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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호의 세계 책방 기행] 해리스버그의 극장책방 미드타운 스콜라

중앙일보 2015.03.21 13:57
해리스버그 미드타운 스콜라는 극장을 개조해 만든 책방. 2층에서 내려다 본 해리스버그 미드타운 스콜라 전경.



낙후된 지역을 책과 책방이 재생시킨다

책방은 지역 사람들이 만나는 공회당



‘천국은 도서관 같은 곳’일 거라고 보르헤스는 말했지만, 책방이야말로 천국이 아닐까. 책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책을 위한 책의 공간이다.

폐허가 되어 방치된 극장이 책방으로 다시 탄생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주도(州都) 해리스버그에 있는 ‘미드타운 스콜라’(Midtown Scholar)가 바로 그 책방이다. ‘극장책방’ 미드타운 스콜라는 전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책방이 되었다.

1920년대에 지어진 이 극장은 백인과 흑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해리스버그의 명소였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최초로 백인과 흑인이 함께 영화를 관람한 역사적 공간이었다.



예일대 출신의 동갑내기 부부 에릭 파펜푸세(43)와 캐서린 로렌스(43)는 버려져 있는 이 극장을 주목했다.

젊은 부부의 생각은 적중했다. 무너져 내린 건물의 안팎을 수리해 2010년에 문을 연 중고책방 미드타운 스콜라는 낙후한 지역 일대를 ‘재생’시키면서 일약 미국 동부의 주목받는 책방이 된 것이다.



“책방은 사람들을 만나게 합니다. 지식과 지혜를 공급합니다. 책을 읽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토론합니다.”

미드타운에서는 일주일에 20~30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저자들이 사인회를 하고 독자들과 대화한다. 지역 작가들을 배려한다. 인디 뮤지션들의 무대가 된다. 클래식이 연주된다. 북클럽의 토론공간이 된다. 아이들 책의 작가들을 초청한다. 아이들의 스토리텔링 행사가 열린다. ‘리틀 스콜라’ 프로그램이다.



현실적인 주제로 강연회와 토론회를 이어간다. 폭력과 죽음으로 점철된 콩고 내전으로 아버지를 잃고 미국으로 망명해온 아프리카의 청년 마카야 레벨이 그의 슬픈 가족사를 이야기한다.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젊은 영화작가이자 베스트셀러 저자인 M.K. 아산테의 생각과 목소리를 듣는다.



“왜 이런 모험을 하느냐고 걱정들 했지만, 지금 커뮤니티칼리지가 이 지역에 문을 열었습니다. 미술관이 개관했습니다. 영화관이 생기기 시작했고 아트숍과 카페들과 식당이 문을 열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찾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해리스버그는 자동차로 뉴욕에서 3시간, 워싱턴에서 2시간, 필라델피아에서 2시간, 볼티모어에서 2시간 걸린다. 주말이면 이런 도시 사람들이 미드타운을 찾는다. 7~8시간 차를 몰고 오는 충성독자들도 있다. ‘스콜라’라는 책방 이름에 걸맞게 인문서나 학술서를 대거 확보하고 있다.



책 축제는 시민들의 민주주의 훈련



해리스버그 시내에 있는 서고에 쌓여있는 책들.




헌책방 오너들은 책을 사냥하러 동서남북을 뛰어다닌다. 여러 해 전 영국 웨일스 지방 책방마을 헤이온와이를 방문했을 때, 나는 책방마을 운동을 선구적으로 전개한 리처드 부스에게 그의 책사냥 이야기를 신나게 들었다. 리처드 부스는 이역만리에서 찾아간 손님에게 앉으라고도 하지 않고 선 채로 한 시간 이상 열을 올리면서 헌책을 예찬하고 그의 북헌팅을 이야기했다. 영국은 물론이고 뉴욕으로 어디로 책을 찾아다니는 리처드 부스가 해리스버그에도 왔었다. 10여 년 전 파펜푸세는 그의 책방에 와서 책을 뒤지고 있는 리처드 부스를 만났다.



