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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이회창 총재와의 조찬, 그리고 문재인

중앙일보 2015.03.18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현재 ‘중앙일보 야당팀장’인 필자는 1999년 무렵 야당팀의 막내였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 출입하는 입사 4년차였다.



 그때는 출근길과 퇴근길 정치인의 집을 찾는 게 일상이었다. 양측이 모두 불편한 이 ‘구석기시대적인’ 취재 방식은 이미 사라졌지만 당시엔 그게 대세였다. 가회동 이회창 총재의 집으로 출근했다가 밤엔 신경식 사무총장의 연희동 집에 들렀다 퇴근하는 식이었다.



 한나라당은 명실공히 ‘이회창 1강 시대’였다. 97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98년 여름 정계로 복귀한 그는 여전히 ‘보수의 희망’이었다. ‘제왕적 총재’로 불리며 대권 재수를 준비 중이었다.



 까마득한 선배 기자들과 함께하는 이 총재와의 조찬은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카리스마 때문인지, 완고한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막내 기자가 감당하기에 그는 너무 무거웠다. 선배들이 뭘 물어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수저가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만 들리는 숨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이회창 대세론’은 여전했지만 국민들은 그를 편하게 느끼지 않았고, 필자의 기억에 그의 참모들조차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흐트러질까 봐 비를 한 방울도 맞으려 하지 않는다” “차 속에서도 머리만 가다듬는다”는 확인 불능의 악소문이 늘어갔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 완고하고 딱딱한 이미지가 국민들 사이에서 굳어졌다. 결국 2002년 말 그의 두 번째 도전도 실패로 끝났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대권 재수의 길을 막 시작했다. 2월 대표 경선 라이벌이던 박지원 의원은 “서둘러 복귀해 두 번 실패했던 이회창의 길을 가겠다는 거냐”며 문 대표의 출마를 비판했다. 물론 이 총재와 문 대표를 직접 비교하기는 힘들다. 지지기반이나 스타일이 워낙 다르고, 이미지 역시 판이하다. 하지만 손에 반쯤 쥐었던 대권을 간발의 차로 놓쳤던 경험은 그에게도 자칫 독이 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갈 수도, 참모들이 그의 주변에 불통의 벽을 쌓을 수도 있다. ‘소통’보다 ‘보안’ ‘비밀’이 강조될 수도 있다.



 ‘마음씨 좋은 시골 아저씨’ 같은 문 대표지만 최근 몇 차례 공개적으로 짜증을 냈다. 이완구 총리 청문회 때 ‘청문위원들을 응원차 방문하시라’는 참모의 건의에 “인준할지 말지 방침도 결정되지 않았는데 거기를 왜 가느냐”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여론조사로 총리 인준을 결정하자”는 그의 제안이 역풍을 맞은 뒤 당내엔 “앞으로 문 대표가 기자들의 즉석 질문을 받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가 돌았다. 보안을 이유로 심야 최고위원회의 참석 범위를 좁힌 데 대해서도 일부 당직자는 불만을 토로한다. 아직 2년9개월이나 남은 대통령 선거, 먼 길을 가려면 몸에 힘을 빼고 좀 더 경쾌하게 가시는 게 어떨까. 지금의 막내 기자들이 문 대표를 16년 전 이 총재처럼 느끼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서승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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