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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함석헌의 스승 다석 류영모, 그가 맹자를 좋아한 까닭

중앙일보 2015.03.21 00:08 종합 18면 지면보기
1950년대 다석 류영모와 제자가 함께한 모습. 왼쪽부터 방수원·현동완·류영모·김흥호·함석헌. 다석은 YMCA 연경반에서 30년 넘게 강의했다. [사진 교양인]


다석 씨알 강의

류영모 강의, 주규식 기록

박영호 풀이, 교양인

388쪽, 1만8000원




2008년 세계철학자대회에서 그의 제자 함석헌과 더불어 이 땅을 대표하는 종교사상가로 공인된 다석 류영모 선생의 3년(1959~61)간의 강의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당시 선생을 사사했던 주규식이라는 젊은이의 성실하고 집요한 필기 기록에, 그동안 다석을 대중화시킨 박영호의 해설이 더해졌다. 지금껏 다석에 대한 글과 풀이는 많았으나 그 원 자료의 난해함으로 다석을 날 것으로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도 최근에 그의 1956~57년 강의에 바탕한 『다석강의』(2006)와 그의 남겨진 육성을 풀어낸 『다석 마지막 강의』(2010)로 인해 다석 사유의 본뜻이 드러났다(다석은 평생 일기를 쓴 것 외에는 직접 책을 쓰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 새로 출간된 『다석 씨알 강의』에선 다른 글에서 접할 수 없었던 다석 사유의 새로운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지금껏 다석은 제자 함석헌에 견줘 역사보다는 인간 내면을 깊게 성찰한 사상가로 평가되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초월적 관심 탓에 상대적으로 정치적·역사적 현실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두 사상가의 특성은 종종 불교식으로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으로 대별되기도 했다. 인간의 원죄와도 같은 탐진치(貪瞋癡, 불교에서 인간의 욕심·노여움·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의 극복을 위해 다석이 행한 일식(一食), 해혼(解婚) 등이 일상의 보통 사람들에게 감당하기 어렵게 느껴진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석 씨알 강의』를 통해 우리는 그의 초월성이 역사성에 잇대어 있음을 본다. 이 강의록에는 1960년 전후의 시대정황, 이승만 정권에 대한 비판은 물론 4·19 혁명에 대한 역사철학적 견해가 깃들어 있다. 그는 역사 속에서 야기된 혁명의 의미를 자신의 초월철학의 빛에서 풀어낸다. 이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드러나는 함석헌의 역사관과도 결코 다르지 않다. 다석에게 혁명이란 뜻의 발현이자 바탈[본성(本性)]의 힘, 곧 생명의 드러남인 까닭이다.



 다석에게 4·19는 빼앗긴 자유의 회복을 위해 ‘미워할 것을 바로 미워한 것’(60년 7월 8일 강의)으로서 하느님의 일이었다. 우리 민족을 ‘위’로, ‘하나’로 이끌고자 했던 거룩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이는 ‘피’ 팔고 ‘품’ 팔아 사는 세상이 아니라 오로지 하늘과 하나되는 세상을 위해서, 세상 법을 넘어 모두에게 일용할 양식이 공급되는 빈탕[아무런 경계가 없는 ‘무(無)’와 같은 경지]의 실현을 위해서였다. 다석은 하늘이 준 바탈이 거짓에 대들고 맞서는 ‘힘’이자 ‘짓’을 통해 몸이 죽고 정신이 사는 견성(見性)의 현실을 이 땅 위에 역사화한 사건으로 4·19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다석은 4·19 때 희생된 젊은이들을 얼나[탐욕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가리키는 ‘제나’와 대립되는 말로, 하늘이 준 본래의 자아]의 존재, 민족을 위해 제 뜻을 접은 대속적 존재, 순국으로서 인(仁)을 이룬 존재로 보았다. 따라서 4·19를 민족을 하늘로 이끌려 했던 젊은이들의 희생 제사로 여겼다. 예수의 죽음이 그렇듯 말이다. 무릇 정치가 백성을 옳게 섬기지 못할 때 인간 바탈에 근거한 혁명을 다석은 당연시했다. 그가 유교 경전 중 특히 『맹자』를 좋아했던 것도 이런 이유라 할 것이다.



