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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 탈 쓴 말들의 층간소음

중앙일보 2015.03.21 00:02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탈을 쓴 말(masked words)처럼 해로운 짐승이자 교활한 외교관, 치명적인 독살자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 말들은 사람의 생각을 제멋대로 관리하는 부정한 집사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욕구와 본능이 뭐든 그것을 탈 쓴 말들에게 맡겨 버립니다. 그 말들은 결국 그 사람에 대해 무한한 권력을 갖게 됩니다.”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 존 러스킨이 대중강연집 『참깨와 백합(Sesame and Lilies)』에서 한 말이다. 부러 ‘위대한’이란 표현을 썼지만 괜한 수식어가 아니다. 21세기 한국에서도 폐부를 찌르는 그의 혜안이 빛을 발한다.



 워낙 명문장가인지라 지나친 의역을 삼가다 보니 그의 말이 다소 어려워졌음을 이해하시라. 여기서 ‘탈을 쓴 말’이란 “누구나 사용하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일컫는다. 그렇게 해서 풀면 사람들은 스스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말을 생각 없이 사용하다가 끝내 자기 말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얘기가 된다.



 며칠 전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현장에서도 탈 쓴 말이 등장했다. ‘경제위기’가 그것이다. 경제위기를 입에 달고 살고 늘 듣는 소리가 경제위기였는데, 알고 보니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말이었던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청와대에 초대받은 야당 대표가 “우리 경제는 총체적 위기”라고 말했는데, 함께 협력해 위기를 극복하자고 부른 청와대가 “위기는 개뿔”이라고 단번에 퇴박을 놓는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겠나. 한 번이면 욱했다 쳐도 이틀 연속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장문의 보도자료를 내서 “근거 없는 위기론”을 운운할 수 있겠나 말이다. 지금까지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여당 대표까지 나서서 “골든타임을 놓치면 큰일난다”며 기업들을 쪼고 한국은행을 압박하고 국민을 겁줬던 게 모두 탈 쓴 말들이었다는 거다. 대통령이 여당 대표에게 설명하려 했다는 ‘제2의 중동 붐’이라는 “하늘의 메시지” 역시 그런 말처럼 들리는 게 다른 이유가 아니다.



 야당 대표가 다음날 경남도지사 앞에서 쏟아낸 말에도 탈이 씌었다. 이번엔 ‘의무급식’이라 표현한 ‘무상급식’이었다. 여태껏 숱한 논쟁이 있었음에도 그의 무상급식은 외국어처럼 들렸다. 사실이 아니라는 걸 모를 리 없는데 “무상급식은 의무교육에 따라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애들 밥은 먹이면서 정치를 하라”는 달뜬 소리만 하다 보니 “대안을 갖고 오라”는 무례한 면박을 받고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거기에 “무상교복” 얘기까지 얹는 걸 보면 탈도 두꺼운 탈이었다.



 소통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다. 자기도 이해 못하는 말로 어찌 반대편을 설득하고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겠나. 자신은 벽에 대고 얘기하는 것처럼 답답하다지만 상대 역시 벽 긁는 소리가 듣기 좋을 리 없다. 그래도 둘은 싸우기라도 하지, 국민들은 벽창호들의 층간 소음에도 하릴없이 분만 삭이고 있다.



 이해도 못하는 말에 휘둘리니 벽창호가 더욱 고집불통이 된다. 러스킨은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위해 투쟁하고 그것을 위해 살며 때론 그것을 위해 죽기까지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야 되겠나. 자기가 모르는 것 때문에 죽는 건 자기가 죽을 때를 모르는 것이다. 러스킨은 말한다. “언제 죽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이해하면 되고 그럴 수 없으면 탈을 깨버리면 된다.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면 내 오류도, 상대의 일리(一理)도 보이기 마련이다. 오류는 버리고 일리는 취하면 그만이다. 말은 강해지고 상대와도 가까워진다.



 탈을 깨려면 탈끼리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얼굴을 자주 맞대야 한다. 웃고 나와서 딴소리 하든, 벌건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나오든 자꾸 만나면 탈은 깨지고 진면목이 드러난다. 진면목끼리 맞대면 소음이 나지 않는다. 국민들은 편한 잠을 잘 수 있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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