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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오디션 프로 관람기

중앙일보 2015.03.21 00:02 종합 27면 지면보기
양성희
논설위원
YG·JYP 등 대형 연예기획사 대표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K팝스타’란 오디션 프로가 있다. 타 오디션에 비해 출연자들의 나이가 어리다. 대부분 10대다. 어린 나이에도 어찌나 노래를 잘하는지 기성 가수들은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특정 출연자에게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우호적인 심사평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숨은 재능을 알아보고 발탁한다는 프로의 콘셉트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요즘 여기서 인기 있는 출연자들의 동영상은 100만~300 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삽시간에 이뤄지는 수퍼스타, 유명인의 탄생이다. 본선 진출 멤버를 추리는 과정에서만도 무수한 스타들이 탄생한다. 물론 얼마큼 그 관심이 지속될지는 모른다. 쉽게 화제가 된 만큼 쉽게 잊히는 게 보통이다. 어린 출연자들이라 주변의 큰 관심이 위기가 되기도 한다. 극찬을 받은 후 부담감으로 부진하고, 탈락위기에 처했다가 기사회생하는 등 드라마틱한 요소가 도리어 흥미를 더한다.



 오디션 프로는 지금 전 지구적으로 가장 흔하고, 가장 강력한 TV포맷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점수화되며, 무한경쟁구도를 담아낸다. 모든 것은 자기 하기에 달렸고, 아무도 너를 책임져주지 않으니 끊임없는 노력으로 상대를 이겨서 너를 증명하라, 이것이 성장이라고 말하는 ‘자기계발 서사’를 전파한다. 똑같은 스타 발굴 프로지만 예전의 대학가요제가 출연자 중 잘하는 사람을 뽑았던 것과 달리 매회 탈락자들을 떨어뜨려 간다. 얼핏 승자를 뽑는 것 같지만, 사실 매회 뽑는 것은 탈락자다. 최종회를 제외하고는 매회 엔딩을 탈락자들이 장식한다. “여기까지 온 것만도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무대를 떠난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쿨’한 퇴장이지만, 사실은 이 승자독식 경쟁 시스템에 탈락자도 유감없이 동의한다는 메시지가 녹아 있다.



 이번 ‘K팝스타’에서 눈여겨봤던 한 여고생 참가자가 있다. 목감기로 실력 발휘를 못했고, 탈락했다. 탈락 후 방송 인터뷰에서 “자기 관리나 컨디션 조절을 못한 것도 제 탓이다. 제 잘못”이라고 했다. 심사위원들이 늘상 강조한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담은 어른스러운 모범답안이지만, 아직 어린 16세 소녀가 내뱉은 자책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차라리 저럴 땐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어느덧 10대 출연자들의 금과옥조가 된 ‘실패는 모두 실패자 탓’이라는 오디션 프로의 가르침이 옳기만 한 건지 모르겠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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