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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티라노사우루스는 사냥꾼인가? 시체청소부인가?

중앙일보 2015.03.21 14:43
① 너무나 다르게 변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상상도. 꼬리가 아래로 쳐지고 캥거루처럼 서 있던 모습에서 꼬리를 수평으로 세운 날렵한 모습으로 변하더니, 피부에 털이 나기 시작했다.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의 전편 자문역이었던 로버트 바커에게 실망
로버트 바커를 연상시키는 로버트 버크란 캐릭터를 후편 영화에 등장시켜
버크가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비참하게 잡아먹히게 하지만
결과적으론 스필버그가 바커의 손을 들어준 셈

전 세계 거의 모든 자연사박물관이 그러하듯이 서대문자연사박물관 1층 중앙 홀엔 거대한 공룡이 우뚝 서 있다. 아이 손을 꼭 잡고 박물관에 들어선 아빠가 갑자기 아이 손을 놓고선 공룡을 향해 소리치며 달려간다.

“와, 티라노사우루스다!”

아빠 손을 놓친 아이는 순간 당황해 하면서도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아빠가 티라노사우루스도 아시다니, 정말 똑똑하고 멋진 아빠야!”란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나 아이가 실망하는 데는 25초도 걸리지 않는다. 아이는 티라노사우루스의 손가락은 분명히 두 개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서 있는 공룡은 손가락이 세 개이기 때문이다. 공룡 밑엔 ‘아크로칸토사우루스’란 명판이 붙어 있다. 아이와 아빠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티라노사우루스를 보려면 대전에 있는 지질박물관에 가야 한다.



아이 앞에서 스스로 망신을 자초한 아빠들 가운데는 ‘고객의 소리’ 함에 항의성 엽서를 넣는 분들이 있다. “내가 전 세계 자연사박물관을 많이 다녀봤다. 모두 티라노사우루스가 진열돼 있었다. 너희는 뭐가 잘나서 아크로칸토사우루스냐?”란 요지다.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가 중앙 홀에 떡하니 전시된 자연사박물관은 그리 많지 않다. 각기 다른 수각류 공룡들을 본 뒤 자신은 티라노사우루스를 봤다고 착각했을 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간단하다. 고생물학 또는 자연사박물관의 최고 스타는 누가 뭐래도 ‘티라노사우루스’이기 때문이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최고 스타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사박물관에서 티라노사우루스를 많이 봐서가 아니라 영화 『쥬라기공원』에서 이 공룡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인 ‘쥬라기’의 올바른 표기는 ‘쥐라기’다.



다시 말해 티라노사우루스를 고생물학계의 최고 스타로 만든 사람은 고생물학자가 아니라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란 말이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알고 있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모습은 자연사박물관이 아니라 영화에서 본 바로 그 모습이다. 난 지금 스필버그 때문에 우리가 티라노사우루스에 대해 어떤 오해를 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스필버그 감독 덕분에 우리는 티라노사우루스를 비롯한 공룡의 모습과 생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됐다.



800만 달러에 팔린 티라노사우루스의 뼈



티라노사우루스는 1892년부터 1981년까지 총 13개체가 발견됐다. 이 가운데 단 한 개체만이 45%의 뼈가 발견됐다. 나머지는 10~25%의 뼈만 보존된 상태였다. 당연히 티라노사우루스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많은 상상이 더해져야 했다. 그러다보니 1915년 오즈번(H. F. Osborne, 1857~1935)이 미국자연사박물관에 처음 전시한 티라노사우루스는 캥거루처럼 상체를 일으킨 자세에다 손가락도 세 개로 복원되는 등 오류가 많았다.



