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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런을 벗고, 최현석의 사생활

온라인 중앙일보 2015.03.21 00:05
[여성중앙] 에이프런을 벗고 최현석의 사생활



요즘 여성들에게 ‘키 크고 몸 좋고 말 잘하는 허세 셰프’로 통하는 남자.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이후 대세가 된 그를 만났다. 대세 셰프 최현석과 나눈 사적인 이야기들.







최현석을 아는 사람은 두 분류로 나뉜다. 바&다이닝 ‘엘본 더 테이블’로 알게 된 사람과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로 알게 된 사람. 그동안 어깨에 힘주며 권위 있는 모습을 보여왔던 그는 요즘 ‘귀여운 허세남’으로 불리며 대세로 떠올랐다.



수백 가지가 넘는 창의적인 레시피로 정평이 난 20년 경력 셰프, 그럼에도 냉동 만두와 배달 음식을 최고로 아는 초딩 입맛의 보통 남자, 지금도 피겨 로봇을 수집하는 철부지, 그림과 노래를 사랑하는 자유인, 알고 보면 속 깊고 여린 막내아들. 까면 깔수록 나오는 마성의 매력남, 최현석 셰프의 인생 비하인드.



Q : 요즘 가장 바쁘고 잘나가는 셰프 중 한 명이에요. 인기를 실감하나요

가끔 저 보면 ‘꺅’ 하고 돌고래 비명 질러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때 좀 실감해요. 그리고 레스토랑 매출이 오른 것 보고 가장 크게 실감하죠. 요즘 매일 만석이거든요. 많은 분이 최현석보다 최현석이 하는 요리를 궁금해해줘서 정말 감사해요. 셰프로서의 자신감과 자부심은 이럴 때 생기는 거거든요. 얼마 전에는 캐나다와 호주에서도 방송 보고 저희 레스토랑을 찾아오셨더라고요. 제가 본업에 더 충실해야 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Q : 사람들이 최현석을 좋아해주는 것보다 최현석이 하는 요리를 좋아해주는 게 더 좋은가 봐요

셰프니까요. 방송을 통해 제가 어떤 사람인지 비춰지는 것보다 셰프로서 무엇인가를 이뤄야 한다는 목표 의식이 강한 편이에요. 그래서 방송과 레스토랑 스케줄이 겹치면 당연히 후자를 택하죠. 방송에서 욕먹는 건 참아도 제가 한 요리 맛없다고 하는 건 못 참아요.



Q : 방송 출연 이후 셰프로서의 권위에 ‘이상’은 없나요 없어요.

주방 안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이 전혀 다르거든요. 주방 안에서는 무섭지만, 주방에서 나오면 개그 욕심 있는 허당 캐릭터가 돼요. 아내랑 딸들은 좀 싫어해요. 아내와 딸은 그동안 제가 요리하는 학생들한테나 업계에서나 대우받는 모습만 봐서 더 그렇게 느낄 거예요. 근데 달리 생각해보면 경직돼 있는 셰프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장점도 있더라고요. 실제로 털털하고 재미있는 셰프가 꽤 많거든요.



Q : 셰프의 예능 출연을 가볍게 보는 시선도 있겠죠

가끔 방송에 나가는 걸 조소 섞인 시선으로 보는 셰프들도 있는데, 이건 내 취미일 뿐 꿈은 따로 있어요. 많은 사람이 모이는 뉴욕에 내 레스토랑을 내는 것. 그 꿈을 향해 나아가려면 살면서 재미있어 보이는 다른 분야에도 도전해야 하지 않겠어요? 한 번뿐인 인생, 재미있게 살아야죠.



Q :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늘 힘들고 박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셰프의 본분을 잊지 않으려고 스스로에게 세뇌시키는 거죠. 솔직히 지금 제가 ‘대세’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과분한 칭찬을 받고 있지만, 그 이미지는 분명 소비되고 그다음 주자의 셰프가 다시 대세가 될 거잖아요. 슬프지만 이게 자연의 이치죠. 그래서 제가 어디서 뭘 하든 본분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새삼 느낀 게 있는데, 제가 노래를 잘하고 키 190cm에 운동 좀 한다고 해도 가수 옆에 있으니 ‘음성 오징어’가 되고, 모델 옆에 있으니 ‘비율 오징어’가 되더라고요. 요리가 전제된 상태여야 지금의 최현석이 멋있어 보인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해요.



