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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봄비

중앙일보 2015.03.19 00:05 종합 28면 지면보기
봄비
- 김소월(1902~34)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소월의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공주 김가 장손이었다. 문중의 기대를 받았지만 거기에 부응하지 못했다. 높은 구름 찌르는 나무의 푸릇한 가지같이 이상이 높았으나 벽은 더 높았다. 벽에 부딪쳐 날갯죽지가 꺾이고 피 흘렸다. 일제강점기 고향 정주에서 신문지국을 경영하고, 고리대금업에도 손댔다. 소규모 사업마저 실패했다. 음주(飮酒)에 젖은 채 생활무능력자로 빈둥거렸다. 등 뒤에서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수근 댔다. 무명과 생의 부실함이 키운 설움은 깊어 한이 되고 독이 되었던가. 애달피 고운 비 올 때 시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소월은 서른두 살에 다량의 아편을 삼키고 설움 많은 생을 끊었다. <장석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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