1990년에 가서야 새 역사가 쓰였다. 중요한 혜성은 대개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찾아낸다.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화석도 아마추어 고생물학자가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수잔 헨드릭슨(Susan Hedrickson, 1949~)은 자전거를 타고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의 한 개인농장을 지나다 사암 절벽에 드러난 커다란 등뼈와 갈비뼈를 발견했다. 이 표본은 자그마치 80%의 뼈가 보존돼 있었다. 발견자와 농장주 사이의 소유권 다툼으로 주(州) 방위군까지 동원됐다. 표본을 압수하고 법정소송까지 간 끝에 경매에 붙여져 800만 달러에 매각됐다. 현재 이 표본은 미국 3대 자연사박물관 중 한 곳인 시카고의 필드자연사박물관(The Field Museum)에 전시돼 있다. 이 표본은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수(SUE)’라고 불린다. ‘수’는 두개골의 내부구조부터 뼈에 남은 상처, 성별 등에 대한 풍부한 연구 자료를 제공한다.



1992년엔 역시 발굴자의 이름을 딴 ‘스탠(STAN)’이 발견됐다. ‘스탠’은 70%가 보존됐다. 특히 두개골이 폭발이라도 한 것처럼 완전히 분해돼 흩어진 덕분에 뼈들이 두꺼운 퇴적층에 눌리면서도 거의 변형되지 않았다. ‘스탠’은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며 복제품 가운데 하나가 현재 대전 지질박물관에 있다. 2003년까지 총 37개체의 티라노사우루스가 발견됐지만 아직 ‘수’와 ‘스탠’을 능가하는 표본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티라노사우루스에 관한 지식은 모두 이 두 개체에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편 때 티라노의 시속은 최고 70㎞



1993년에 개봉한 『쥬라기공원』은 마이클 크라이튼(Michael Crichton, 1942~2008)의 동명(同名) 소설을 원작으로 해 만든 영화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에서 티라노사우루스를 새처럼 날렵하고 지프차와 맞먹는 시속 70㎞로 달리는 모습으로 그렸다. 여기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미국 휴스턴자연사박물관의 로버트 바커(Robert Bakker, 1945~) 박사다. 생태환경과 공룡의 행동을 연구하는 바커는 공룡은 온혈동물이고 영리하며 민첩하고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바커와 그를 지지하는 과학자들에 따르면 티라노사우루스는 가장 강력한 사냥꾼의 전형을 보여주는 모든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티라노사우루스의 눈구멍은 큰 눈과 뛰어난 시력을 말해준다. 구경이 큰 망원렌즈가 멀리 있는 물체를 선명하게 찍듯이 티라노사우루스는 독수리보다 4배, 사람보다 13배나 시력이 뛰어나 6㎞ 떨어진 사물을 분간할 수 있다. 게다가 양 눈이 정면을 향해 있어서 사물까지의 거리를 파악한다.



둘째, 사냥에서 중요한 것은 최고 속도다. 티라노사우루스는 다리가 긴 데다 지금 살아 있는 어떤 동물보다도 상대적으로 다리 근육이 커다랗기 때문에 시속 40~70㎞로 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꼬리에 근육이 많아서 무게중심이 엉덩이가 있는 뒤쪽에 있다. 그 결과 체중을 지탱하느라 다리 근육이 받는 압력이 줄어들어 전체적인 균형과 민첩성이 좋아진다.



셋째, 티라노사우루스는 주둥이가 불도그처럼 짧고 두꺼운데다 턱 근육마저 두툼해서 1.3t에 이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거대한 이빨은 돌을 쪼개는 정처럼 두텁고 앞뒤 모서리마다 톱니구조가 있다. 티라노사우루스의 강한 턱과 두꺼운 이빨에 희생된 다른 공룡들이 함께 발견된다.



속편 때는 속도가 시속 30㎞로 느려져



스필버그 감독은 1997년에 속편인 『쥬라기공원 - 잃어버린 세계』을 내놓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티라노사우루스는 겨우 사람을 따라잡을 정도의 속도인 시속 30㎞로 달린다. 4년 새 티라노사우루스가 느림보로 바뀐 것이다. 스필버그가 전편을 찍을 때 자문했던 바커 박사와 결별하고 미국 몬태나 주 로키산맥박물관의 큐레이터인 존 호너(John Horner, 1946~)와 손잡았기 때문이다. 호너는 바커와는 정반대로 티라노사우루스는 날렵한 사냥꾼이긴커녕 느려 터진 시체청소부라고 여긴다. 여기에도 근거가 있다.