Q : 요리하면서 앞치마를 털거나 소금 뿌리는 허세 동작들은 따로 연습하는 건가요

몸에 밴 거죠(웃음). 제가 무술을 굉장히 좋아하고 어렸을 때 우슈를 좀 배웠어요. 단증을 따려면 12개월이 코스인데 저는 6개월 만에 땄죠. 무술의 천재구나 싶었는데, 먹고사는 데 도움이 안 돼서 그만뒀어요(웃음). 암튼 그래서 후추를 영화 ‘동방불패’의 흡성대법처럼 뿌려가면서 요리했어요. 행주를 탁 들었다 놓고서 슉 던졌다가 잡으면서 ‘행.주.난.립’ 하고, 오이에 소금을 한 손으로 뿌리며 ‘백.룡.승.천’ 외치고. 옆에서 지켜보는 실습생들에게 손뼉 치게 하고. 이런 식으로 혼자 쇼하고 노는 걸 좋아해서 따로 동작을 연습하거나 준비하지 않아도 됐어요. 원래 있던 개그 욕심을 발동하면 되니까.







Q : 매일 남의 냉장고만 뒤지는데, 본인의 냉장고에는 뭐가 들어 있나요

셰프의 냉장고답지 않은 냉장고일 거예요.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아내가 밖에서만 요리하고 집에서는 안 한다고 해서 냉장고 구석구석을 뒤졌어요. 그런데 이건 뭐, 먹다가 남은 케이크 조각, 굳은 반찬 그리고 냉동식품만 가득하더라고요. 결국 아무것도 만들지 못했어요.



Q : 냉장고에 없어선 안 되는 거 세 가지!

우유, 냉동 만두, 남겨둔 배달 음식. 우유는 운동할 때 먹고, ‘비비고 왕교자’는 맛있어서 자주 사 먹어요. 만두피의 질감이 환상인 ‘백설 군만두’와 함께(웃음). 게다가 배달 음식도 좋아해서 냉장고에 ‘교촌치킨’과 ‘도미노 피자’도 보관 중이에요. 얘들은 차가워도 맛있어요.



Q : 집에서는 왜 요리를 안 하나요

제가 덜 가정적이라서 그럴지도 모르는데, 늦은 시간까지 근무를 하니까 솔직히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 편이에요. 퇴근 시간이 보통 새벽 1~2시이고, 그날 오전 9시에 다시 출근하니까요. 게다가 쉬는 날도 거의 없는 편이라 집에서까지 요리를 하는 건 즐겁지 않아요. 한마디로 주말에 가족들과 보내는 건 좋지만 주말에도 요리하는 건 싫은 거죠.



Q : 기회가 될 때 가족에게 꼭 만들어주고 싶은 요리가 있다면요

아내와 딸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에 케이크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가족 여행 갔을 때 파스타나 스테이크는 종종 만들어주는데, 빵이나 케이크는 만들어준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Q : 요리사 집안인데, 누구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나요

아버지가 그랜드하얏트호텔 양식당에서 일하셨고, 어머니는 한식당 출신 요리사이고, 형은 코리아나호텔 양식당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은 창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중 어머니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았어요. 어머니가 평범한 식재료를 이용한 응용 요리에 능하셨거든요. 제 입에 가장 맛있기도 하고요. 집안 식구 아무도 못 따라가요.



Q : 가족들이 모이면 부인이 부담스러워하겠어요

시댁에서 10년 같이 살았으니 당연히 그랬겠죠. 모두 요리사이다 보니 아내가 마음먹고 요리해도 성에 찰 턱이 있겠어요. 그래도 먹을 만하면 조용히 먹으면 되는데, 형이 약간 까칠한 편이다 보니 입에 안 맞으면 바로 숟가락 내려놓았어요. 그때 아내가 상처받고 다신 요리를 안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댁에서 시어머니가 해 주는 밥 먹으면서 10년을 지냈어요.



Q : 아내의 요리 중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만한 게 있다면요

라면을 끓여서 달걀과 간장 밥을 곁들인 거요. 유일하게 간이 살아 있는 요리이기도 해요. 아내가 소금혐오주의자거든요(웃음).



Q : 직접 장을 보러 다니기도 하나요

가족 모두 마트 가는 걸 좋아해요. 딸들도 같이 마트에 따라가면 자기 좋아하는 것을 카트에 실을 수 있잖아요. 시식 코너 순례도 좋아하고. 저는 요즘 얼굴이 알려져서 멀찌감치 한 2m 정도 떨어져 있고, 딸들이 제 시식 거리까지 챙겨서 가져오면 그때 먹어요(웃음). 그런 재미가 있어서 같이 몰려서 장 보러 가죠.



