 얘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데이터 날 것 그대로는 힘이 없다는 사실이다. 100건이 모이든 100만 건이 쌓이든 사람의 통찰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나열에 불과하다. 일상에서 잘 관찰하면 1단 기어, 데이터가 들어가면 2단 기어, 타인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3단 기어라는 비유를 명심하자. 그래야 선입견과 과거 당연했던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 변화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을테니 말이다. 5년 전만 해도 ‘흡입’과 가장 빈번하게 쓰이던 단어는 ‘지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폭풍’이 그 자리를 대체했으니 다음은 또 무엇이 될지 모를 일이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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