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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에버랜드 튤립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중앙일보 2015.03.21 00:11 종합 17면 지면보기
20일 시작한 ‘에버랜드 튤립축제’를 만든 사람들. 왼쪽부터 최광석 책임, 이소영 선임, 김군소 식물환경연구소장, 손창우 책임. 최 책임은 “삼성에선 메모리 사업을 하는 곳이 두 곳이 있다. 한 곳은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전자, 또 다른 한 곳은 ‘메모리(추억)’ 사업을 하는 에버랜드”라고 말했다. [사진 에버랜드]


“봄이 왔구나.”

튤립 100여 종 120만 송이 1년 농사 … "50일간 영하 5도 고통 줘야 꽃 잘 피어"



 “그럼 엄마, 또 매일 한밤중에 오는 거야?”



 3월로 달력을 넘기며 중얼거린 엄마의 혼잣말에 초등학생 딸이 툴툴거린다.



 이소영(39) 에버랜드 선임 연구원의 이야기다. 따뜻한 봄기운이 밀려오면 바깥 나들이 생각에 들뜨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이씨의 집에선 투덜거림이 잦아진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봄꽃 축제 ‘에버랜드 튤립축제’를 만드는 사람이다.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지난 10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 그를 만났다.



 서울에서 한 시간을 달려 내린 곳은 에버랜드 외곽. 비닐하우스 30여 동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민 알록달록한 튤립 꽃봉오리가 눈에 들어온다. 시네다 블루, 데이드림, 가든파티…. 100여 종의 튤립 60만 송이가 자라고 있었다. 튤립축제에 나갈 꽃들이다.



 이씨가 꽃모종 하나를 내보이며 설명했다. “속이 양파처럼 생겼죠? 이게 튤립 구근이에요. 조그맣게 튀어나온 게 싹이고요.”



 튤립 설명에 빠져 있는 이씨를 김군소(62) 에버랜드 식물환경연구소장이 타박한다. “아이고, 그 귀한 걸 갈라 죽이면 어째.” 그는 에버랜드 ‘튤립팀’ 팀장이다. 이 선임, 축제의 기획과 마케팅 일을 하는 손창우(35) 책임연구원, 조경 디자인을 맡고 있는 최광석(36) 책임연구원까지 4명이 멤버다.



 튤립축제 시즌이 되면 이들은 괴력을 발휘한다. 놀이공원 내에 60만 송이를 옮겨 심어야 한다. 관람객이 모두 빠져나간 밤 10시 이후에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이른바 ‘용인 일대 아줌마 품귀 현상’이다. 용인 지역 아주머니들이 총동원된다. 한 손엔 호미, 다른 한 손엔 튤립을 들고 150~200명의 아줌마 부대와 꼬박 며칠 밤을 일해도 끝나지 않는다. 2주일이면 끝나는 다른 꽃 축제와 달리 에버랜드 튤립축제는 40일 가까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관람객 눈에 시든 꽃이 들지 않도록 매일 꽃을 새로 심는 일까지 챙기고 나면 튤립팀의 봄이 끝난다.



 축제는 봄이지만 튤립을 고르고 키워내는 일은 1년 농사다. 축제가 끝나면 내년 축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먼저 네덜란드에서 100여 품종의 튤립 구근을 공수해 온다. 우리 땅에서 얼마나 잘 자라는지, 꽃은 잘 피는지 미리 ‘테스트’한다. 시험에 합격한 품종만 주문한다. 그게 5월이다. 튤립은 8월에 배를 타고 3개월 뒤 10월에 한국 땅을 밟는다. 소독을 거쳐 60만 송이는 축제가 열릴 곳에 11월께 심고, 나머지 60만 송이는 비닐하우스에 보낸다. 김 소장은 “땅에 심기 전 50일간 영하 5도로 ‘고통’을 줘야 구근이 꽃을 품는다”고 했다. “저온에 노출시키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거나 자라도 비실거리다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첫 튤립축제가 1992년에 시작했으니 그 사이 우여곡절도 많았다. 튤립은 싹이 난 후 10~15도로 온도를 유지해줘야 한다. 튤립을 노지에 심으면 4월 중순께 꽃이 피는데, 3월 말에 시작되는 축제에 맞추려니 고역이었다. 2~3월 꽃샘추위가 몰아치면 밤새 30분, 1시간 간격으로 비닐하우스를 돌았다. 서울보다 온도가 낮고 습한 용인엔 3월에 우박이 쏟아지거나 눈이 내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튤립이 다칠까 봐 새벽에 우산을 씌우기도 한다”는 게 이소영 선임의 설명이다.



 김 소장은 “수입한 튤립으로 축제를 하는 게 안타까워 튤립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며 “에버랜드를 찾은 손님들이 우리 꽃을 보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용인=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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