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속으로] '한국의 마타하리'인가, 시대의 희생자인가

중앙일보 2015.03.21 00:02 종합 20면 지면보기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정병준 지음, 돌베개

484쪽, 2만원




파란만장한 삶이다. 일제강점 직전인 1903년 하와이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3·1운동 직후엔 상하이로 향한다. 곧이어 일본 유학에서 만난 남편과 짧은 결혼생활을 했다. 일각에선 상하이 시절의 교류를 단서로 그가 ‘박헌영의 애인’이라 주장했다.



  정작 그 자신은 이 삶을 규정할 이렇다 할 말을 한 적도, 할 기회도 없다. 해방 직후 미군정은 그를 ‘공산주의자’라며 추방했고, 체코를 거쳐 어렵사리 찾아간 북한에선 한국전쟁 직후 박헌영 숙청의 와중에 그를 ‘미국의 간첩’이라며 처형했다. 그래서 ‘한국판 마타하리’라고 알려지기도 한 이가 현앨리스라는 여성이다.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과연 그 삶의 실체가 무엇인지, 온갖 정보를 그러모아 추적했다.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현순 목사를 비롯한 가족들의 기록, 시기별 국내외 언론보도, 미국·체코 문서 등을 파헤쳤다. 벌어지는 빈 틈을 무리하게 메우는 대신, 확인한 사실 중심으로 전개한 서술 방식 덕에 행간에 긴장감이 넘친다. 미스터리 역사 퍼즐을 푸는 듯하다.



 그렇게 드러나는 현앨리스의 삶은 누군가의 애인·아내·딸·어머니로 정의되지 않는다. 박헌영과도 연인이 아니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북한 권부가 박헌영과 미국의 연결고리로 현앨리스를 그렇게 묘사했다는 해석이다. 암울하고 격정적인 시대를 살아간 강한 의지가 도드라질 뿐이다.



 그 의지의 바탕으로 저자는 3·1 운동을 주목한다. 현앨리스는 10대 시절 그 뜨거운 열기를 직·간접 체험하고 흡수했다. 거기서 출발한 이상과 열정은 비극으로 끝났다. 그만이 아니었다. 책 말미에 소개된 여러 재미한인의 수난사는 그 시대의 비극이 한반도란 지형을 훌쩍 넘어선 것임을 보여준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