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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법은 최소한의 도덕

중앙일보 2015.03.17 00:03 종합 28면 지면보기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나이 지긋한 교수, 사업가, 교장 선생님 등과 함께한 자리에서 간통죄 위헌 결정이 화제에 올랐다. 성도덕이 땅에 떨어질 거다, 법조인들이 전통 윤리를 무시하는 거냐, 가정이 파괴될 것이다, 간통죄가 폐지된 날 나이트클럽에서 유부녀들이 축배를 들었다더라. 묵묵히 듣던 나는 10여 년 전에 담당했던 두 사건을 떠올렸다.

 40대 후반의 대학 교수 부인이 죄수복을 입고 법정에 섰다. 간통 혐의다. 중매 결혼 후 평생 바깥세상을 모른 채 두 아이를 키우며 관상용 화초처럼 살아 온 사람이었다. 법정에서도 자신을 방어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핏기 하나 없는 얼굴로 식물처럼 서 있었다. 상대방은 자녀 교육 상담을 빌미로 그녀에게 접근한 학원 강사였다. 증거물로 강사의 집에서 압수된 비디오테이프가 제출되었다. 강사는 방에 소형 카메라를 설치한 채 정사 장면을 촬영했다. 영상 속의 그녀는 촬영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과 죄책감, 두려움이 교차하는 영상 속 그녀의 표정을 보자 나는 문득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보고 있는 듯한 불편함을 느꼈다. 경찰, 검사, 변호인. 그동안 도대체 몇 명이나 이 표정을 지켜본 것일까.

 또 한 사건은 영장실질심사 사건이었다. 60대 노신사가 간통 현행범으로 붙잡혀 왔다. 상대방은 50대 후반의 여성. 우연한 재회 후 만남을 이어온 고향 마을 첫사랑이었다. 증거로 제출된 사진 한 장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심부름센터를 동원해 남편의 뒤를 밟던 부인은 경찰관을 대동해 여관방을 덮쳤다. 갑작스레 방문이 열리고 낯선 사람들이 구둣발로 쏟아져 들어온다. 놀란 노신사는 발가벗은 채 이부자리에서 일어난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노신사는 상황을 깨닫고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방 한가운데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서 있다. 자수성가해 지역 사회에서 봉사와 자선 활동을 끊임 없이 해 온 한 개인은 거기 없었다. 그저 플래시와 구둣발 사이에 무력하게 놓여 있는 고깃덩어리 한 덩이만 있었다. 주름진 얼굴, 튀어 나온 배, 축 늘어진 치부.

 인간의 내면에는 강제로 공개되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밀실이 있다. 국가형벌권의 대상이 된 자에게는 그 밀실이 허용되지 않는다. 광장에 내걸릴 뿐이다. 그래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모든 것을 형벌로 다스리는 곳에 법은 있으되 개인은 없다. 상념에 빠진 내게 아까 제일 비분강개하던 어른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런데, 이제 바람 피우다 걸리면 대신 위자료가 대폭 올라가는 거유? 재산분할도 많이 해줘야 하나?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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