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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모를 듯 뇌섹남 … 요섹남 이건 또 뭐지

중앙일보 2015.03.21 00:23 종합 12면 지면보기
왼쪽부터 베네딕트 컴버배치, 성시경, 유희열, 허지웅, 미카엘, 최현석, 샘 킴, 차승원.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이런 글이 많다.

[뉴스 속으로] 2015 대한민국 대세남
뇌가 섹시한 남자, 뇌섹남
요리 잘하는 섹시남, 요섹남



 “진짜 뇌섹남은 ‘맨스플레인(man+explain·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설명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 ‘맨스경청’이 아닐지. 다 아는 지식을 누군가 막 늘어놔도 모른 척 가만히 듣고 있는 남자만큼 멋진 남자가 또 있겠는가.”



 “훈장질하려는 남자와 정말 대화를 하고 싶은 남자가 다른 건 여자들이 제일 잘 아는데 요새 자꾸 같잖은 훈장들이 뇌섹남을 자칭.”



 “철학과 출신은 왠지 뇌섹남일 것 같은.”



 이뿐만 아니다. 남성 출연자가 많은 TV 예능프로그램엔 어김없이 ‘뇌섹남’ 자막이 한 번쯤 등장한다. “이 문제 풀면 뇌섹남”이란 IQ 테스트 같은 문제도 있다.



 뇌가 섹시한 남자들. 이들이 꽃미남·짐승남·훈남·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엄친아(엄마 친구 아들)까지 누르고 2015년 한국의 새로운 남성상으로 등극할까.



 

◆지난해 첫 부각 … 올해 유행어로 = 단어 ‘뇌섹남’은 지난해 5월 한 여성잡지 특집기사를 계기로 확산됐다. ‘주관이 뚜렷해서 할 말은 하는 남자’ ‘책을 많이 읽은 언변의 마술사인 남자’라고 했다.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으론 작가 공지영, 팝아티스트 낸시 랭 등이 꼽혔다.



 그러나 공지영씨는 본지에 “뇌섹남이란 말을 써 본 적 없다”고 했다. 반면 낸시 랭은 본지에 “5, 6년 전쯤 ‘엄친아’가 유행일 때 한 인터뷰에서 이상형을 묻길래 뇌가 섹시하고 인류애가 있는 남자라 한 게 처음”이라 했다. 그는 이 단어를 자주 써 지난해 6·4 지방선거일엔 “낸시가 사랑하는 뇌가 섹시한 여러분들!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 투표해요”란 글을 SNS에 올렸다. 열흘쯤 뒤 통계청이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엔 ‘뇌섹남의 조건’ 그래픽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그래픽 참조>



 하지만 이는 당시엔 대중적인 유행어엔 이르지 못했다. 중앙일보가 다음소프트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트위터에서 ‘뇌섹남’ 언급은 통계청 그래픽이 나온 다음 날인 지난해 6월 17일(925건) 정점을 찍은 이래 급격히 떨어져 그해 말까지 197일 중 160일 동안 언급이 거의 없었다(5건 미만).



 올해엔 달라졌다. 뇌섹남 언급이 151건(1월 22일)을 거쳐 1734건(2월 4일)으로 급증하더니 1만2827건(2월 27일)까지 기록했다. 뇌섹남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 등장한 다음 날이다. 요즘도 9631건(3월 3일) 등 언급량은 꾸준하다.



 뇌섹남과 같이 언급된 단어를 분석했더니 ‘비범하다’(2141건), ‘대세’(166건) 등 언급 횟수 상위 20개 중 14개가 긍정어였다. 부정어는 ‘같잖은’(74건), ‘못생긴’(40건) 등 4개였다.