파펜푸세는 열정적인 북헌터다. 팔겠다는 책이 나타나면 어디든 달려간다. 2002년에는 텍사스의 작은 도시 아처시티에 갔다. 한때 미국 헌책방의 전설이었던 ‘북드 업’(Booked Up)이 문을 닫아서다. 소설 『고독한 비둘기』로 퓰리처 상을 수상하기도 한 래리 맥머트리가 갖고 있는 45만 권의 책 가운데 30만 권을 경매한다는 것이었다. 책이 귀한 마을에서 자라났지만 독특한 문학세계로 일가를 이룬 맥머트리는 그의 고향에 헤이온와이 같은 책방마을을 꿈꾸었다. 그러나 은퇴하면서 60년 이상 열었던 책방의 문을 닫아야 했다. 『뉴욕 타임스』가 안타까운 이 소식을 전했고 여러 서점인들이 대형트럭을 몰고 아처시티로 갔다. 파펜푸세는 5만 권을 실어왔다.



파펜푸세 부부가 학창시절에 늘 찾던 서점 매킨티어앤모어(Mcintyre & More)도 책방 오너가 은퇴하면서 2012년에 문을 닫았다. 부부는 10만 권을 실어왔다.



“독립서점은 대를 이어 운영하기가 쉽지 않아요.”

미드타운의 직원은 60여 명. 온라인 비즈니스도 한다. 그러나 파펜푸세는 종이책의 유용성과 가능성을 환기시킨다.

“전자책을 보거나 온라인으로도 책을 볼 수 있지만, 책을 몸으로 만져보고 뒤져보면서 미처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미드타운이 중심이 되는 해리스버그 책 축제가 해마다 3월에 열린다.



“민주주의란 책을 읽고 지적으로 교류하고 대화함으로써 가능합니다. 독서는 공동체 성원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일깨워줍니다.”



“우린 서로의 서가를 보고 결혼했다”



입구 쪽에서 바라본 책방 모습.




메릴랜드 출신인 파펜푸세 부부는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책의 재미, 책의 힘이 그들을 책방의 길로 이끌었다.

“나보다 더 많은 책을 갖고 있는 이 사람이 좋아서 결혼했지요. 우린 서로의 서가가 좋아서 결혼하자 했습니다.”

부부의 책사랑·독서사랑은 올해 열세 살인 큰딸 클라라에게 이어진다.



“벌써 자기 컬렉션을 갖고 있답니다. 판타지를 좋아해서 자기 방을 판타지로 채워가고 있지요.”

나는 부부에게 내가 쓴 『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와 한길그레이트북스의 독자들을 위한 노트 ‘발터 벤야민’을 주었다. 부인 캐서린이 “아, 벤야민!”하면서 반색했다.



“벤야민도 책과 독서에 관해 글을 썼지요.”

미드타운이 교육단체와 비영리단체들의 활동을 위해 활용된다는 것이 부부의 보람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된다. 연 500여 회나 되는 프로그램들은 당연히 책방의 비즈니스를 돕는다. ‘문화’가 ‘경제’가 된다는 사실이 미드타운의 사례에서 확인된다.

한국 청년 전승 씨의 안내로 서고를 보러 갔다. 6미터 높이의 장대한 서가들에 꽂혀 있는 50여만 권의 책의 숲이 경이롭다. 같은 규모의 서고가 해리스버그 교외에도 있다. 미드타운이 보유하고 있는 책은 100만 권을 넘어섰다.



전승 씨가 미술책 코너에서 아무 책이나 한 권 집으라고 한다. 선물로 주겠단다. 나는 가로 48센티미터, 세로 67센티미터의 『UPON PAPER』를 집었다. 베를린의 미술 출판사 하네뮬레가 기획하는 예술계간지로 2012년 가을호다.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사진작가들의 작품과 비평을 실은 ‘큰 책’이다. 2012년 레드닷(Reddot)의 베스트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오래된 책들의 향기, 책들의 음향



폐허의 공간과 쇄락한 지역을 헌책과 헌책방이 재생시키는 한 현장이 미드타운 스콜라다. 한 도시의 새로운 지적·문화적 풍경이 미드타운 스콜라다.



영국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은 자신의 문학적 자서전인 『서밍업』을 1938년에 펴낸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고 묻는다. 책으로 탐험하는 생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이른 봄날, 해리스버그로 달리는 고속도로는 눈발이 흩날렸다.

눈길을 뚫고 들어선 극장책방 미드타운 스콜라.

아, 책의 숲이다. 책들의 음향이다.

책을 뒤지는 사람들의 두런거림. 카페에서 풍겨오는 커피향.

오래된 책들의 냄새.



김언호 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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