 『다석 씨알 강의』에서 새롭게 얻을 수 있는 지혜와 정보는 이뿐이 아니다. 이 책에는 다석의 독창적 한글 이해가 다른 어느 책에서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한글을 ‘하늘주신 글’[천문(天文)]로 인지한 다석의 한글 활용법은 난해하나 참으로 독보적이다. 그는 한자어가 아니라 우리 한글 속에서 유불선과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다 풀어냈다. 나는 『다석 씨알 강의』에서 다석의 한글 풀이가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신과 맞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한글 창제 원리는 다석 사유의 토대인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상과 밀접하다. 앞으로 다석과 같은 방식으로 한글을 이해하는 흐름을 찾아내는 것도 필요한 연구과제가 될 것 같다.



 그간 다석의 직계 제자들 간의 학문적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단초 역시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다석의 기독교성을 중심으로 제자들 간의 이견이 표출되곤 했다. 이 책은 그가 기독교마저 넘는 귀일(歸一)사상에 터해 여러 종교와 관계했음을 분명히 한다. 『맹자』도 바이블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책에는 종종 풍문으로 들었던, 제자 함석헌에 대한 다석의 평가도 수 차례 언급되어 있다. 이를 여기 옮기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아무쪼록 그 사제 간의 걱정과 염려의 본뜻이 옳게 파악되어, 다석 학파가 편가름이나 다툼없이 사상적으로 계승될 수 있기를 후학의 한 사람으로서 바랄 뿐이다. 이 같은 몇몇 과제가 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석 씨알 강의』는 그간의 소승적 사상가라는 평가 대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염려하는 대승적 초월의 사상가로서 다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는 반 세기 전 그 옛날, 선생의 강의를 찾아 먼 길을 오가며 남다른 각오로 이를 받아 적은 한 젊은이의 필사본과 이를 읽고 풀어 책으로 펴낸 이의 덕분이다.





[S BOX] 꽃을 볼 때 허공도 보라



다석 류영모(1890~1981)는 한국이 낳은 독창적인 종교 사상가이다. 그의 호 다석(多夕)은 저녁 석(夕)자가 세 개 겹친 것으로 빛보다는 어둠, 있음보다는 없음의 세계를 강조하는 그의 사상적 측면을 반영한다. 진짜 없어야 모든 것을 품는다고 믿은 것이다. 그는 꽃을 볼 때 그것을 있게 하는 허공도 같이 볼 것을 요구했다. 그래야 견물생심(見物生心)에서 벗어나 물건을 보고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견물불가생(見物不可生)]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하느님 역시 ‘없이 계신 분’이다. 그로부터 바탈, 즉 본성(本性)을 받은 인간 역시 ‘없이 있는’ 존재여야 마땅하다. 하지만 인간은 탐진치·견물생심으로 인해 언제든 ‘덜’없는 존재로 살고 있다. ‘덜’ 없어 ‘더러운’ 존재가 인간의 죄된 상태라 할 것이다. 이로부터 다석은 인간이 자신의 바탈에 따라 살아서 ‘없이 있는’ 하느님처럼 될 것을 주장했다. 그가 일식(一食)과 해혼(解婚)을 강조한 것은 몸을 줄여 마음 늘리는 삶을 일상에서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다석은 51세부터 하루 한 끼만 먹고, 부인과는 오누이처럼 살았다). 이것이 그에게 십자가이자 해탈이며 구원이었다. 몸이 성해야 마음 놓이고 마음 놓여야 바탈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다석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준 이로 신채호·톨스토이·간디·우찌무라 간조 등이 있고, 다석의 영향을 받아 제자의 길을 걸은 이가 함석헌을 비롯해 김흥호·류승국·안병무·박영호 등이다. 무교회주의를 펼친 김교신은 다석과 생각이 많이 달랐으나 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이로 알려져 있다.



이정배 감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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