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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418> 린뱌오 편지 전한 황푸 동기생들 의문의 죽음·체포

중앙일보 2015.03.21 16:18
문혁 초기의 린뱌오와 마오쩌둥. [사진 김명호]



류사오치·덩샤오핑 몰락 본 뒤
린 "다음은 내 차례" 직감하고
장제스에 '충성서약' 비밀 편지
마오쩌둥은 이미 동태파악 끝내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은 싸움을 즐겼다. 적과 동지가 확실했다. 모든 사람을 적과 동지로 분류했다. 적이 없으면, 없는 적도 만들었다. 적이 동지가 되는 법도 없었다. “친밀했던 전우”가 불공대천의 원수로 변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적과 내통한 흔적이 보이는 동지에게는 더 가혹했다. 솜씨도 발군이었다. 평생 피비린내를 풍겼다. 단, 충성심만 확인되면 부패에는 관대했다.



국·공 양당은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싸움을 멈춘 적이 없었다. 놀던 동네가 비슷하고, 북벌과 항일전쟁을 위해 두 차례 연합을 하다 보니 뒷구멍으로는 연락이 그치지 않았다. 국민당 고관들 중에는 마오쩌둥이나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등과 몰래 서신을 주고 받는 일이 허다했다. 공산당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월 덕에 밝혀진 것도 많다. 묻혀진 것은 더 많다. 워낙 비밀이 많고, 겉과 속이 같으면 3류 취급하는 민족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자력으로 큰일을 이룬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매사에 꼼꼼하고 의심이 많다. 린뱌오(林彪·임표)도 마오쩌둥 못지 않게 의심이 많았다. 문혁 초기, 린뱌오는 류사오치(劉少奇·유소기)와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의 몰락을 목도했다. 류샤오치 다음은 자기 차례라는 생각을 안 했다면 린뱌오가 아니다. 측근들에게 마오의 매도를 서슴지 않았다. “보통 음흉한 사람이 아니다. 생각을 말해 보라고 할 때 조심해라. 의견을 늘어놓게 하고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이다. 류사오치의 사상은 마오보다 뛰어났다. 죽음으로 몬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마오의 부인 장칭(江靑·강청)도 싫어했다. 겉으로는 손을 잡았지만 치를 떨었다. “뱀 같은 여자다. 저런 것들은 내버려두면 오래 산다. 죽여버려야 한다.”



마오쩌둥과 타오주 부부. 타오주는 중국인들이 홍색부인이라 부르던 쩡즈(曾志)의 세번째 남편.




린뱌오는 타이완에 있는 장제스(蔣介石·장개석)와 연락을 모색했다. 타오주(陶鑄·도주)와 연명으로 홍콩에 있는 황푸 동기생 저우요(周游·주유)에게 서신을 보냈다. “티에(鐵) 형, 생각만했지 연락 못한지 오래다. 황푸에서 함께 뒹굴던 날들이 꿈만 같다. 형의 자질과 영민함은 변함이 없을 줄 믿는다. 국가를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야 할 사람이 한가한 나날을 보낸다니 애석하다. 원쭤(文灼·문작)가 그쪽으로 가는 편에 소식 전한다. 지금 우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장차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교장이 지난날 우리의 허물을 책하지 않는다면 기회를 만들겠다. 폐부에서 나오는 사죄에 대신하겠다.” 발신인에는 尤와 鑄를 명기했다.



1949년 하이난다오(海南島) 후근(後勤) 사령관을 끝으로 국민당 군복을 벗은 저우요는 홍콩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황푸 동기생 사오쩡이(蕭正儀·소정의)가 건네준 편지를 읽고 경악했다. 영락 없는 린뱌오의 필적이었다. 수신인과 발신인도 남들은 알 리가 없는 황푸시절의 호칭이었다. 티에는 저우요의 별명이었고, 원쭤는 사오쩡이의 별칭이었다. 린뱌오의 자(字)가 요우용(尤勇·우용)인 것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鑄는 중공 중앙정치극 상무위원과 부총리를 겸한 중앙문혁 소조 고문 타오주가 분명했다.



국공전쟁 초기. 동북 야전군 사령관 시절의 린뱌오. [사진 김명호]




저우요는 진위를 의심치 않았다. 국민당원인 아들에게 부탁했다. “타이완에 다녀와라. 이 편지를 국방정보국 주임 장스치(張式琦·장식기)에게 전해라.” 바다에 어선을 풀어놓고 정보를 수집하던 장스치는 대륙 정보에 정통했다. “역시 린뱌오답다”며 편지 내용에 만족했다.



장스치의 보고를 받은 국방부장 장징궈(蔣經國·장경국)는 신중했다. “연구해 보자”며 말을 아꼈다. 황푸에서 린뱌오와 침상을 나란히 했던 육군 총사령관 가오퀘이위안(高魁元·고괴원)도 린뱌오의 필적을 한눈에 알아봤다. 가오퀘이위안은 마음이 급했던지 장제스에게 직접 보고했다.



훗날 장스치는 미국에서 구술을 남겼다. “최고 통수권자가 내게 지시했다. 나는 인편에 홍콩의 저우요에게 편지를 보냈다. 두 사람과의 연락은 축하할 일이다. 우선 지위를 공고히 하고 때를 기다리라고 전해라. 우리는 무슨 지원이건 마다치 않겠다. 진일보된 소식을 기다리겠다.” 타이완 측의 회답을 받은 사오쩡이는 대륙으로 돌아왔다.



상하이에 도착한 사오쩡이는 도처에 나붙은 “타오주 타도” 벽보를 보고 저우요에게 편지를 보냈다. “두 사람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며칠 후 사오쩡이는 실종됐다. 홍콩의 저우요도 목욕탕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오쩡이의 체포는 극비였다. 상황을 파악한 마오쩌둥은 내색을 안했다. 타오주 휘하에 있던 광둥 군구의 지휘관들부터 한 명씩 갈아치웠다. 감옥에 갇힌 타오주는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로 끌려갔다. 옥중에서 암으로 숨을 거뒀다. 시신도 남지 않았다. 마오쩌둥은 군을 장악한 린뱌오의 위세를 이용해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의 추종자들을 완전히 제거했다. 린뱌오가 마오쩌둥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다. 위기를 직감한 린뱌오는 우선 살고 봐야 했다. 늦은 줄 알았지만 마오 충성에 열을 올렸다.



린뱌오도 인간이었다. 비범과 평범함을 넘나들기는 보통사람과 그게 그거였다. 영문도 모르는 측근들만 날벼락을 맞았다. (계속)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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