 ◆뇌섹남 되려 교양 쌓기? =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공교롭게도 인문교양서를 읽는 남성이 많아졌다. 올해 누적 판매량 10만 부가 넘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이 대표적이다. 역사·문화 등을 망라한 ‘지적 대화’에 방점이 찍힌 이 책의 저자 채성호(34)씨는 본지에 “독자 150명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는데 70%가 남성이었다” 고 했다. 권미경 편집자도 “주 독자는 30, 40대 남성”이라며 “지식을 쉽게 말하는 게 중요해진 트렌드와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인터넷 서점 YES24에 의뢰해 1~3월 이 책과 또 다른 인문서 『에디톨로지』 구매자 중 3040 남성 비율을 조사한 결과 『지대넓얕』은 31.3%, 『에디톨로지』는 36.5%를 차지했다. 전체 도서 구매자 중 3040 남성이 21.8%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다양한 지식을 얻는 수단인 팟캐스트 방송도 남성이 더 많이 듣는다. 팟캐스트 포털 ‘팟빵’에 의뢰해 청취자를 분석한 결과 남성이 53.96%(여성 46.04%)였다.



 ◆‘뇌섹녀’는 왜 없을까 = 뇌섹남의 인기엔 늘어난 ‘똑똑한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이 있다. 시인 김갑수씨는 “사람의 매력을 외모로 판단하는 데 반발하는 여성들이 유포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뇌섹녀’란 표현이 없는 데서 보듯, 의미 확장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평론가는 “여자가 예쁘지 않다면 똑똑해도 그를 섹시하다고 하는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뇌섹남의 확산은 남자들만 나오는 TV프로그램이 많아진 것과 무관치 않다”며 “여성들은 여자가 나오면 보지 않는데 남성은 남자가 나와도 본다. 그러니 남자 프로그램이 많다”고 했다.



 퀴즈를 잘 풀거나 학력이 높은 이를 뇌섹남이라고 하는 건 본 의미와 다르단 지적도 있다. 낸시 랭은 “SKY대나 아이비리그를 나온 사람, 똑똑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인성이 좋고 위트·유머까지 있는 사람이 섹시하다”고 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IQ가 높다면 뇌가 좋은 거지 섹시한 건 아니다”고 했다.



 김갑수씨는 “‘뇌섹남은 미디어가 만든 말장난’이란 비난도 많지만 무한경쟁 시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던 외모와 스펙이 아닌, 정신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몸부림 아닐까”라며 “그렇다면 뇌섹남은 긍정적인 남성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요섹남 이건 또 뭐지?



주방의 주체로 번듯하게 한끼 뚝딱

훈남 셰프 덕분에 요리 수강생 급증

"1인 가구가 25% 넘는 현실 반영"




마술사이자 정보기술(IT) 업체 대표인 박병선(29)씨의 취미는 요리다. 라면 하나를 먹을 때도 직접 만든 일본라멘용 소스와 볶은 파를 사용한다. 페이스북에 자신만의 레시피를 올리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지난 6일 올린 ‘허니버터칩’ 레시피에는 “어디로 가면 되나요” “꼭 해보겠음 짱 땡긴다” “너무 귀여워” 등 여자 친구들의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김민우(36)씨는 한 달에 한두 번 해외 출장을 갈 만큼 바쁜 싱글남이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앞치마를 두른다. 그가 만드는 삼겹살 요리는 범상치 않다. 초벌구이 후 식혔다가 다시 구워서 국수에 넣고 면과 함께 즐긴다. “고기가 더 쫀득해지고 국수 식감도 좋아진다”는 설명이다. 종손인 김씨는 전·산적 등 제사 음식도 문제없다.



 남자는 부엌 근처에 얼씬도 말라는 건 옛날 얘기다. 요리하는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오히려 요리하는 남자가 더 섹시하다는 ‘요섹남’의 시대다. 김씨는 “요리를 하는 게 여자 친구와 친밀해지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집에 초대해 요리를 직접 해서 함께 식사를 하면 호감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남자는 사냥을 하고 요리는 여자가 한다는 가부장적인 관념에서 벗어난 게 이런 트렌드의 원인이라는 시각이 있다. 서울대 서이종 (사회학) 교수는 “기존에는 남성이 설거지를 돕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렀다면 이젠 요리를 함으로써 주방의 주체가 되고 있다”며 “이런 인식의 흐름은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면”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요리에 꽂힌 젊은 남성의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서울 하선정 요리학원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남성 수강생이 1.5배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온라인쇼핑몰 AK몰에 따르면 지난 2월 한 달간 주방용품 및 식기 카테고리에서 여성 매출이 전년 대비 36% 증가하는 동안 남성 매출은 130% 급증했다.



