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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0.18% 춘투

중앙일보 2015.03.21 01:18 종합 1면 지면보기
지난 16일 취임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0.18%포인트라는 시험문제를 받아 들었다. 출제자는 북한이다.


개성공단 임금인상 5% 상한 넘겨 … 홍용표 통일부 첫 시험대
5·24 조치 5주년 앞두고
북한, 남측 떠보기인 듯
5.0001%도 안 된다는 정부
"당국 간 협의로" 여지 남겨

북한은 지난달 24일 개성공단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70.35달러에서 74달러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인상률은 5.18%. 별거 아닌 듯한데 그게 그렇지 않다. 들어 주느냐 마느냐에 개성공단과 2015년 남북관계를 푸는 실마리가 담겼기 때문이다. 통일부의 문제 풀이는 한 달째 계속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북한이 제시한 5.18%라는 ‘숫자’와 일방적 요구라는 ‘형식’이다. 남북이 2년 전 개성공단 잠정 폐쇄 후 합의한 바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어느 일방이 아니라 남북 공동위원회가 협의로 해결해야 한다. 또 개성공업지구법은 최저임금 인상률 상한선을 5%로 제한했다. 그런 만큼 5.18%는 법을 넘는 요구다. 그래서 “북한식 춘투(春鬪·봄철의 임금 인상 투쟁)”(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 교수)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통일부 핵심 관계자는 20일 “5.0001%라고 해도 5%를 넘기는 건 현재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법에 정해진 한도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법을 개정한다면 별개”라고 했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도 “노동규정 개정을 위한 당국 간 협의가 중요하다”며 “이 방식으로 개정된다면 5% 이상의 인상도 불가능한 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0.18%P를 더 올리자고 개성공업지구법을 고치는 건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액수도 그리 큰 게 아니다. 0.18%P를 돈으로 환산하면 0.12달러(135원)에 불과하다. 결국 북한의 의도는 돈에 있는 게 아닌 셈이다. 익명을 요청한 보수 성향 싱크탱크의 전문가는 “북한이 남측을 떠보고 있는 것”이라며 “판을 엎으려면 말도 안 되는 인상률을 제시하는 게 북한 스타일인데 이번 요구엔 남측이 수용해 주길 바라는 북한의 마음이 담겼다”고 풀이했다.



 일종의 기싸움이라는 것이다. 김근식 교수는 “기싸움에서 안 지려고 일단 세게 나가고 보는 게 북한”이라며 “이 성향을 파악하며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 통일정책과 맞물려 있는 만큼 통일부 홀로 움직이기 힘든 구조라는 점이다. 시점도 미묘하다. 올해는 5·24 조치 시행 5주년에다 박근혜 정부 3년 차다. 올해 남북관계에 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서강대 김영수(정치외교학) 교수는 “북측이 (한·미 연합훈련이 종료되는) 4월 24일 이후 대남 유화 제스처를 펼칠 수 있다”며 “기싸움만 하다가 옹졸한 이미지로 굳어지기 전에 솔로몬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 만나=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20일 국회에서 개성공단기업협회 임원들과 만나 애로사항을 들었다. 협회는 2013년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됐을 때 정부에서 대출한 긴급운영자금의 상환 유예 등을 요구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측 125개 기업이 5만3000명의 북측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사회보험료는 연간 8700만 달러(약 977억원)다.



전수진·김경희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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