Q : 마트 가면 절대 빼놓지 않는 구매 품목이 있다면요

라면이에요. 마트에만 가면 라면 코너에서 충동구매를 해요. 진라면, 설렁탕면 등등 박스째로 사는데, 그중 진라면 순한맛이 최고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라면의 기본 맛이랄까. 라면에 다른 재료 넣어서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달걀은 예외예요. 그 정도 사치는 부려도 돼요.



Q : 결혼을 참 일찍 했는데요

‘교회 오빠’였는데, 제가 기타 치고 노래하면 여자애들이 난리 났었어요. 마음 안 받아줘서 여럿 울리기도 했죠(웃음). 아내도 교회에서 음악으로 꾀었어요. 그때 제가 26세, 아내는 23세였는데 양가 만난 자리에서 바로 날짜 잡고 결혼식 올렸어요.



Q : 큰딸이 벌써 고등학생이라니, 혹시 속도위반 아닌가요

딱 허니문 베이비예요(웃음).



Q : 셰프님이 워낙 워커홀릭이라 아내가 꽤나 외로웠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죠. 함께 시간을 못 보내는 경우가 많으니까. 제가 워낙 빈틈이 많아서 아내가 이것저것 다 챙겨주는 편이에요. 아내가 워낙 그릇이 커서 그런지, 전 아내 앞에만 가면 애처럼 구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우리 집은 덩치 제일 큰 애가 손이 제일 많이 간다”면서 투덜대요. 결국엔 다 해주면서요(웃음).



Q : 그럴 때 ‘결혼 참 잘했다’ 싶을 것 같아요

그렇죠. 무엇보다 아내는 참 겸손해요. 집에서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데, 밖에서는 절대 저의 체면 구기지 않고 항상 뒤에서 받쳐주거든요. 남자 어깨에 힘을 실어줄 줄 아는 여자예요. 제가 출근할 때마다 마치 아이 학교 보내듯 배웅해주는데 그때도 따뜻한 에너지를 얻어요.



Q : 남자로서 어떤 스타일인가요? 상남자? 로맨티스트?

로맨티스트는 아닌데, 아내가 머리 감고 나왔을 땐 제가 말려줘요. 아내가 그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저희 부부가 결혼 17년 차인데, 결혼 10년 정도 지나고부터는 좀 무뎌지긴 하더라고요. 한번은 아내 생일을 잊어버렸다가 살기(?)를 느낀 적도 있어요. 아내가 음력 생일을 쇠고, 주민등록 생일, 진짜 양력 생일이 다 다르다 보니 제가 자주 헷갈리거든요. 그때 이후로는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요.







Q : 두 딸을 보며 ‘내 자식이다’ 싶을 때는요

둘째 딸이 ‘공포의’ 중학교 2학년인데, 절 닮아서 컨트롤이 안 돼요. 첫째는 엄마를 닮아서 배려심 많고 차분한 편인데, 둘째는 속을 알 수 없죠. 미술 시간에 그림 그리라고 하면 남들은 30분에 하는 걸 2분 만에 끝내고 놀아요. 도화지 가득 새까맣게 칠해놓고 다 했대요.



Q : 아빠로서의 권위는 어떤가요

저는 친구 같은 아빠예요. 요즘 애들이 쓰는 말 배워서 그걸로 소통하죠. 딸들이 그런 대화를 재미있어 하거든요. 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진 못하지만, 각자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도록 받쳐주며 프리 스타일로 키워요. 학원 가기 싫다고 하면 안 보내고요. 아이들이 시험 문제 한두 개 틀렸다고 우는 게 제일 이해 안 가요. 차라리 그런 것 아예 신경 끄고 뛰어놀게 하고 싶어요.



Q : 스스로 좀 놀아봤기에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리는데요(웃음)

맞아요(웃음). 제가 초등학생 때 꿈은 ‘태권브이’ 조종사, 중학생 때는 ‘로보캅’이었어요. 그러다 무술가, 가스펠 싱어를 꿈꾸다 요리사로 넘어왔죠. 하지만 예전 꿈을 못 버려 로봇 수집을 지금도 하고 있어요. 인터넷으로 일본 경매에 참여해 진귀한 로봇을 사기도 하는데, 아내가 별로 안 좋아하니까 로봇 구입한 택배는 회사로 배달시켜요. 그다음 집에 가지고 갈 때는 조금 늦게 들어가요. 아내가 마중 안 나올 시간에 맞춰서. 집에 들어가자마자 현관 쪽에 놔두고 빨리 안방으로. 그리고 아내가 잠잘 때를 기다렸다가 잠든 것 확인하면 그때 로봇 상자 끌고 내 방으로(웃음).



Q : 각방을 쓰나요

각방을 쓰는 건 아니고 제 방이 따로 있어요. 기타 치고 로봇 갖고 노는 방.



