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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옛 글씨체로 본 한국인 품성 … 천진난만·자유분방 그 자체

중앙일보 2015.03.21 00:01 종합 19면 지면보기
어린아이 한국인

구본진 지음, 김영사

436쪽, 1만8000원




‘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가 책의 부제다. 2009년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필적을 비교 분석한 책 『필적은 말한다』를 펴냈던 저자가 이번엔 비석과 목간·방패·사리함 등 유물에 남아있는 글씨체에서 우리 민족성의 본질을 찾아내는 작업을 했다. 결론은 책 제목대로 ‘어린아이 한국인’이다. 우리 민족은 자유분방하고 활력이 넘치면서 장난기가 가득한 ‘어린아이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인의 발목에는 격식과 체면과 겉치레라는 쇠사슬이 잘가당거리지만 이는 오랜 중국화의 역사적 산물일 뿐, 원래 한민족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네오테닉(neotenic, 유아기의 특징이 성년까지 남아있는 현상을 말함)한 민족이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신라 고분 금관총에서 출토된 ‘이사지왕 고리자루 큰칼’ 명문(銘文)의 자유롭고 천진한 글씨체, ‘광개토대왕비’의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고 단순한 글씨체 등이 그 근거다. 인쇄체에서도 정형화·획일화된 필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통일신라시대 목판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글자는 마치 손으로 쓴 것처럼 제각각 그 형태가 다르다.



 우리 민족의 이런 ‘어린아이스러움’은 고려시대 이후 중국의 영향으로 경직된다. 글씨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현상이다. 고려 초기 유행했던 구양순체는 엄격하게 정형화돼 있다. 한 순간의 정신적 이완도 허용하지 않는 글씨다. 주자학이 통치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조선에서도 규칙을 철저하게 지킨 단정한 글씨체가 시대를 풍미했다. 19세기 이후 중국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부드럽고 자유로운 한민족 고유의 품성과 글씨체가 다시 살아난다.



 글씨체에서 출발해 민족의 정체성까지 파고든 저자의 열정이 대단하다. 강력범죄 전문 검사 출신인 저자는 ‘수사하듯’ 파헤쳤다고 털어놨다. 향후 연구 과제도 던졌다. 중국 만리장성 외곽에서 발견된 ‘홍산문화’가 우리 민족과 관련된 문화일지 모른다는 주장인데, 그 근거 역시 글씨체다. 황하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 홍산문화 유물에 남아있는 글씨체가 고대 한민족의 글씨체와 유사하다니, 세계 역사를 바꿔놓을 단서를 잡은 듯하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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