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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베의 미 의회 합동연설, 전화위복 계기 돼야

중앙일보 2015.03.21 00:04 종합 26면 지면보기
다음달 말 미국을 방문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열쇠를 쥔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연설 기회를 주는 쪽으로 방침을 굳히고 곧 초청장을 발송할 계획이라고 한다. 상·하원 합동연설은 미 의회가 외국 지도자에게 제공하는 최고 예우다. 한국 대통령과 달리 일 총리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특전을 누리지 못했다.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 지도자라는 주홍글씨 때문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역대 일본 총리 중 누구보다 과거사에 대해 퇴행적 인식을 가진 아베 총리가 금기(禁忌)를 깨는 첫 번째 인사가 된다는 사실이 우리로선 당혹스럽다. 2006년 상·하원 합동연설을 추진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에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이유로 제동을 걸었던 미 의회가 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지도 의아하다. 종전 70주년을 맞아 미 의회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종지부를 찍고 일본을 명실상부한 최고 우방으로 대우하겠다는 선언적 의미가 아닌가 짐작해볼 뿐이다. 미 의회가 자체 판단에 따라 고유 권한을 행사하는데 굳이 시비 걸 일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연설의 내용이다. 그 안에 뭘 담느냐에 따라 아베의 미 의회 합동연설의 의미는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달라질 수 있다. 기존의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계승하면서 일본군 위안부를 포함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솔한 반성과 사죄를 담는다면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얼어붙은 한·일 관계가 풀리면서 한·미·일 3각 협력이 정상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에 대해 알맹이 없는 연설이 되고 만다면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베이너 의장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전범국 일본에 면죄부만 준 꼴이 되고 말았다는 비난이 미 의회에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아베의 미 의회 합동연설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 의회의 노력에 달려 있다. 아베 정부와의 긴밀한 조율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가 담길 수 있도록 베이너 의장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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