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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뒤 경험 살릴 기회 주되, 로비 우려 있는 자리는 취업 더 엄격히 막아야”

중앙일보 2015.03.17 00:33 종합 10면 지면보기
박석환(60) 전 주영대사는 지난해 8월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에서 ‘취업제한’ 판정을 받았다. 2013년 6월에 퇴직한 그는 한국가스연맹 사무총장에 내정돼 심사를 요청했다. 그가 파악한 불합격 이유는 ‘가스연맹 회원사 중 외교부 부속 건물을 지은 회사가 있어 퇴직 전 업무와 관련성이 있음’이었다. 박 전 대사는 “외교부 차관 재직 때 그 회사와의 계약을 연장하는 서류에 서명했다. 전임자가 책임진 원계약의 연장이었을 뿐 나는 해당 건설사에 아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4급 이상(경찰·소방·세무·건축 등 인허가 관련 업무는 7급 이상)으로 퇴직한 공직자가 2년 내에 일정 규모 이상 기업으로 이직하려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반퇴 시대] 좁아진 공무원 재취업 길
세월호 이후 재취업 심사 깐깐해져
불합격률 1년 새 8.4%서 25.3%로
31일부터 제한 대상·기간 늘지만
여전히 직급, 퇴직 뒤 기간만 따져
전관예우 관행 완전 차단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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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에는 박정연(61)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업무이사가 삼성생명 고문직으로 가려다 취업 심사에서 탈락했다. 박 전 이사는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실손보험 문제점을 고치는 데 기여하고 싶었는데 길이 막혔다. 병원 재취업이라면 모를까 보험사로의 취업을 문제 삼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며 억울해했다.



 두 사례 모두 지난해 세월호 사건 이후 문이 좁아진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실태를 보여 준다.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합성어) 문제가 대두된 데 따른 것이다. 김춘진(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입수한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자료(2010년 1월∼2015년 2월)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 2월까지 불합격률은 25.3%였다. 이전 불합격률 8.4%의 3배 수준이다. 그 사이 규정이 바뀌지는 않았다. 세월호 이후 교체된 공공기관 자리 84곳엔 퇴직 관료 15명만이 들어갔을 뿐 42명은 교수·연구원 출신, 12명은 정치권 출신이었다. 퇴직 관료가 공공기관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통로는 더욱 좁아진다. 이달 31일 이후 퇴직하는 공무원에 대해 취업 규제가 강화된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강화된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취업제한 기간은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난다. 심사 대상 기관은 일정 규모를 넘는 영리 사기업체에 시장형 공기업, 안전·인허가·조달 관련 공직 유관단체, 대학(교수는 예외), 종합병원 등이 추가된다. 2급 이상 고위직은 업무연관성을 따질 때 퇴직 전 ‘소속 부서’의 업무에서 ‘소속 부처’의 업무로 범위가 넓어진다.



 퇴직 공무원의 민간 재취업제한이 그동안 관행화됐던 전관예우나 민관 유착 문제를 해소하는 데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최근 방위사업 비리로 수사를 받고 있는 권모(61) 전 공군 준장의 사례는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제한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전역 다음 날 SK C&C 상무로 이직했다. 취업 심사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임의 취업’한 것이다. 2010년 이후 임의 취업한 퇴직자는 39.8%에 이른다. 권씨는 지난해 일광그룹 계열사 고문으로 취임했는데, 공직에서 퇴직한 지 8년 만이다. 김모(66) 전 기무사령관은 2006년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2010년 일광그룹 계열 연예기획사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강제상(한국인사행정학회장)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퇴직 공직자 취업제한제도가 큰 고기는 못 낚고 잔챙이만 걸러내고 있다. 공직자와 기업 경영자의 인식 전환이 전제되지 않은 제도는 늘 미봉책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공직자의 재취업제한이 직급이나 업무, 퇴직 후 기간만을 따질 뿐 취업 이후 행위나 활동은 방치하는 데 있다. 윤태범 한국방송대 행정학과 교수는 “취업제한 제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계적인 규제 적용보다는 이해 충돌이 없는 경우에는 취업을 허용하되 구체적인 행위를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도 “숙련된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과 전문성은 없으면서 영향력만을 행사하려는 공무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며 “로비를 위한 자리는 엄격하게 규제하고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의 재취업은 살려 주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했다.



이상언·박현영 기자 lee.sang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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