Q : 애니메이션 좋아하고 로봇 모으고…. ‘오타구’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한데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제 블로그를 보고 요리사인 줄 몰랐어요. 로봇을 엄청 좋아하는 ‘오타구’ 블로그인 줄 알았대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로봇 수집만큼 제 인생을 재미있게 만들어준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아내는 로봇 수집을 두고 ‘장난감질’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가족 모두에게 아빠의 수집품으로 존중받고 있어요. 막 꺼내서 놀고 그러진 않지만 로봇을 보고 있으면 흡족해요. 초등학생 때 로봇에 얽힌 추억을 생각하면서요.



Q : 보통 나이 들면 노는 취향도 변하는데, 셰프님은 한결같네요

하나에 꽂히면 계속 그 일에 미쳐 지내는 스타일이거든요.



Q : 셰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요

제가 잡기에 좀 능한 편이라 뭐든 몸 움직이는 걸 했을 거예요. 어렸을 때 우슈를 좀 배워서 아이들도 가르치곤 했어요. 취미로 야구도 12년 정도 해오다가 어깨 연골이 없어져서 팔이 안 돌아가는 바람에 그만뒀고요. 최근엔 스파링과 킥복싱을 해요. 팔 때문에 쉬어야 한다고 하는데, 몸을 안 움직이면 제가 못 견뎌서요.



Q : 요리 잘하고 몸 좋고 유머 감각까지 다 갖춘 듯한데, 안 알려진 나의 반전 코드가 있다면요

엄청나게 빈틈이 많다는 거예요. 어려서부터 덜떨어졌다는 소릴 많이 들었거든요. 건망증도 심하고. 예전에는 레스토랑 영업 끝나고 보면 앞치마를 두 개나 두르고 있은 적도 많아요(웃음).



Q : 유학파 출신이 많은 셰프 세계에서 고졸 신화의 성공적인 존재를 증명한 케이스인데,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고졸 신화’라는 말 자체가 의미 없는 것 같아요. 어차피 요리사는 손끝으로 결과를 내는 사람이니까 가방끈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죠. 무엇보다 그냥 여기까지 열심히 달려온 것뿐이라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주방장이 되고 나서 요리공부가 부족해서 힘든 적은 있었지만, 솔직히 지식의 부족은 노력으로 그때그때 채워나가도 충분했거든요. 지식보다 중요한 게 인간관계인 것 같아요. 이건 셰프 세계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라 만고의 진리죠.



Q : 이제껏 버틸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뭘까요

제 요리를 이해해주고 관심 가져준 고객이죠. 새로운 요리에 계속 도전하게끔 승부욕을 불지펴준 것도 제 음식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고요. 앞으로도 그 힘으로 버틸 거고, 오래 버티고 싶어요.



Q : 크리에이터가 살아남는 시대에서 자신만의 경쟁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나다운 것. 다른 사람과 다른 무언가의 요리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정서적인 위안을 주는 취미 생활을 통해 감성적인 코드를 많이 키워왔다고 자부해요. 그래서 요리할 때도 차별화된 레시피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딴짓을 좀 해보려고 해요. 결국 그게 저한테 플러스가 될 테니까요.



Q : 삶의 철학은요

저는 어려서부터 장난치는 걸 좋아하는 개구쟁이였어요. 그런데 제 철학은 ‘장난치지 말자’예요. 요리 철학은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자, 인생철학은 사람 갖고 장난치지 말자.



Q : 요리, 노래, 운동, 작곡, 기타 등 못하는 게 없는데, 그럼에도 인생에서 더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요리사로서의 인생을 계속 더 해가고 싶어요. 지금까지 20년 해왔듯이, 앞으로의 20년도 즐기면서 재밌게 하고 싶어요. 다행히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 보여서 계속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지금처럼 불같은 열정으로 살 겁니다.



최현석은… 요리사로는 드물게 수많은 팬을 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스타 셰프’다. 1995년 한남동 이탤리언 레스토랑 ‘라쿠치나’에서 요리를 시작해 12년간 내공을 쌓았다. 2007년 서울 청담동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900여 가지의 창작 요리를 선보이며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후 2011년 푸드TV ‘셰프 최현석의 크레이지 타임’ 시즌1, 2와 ‘올리브쇼 2014’ ‘한식대첩2’ 심사위원을 거쳐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허세 셰프로 인기를 얻었다. 현재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과 이태원에 있는 레스토랑 ‘엘본 더 테이블’의 총괄 셰프를 맡고 있다.



글=정은혜 여성중앙 기자

사진=김지원(10visual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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