 1인 가구의 증가로 남자들이 주방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2000년까지 1인 가구는 전체의 15.5%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25.9%로 늘었다. 네 가구당 한 가구꼴이다. 혼인 건수는 30만5600건으로 2003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형 할인점 식품관에는 1인 가구를 위한 소포장 상품이 크게 늘었다. 홈플러스는 2013년 37종이었던 소포장 상품이 지난해에는 208종으로 6배 이상 늘어났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싱글들이 선택한 ‘고급 놀이’가 요리가 됐다는 분석이다.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의 김용섭 소장은 “일상 속의 작은 행복을 중시하면서 예전에는 평소 구경하기 힘든 귀한 음식을 TV로 지켜보는 게 인기였지만 요즘엔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는 과정까지 즐기게 됐다”고 말했다.



 최현석(43)·샘 킴(38)·레이먼 킴(40)·미카엘(33) 등 젊고 잘생긴 호감형 오너 셰프들의 TV 등장도 ‘요섹남’ 등장에 한몫하고 있다. 요리연구가 박찬일씨는 “고급호텔 주방 옷을 입은 남자가 요리도 잘하면서 말솜씨까지 좋다는 게 시청자들에게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로 여겨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tvN ‘삼시세끼’ 차승원까지 힘을 보탰다. 모델 출신답게 훤칠한 몸매와 얼굴은 물론 화려한 말솜씨에 배려심까지 갖춘 차승원이 고무장갑을 끼고 능숙하게 요리하는 모습에서 여성 시청자들은 웃음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한편으론 ‘요리하는 남자’의 증가 요인을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내집마련·대인관계까지 포기한 ‘오포세대’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움츠러든 삼포세대가 혼자 요리를 하며 만족과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요리에는 치유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구직에 실패해 상담받는 이들에게 직접 요리해 볼 것을 추천한다”며 “레시피대로 따라 해서 비슷한 맛이 났을 때 ‘나도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진우 기자 lee.jinwoo@joongang.co.kr





[S BOX] ‘원조’는 김갑수·진중권 … 뇌섹남은 진보 ?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가수 성시경, 작곡가 유희열, 평론가 허지웅….



요즘 TV에서 뇌섹남으로 거론되는 이들이다. 컴버배치는 드라마에서 셜록 홈즈 역할을 맡은 게, 성시경·유희열은 고학력이, 허지웅은 거침없는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처음 단어가 알려지기 시작했을 땐 다른 이름이 오르내렸다. 시인 김갑수씨, 진중권 동양대 교수,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등이다.



지난해 5월 여성잡지가 ‘원조 뇌섹남’이라 한 김갑수씨는 본지에 “뇌섹남이란 진보 영역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잘생기지 않았지만 매력적이려면 정의감이 있어야 한다”며 “사적인 삶이 중요한 시대에 공동체 문제를 자기 문제처럼 여기고 혁신을 추구한다면 진보”라 했다.



반면 진중권 교수는 “한국 사회가 워낙 비상식적이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별다르게 보이고, 그런 사람이 섹시하다는 거지 ‘뇌섹남은 진보’라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뇌섹남으로 불리는 데 대해 “얼굴이 못생겨서 그런 것 아닌가”라 했다. 김어준 총수는 본지에 “외국에 머무르고 있어 답변이 어렵다”고 했다.



일부 네티즌은 뇌섹남을 “인문학적 지식을 반골스럽게 늘어놓는 이” “김어준을 외모로는 칭찬해줄 수 없자 그 빠들이 만들어낸 말”이라고도 한다. ‘뇌섹남이 누구인가’는 그래서 지극히 주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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