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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view &] 아흔네 살 신격호 회장의 마지막 염원

중앙일보 2015.03.17 00:02 경제 8면 지면보기
표재용
산업부장
아흔을 훌쩍 넘긴 노기업인에게 이런 비유가 적절할진 모르겠다. 재계를 오래 취재해온 고참 기자들에게도 그는 전설 속 ‘성(聖)기사’처럼 존귀한 인물이다. 언론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어서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국내 대기업 총수이자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기업인임에도 말이다. 대표적인 은둔형 경영자라고 할까. 그런 그가 얼마전 모처럼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장남을 경영 일선에서 하차시키면서다. 그룹내 그의 존재감이 아직도 절대적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국 못지않게 활발히 사업을 펼치는 일본에선 시게미스 다케오(重光 武雄) 란 이름으로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롯데그룹 창업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이다.



 열아홉살 되던해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간 그가 일본롯데를 세운건 1948년이다. 이어 60년대 후반 한국에 지금의 롯데그룹을 설립했다. 노출을 꺼리는 이유는 분분하다. 우리말보다 일본어가 더 능숙한 탓에 말실수를 할까봐 공개석상을 피한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그 때문은 아닐 것이다. 2년전쯤 큰수술을 받은뒤 거동이 이전같이 않아서다. 그럼에도 그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틈나는 대로 찾는 곳이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 제2 롯데월드다. 완공되면 남산보다 높은 123층짜리 초고층타워다. 바로 며칠 전 100층까지 지어졌다. 555m 층고를 자랑하는 이 빌딩은 예정 대로라면 내년 말쯤 제모습을 드러낸다. 기자도 지난해 여름 메인 빌딩 공사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안전모를 쓰고 찾은 메인 빌딩은 당시 70여 층까지만 올라간 상태였다. 그럼에도 까마득한 아래로 석촌 호수와 롯데월드가 마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처럼 아기자기하게 보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빌딩은 신 총괄회장에겐 일생의 마지막 숙원 사업이다. 가장 높은 마천루를 세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염원이 담겨 있다. 그런 이곳이 깊이를 가늠키 힘든 구설의 늪에 갇혀있다. 착공 무렵부터 석촌호수가 깨진독의 물처럼 빠져나간다는 괴담에 휩싸인건 서막에 불과했다. 서울 송파구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크고 작은 싱크홀의 주범이란 오해를 사기도 했다. 실제로 안전 부주의로 인명사고도 없지 않았다. 급기야 수족관과 영화관이 개장 직후 안전 논란에 부딪쳐 기약 없는 휴업에 들어갔다. 공연장 공사도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런 상황까지 몰린데엔 롯데 측의 책임도 크다. 안전에 완벽을 기하지 않은 탓이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현안이나 루머를 해명하는데도 소극적이었다. 한마디로 뒤떨어진 소통과 대응 방식이 화를 더 키웠다. 사실 그건 신 총괄회장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롯데의 경영인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잘한 일도 외부에 자랑하듯 알리지 말라는게 회사의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그게 요즘은 안통하더라. 소통의 시대로 바뀐걸 잘 몰랐다….” 한국 최고의 랜드마크가 되기 위해선 완공 목표를 지키는 일 못지않게 박수와 응원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신 총괄회장이 일생의 염원을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완성키로 결단을 내린 점 만큼은 높이 사고 싶다. 조심스럽지만 ‘수구초심(首丘初心)’의 심정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도 그건 일본에서도 거대 기업을 일궜고 현지 정·재계 인사들과 격의없이 만나는 유명인사지만 단 한번도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이중 국적으로도 일본사람이 된 적이 없다고 한다. 귀화를 하지 않으면 주류사회에 끼워주지 않기로 유명한 열도에서 말이다. 그런 그가 제2롯데월드에 쏟아붓는 돈은 4조원쯤 된다. 지난해 초 만난 70대 재일교포 기업인이 해준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들었다는 ‘청년 신격호’스토리다. 이 교포 기업인의 모친은 일제 강점기 때 일찌감치 일본으로 건너와 장사를 했다고 했다.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 막 건너왔을 당시엔 사업수완이 있는 재일교포들이 파친코 사업에 몰렸다. 그러나 그는 그쪽엔 눈길도 안줬다더라. 대신 군정 통치를 위해 주둔한 미군이 씹던 추잉껌을 싸게 만들어 일본 소비자들의 마음을 샀다. 그것으로 사업의 기틀을 닦았다. 그는 천생 기업인이다.”



 올해 아흔네 살인 그가 동해를 넘나들며 보여준 기업가 정신을 제2롯데월드에서도 발휘해줬으면 한다. 소통을 보태서 말이다. 그래서 모두가 찾고 싶어하는 명소로 거듭날 수 있길 바란다.



표재용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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