첫째, 사냥꾼의 가장 큰 덕목은 빠른 방향 전환이다. 그런데 티라노사우루스의 무게 대부분은 무게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통나무를 들고 움직이는 것과 같다. 김연아 선수의 제자리에서 도는 스핀(spin) 연기를 보면 점점 속도를 빠르게 할 때는 손을 몸 쪽으로 모으고 속도를 늦출 때는 팔을 벌린다. 각(角)운동량이 보존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티라노사우루스가 회전하는 것은 김연아가 팔을 벌리고 도는 것과 같다. 사람은 몇 분의 1초 만에 몸을 45도로 돌릴 수 있지만 티라노사우루스는 1~2초는 족히 걸렸을 것이다. 코끼리처럼 정강이뼈보다 넙적 다리뼈가 더 긴 티라노사우루스는 이동 중에 몸 전체가 공중에 떠 있는 순간이 없을 테니 달리진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티라노사우루스가 빨리 달리다가 넘어지면 그 작은 팔론 충격을 줄일 수 없기 때문에 몸통이 6G(중력가속도의 여섯 배)로 땅에 부딪히게 돼 심한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둘째, 티라노사우루스는 뇌에 비해 매우 큰 후각망울과 후각신경이 있어 냄새를 아주 잘 맡는다. 냄새로 시체를 찾는 독수리처럼 멀리 떨어져 있는 시체를 찾아 청소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셋째, 강한 턱 근육과 이빨은 사냥꾼이 아니라 청소부의 증거다. 강력한 턱과 이빨은 뼈를 부수는 도구다. 자연계의 사냥꾼은 굳이 뼈까지 부숴먹을 필요가 없다. 항상 먹이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시체청소부나 뼈를 부숴먹는다.



② 최대 30㎝에 달하는 티라노사우루스의 크고 두꺼운 이빨. 아래쪽 절반 이상은 잇몸 속에 감춰져 쓰이지 않던 부분이다.




넷째, 1m밖에 안 되는 짧은 팔은 움직이는 먹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다섯째, 티라노사우루스가 살던 시절엔 활공능력이 있는 독수리 같은 시체청소부가 없었기 때문에 청소동물이란 생태적 지위를 경쟁 없이 차지할 수 있었다.



‘모른다’가 정답



속편에서 호건의 자문을 받은 스필버그 감독은 전편을 자문했던 로버트 바커를 연상시키는 로버트 버크(Robert Burke)란 캐릭터를 영화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버크가 티라노사우루스에게 비참하게 잡아먹히게 한다. 결과적으론 스필버그가 바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로버트 바커의 주장대로 티라노사우루스는 사냥꾼이 됐으니 말이다.



존 호너는 2001년 티라노사우루스 다섯 개체를 한꺼번에 발견했다. 2003년엔 그의 제자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메리 슈바이처(Mary Schweitzer) 박사가 티라노사우루스 ‘B-rex’에서 콜라겐 단백질로 이뤄진 연질부(軟質部)와 혈관을 발견해 명성을 날렸다. 슈바이처가 발견한 연질부는 현생 새들이 자신의 알에 필요한 칼슘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암컷만 알을 품으므로 B-rex는 암컷이며, 배란 중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존 호너는 티라노사우루스와 조류 사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연질부는 둘 사이의 진화적 관계가 있다는 뜻이며, 새는 공룡의 후손이 아니라 공룡 그 자체라고 말한다.



티라노사우루스는 과연 날렵한 사냥꾼일까, 아니면 느림보 시체청소부일까? 로버트 바커와 존 호너가 볼썽사납게 다툰 것과는 달리 대다수 고생물학자들은 티라노사우루스는 활동적인 사냥꾼인 동시에 기회가 생기면 시체도 마다하지 않는 청소동물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고생물학자 토머스 홀츠(Thomas Holtz, 1965~) 박사는 “과학에선 때로는 ‘모른다’가 가장 좋은 답일 수 있다”고 말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어떻게 살았는지 누가 봤나? 우리는 아직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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