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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일가스 맷집 탄탄 … 힘 못쓰는 '알 나이미 도박'

중앙일보 2015.03.17 00:02 경제 4면 지면보기
지난해 11월 알리 알 나이미(80·사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수요 감소와 생산량 증가로 인한 국제 유가 하락에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유가는 자유 낙하했다. 지난해 6월 이후 국제 유가는 60% 이상 하락했다. 15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WTI) 4월 인도분은 전날보다 2.8% 하락한 배럴당 43.57달러에 거래됐다.


국제유가 8개월 새 60% 하락해도
미국 업체 고사시키려 감산 안해
장비·기술 표준화로 저가 버티기
생산량 14% 되레 늘린 업체도

 사우디는 그동안 ‘국제원유시장의 안전망’이었다. 생산량을 조절해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스윙 프로듀서’의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우디가 입장을 바꾸며, 저유가 속 ‘적자생존’의 시대가 도래했다.



 사우디가 겨냥하는 적은 분명했다. 국제유가의 고공행진 속에 뛰어든 고비용 원유 생산자들, 특히 미국의 셰일업체였다. 알 나이미 장관은 “고비용 생산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이 중동 국가의 역할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저유가의 충격에도 사우디는 여유가 있었다. 7500억 달러에 이르는 두둑한 외환보유액에다 낮은 생산원가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 줬기 때문이다. 사우디의 승리는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저유가를 감당할 수 없는 미국 셰일업체가 백기 투항하는 순간은 곧 다가올 듯했다.



 하지만 알 나이미의 도박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상대의 맷집이 생각보다 강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시간) “국제 유가 하락에도 미국 셰일업계는 별다른 타격이 없다”고 보도했다.



 유가 하락에 이익이 줄어들며 미국 셰일업체는 정리해고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추 건수도 줄었다. 미국 내 셰일오일 시추 설비 가동대수는 최고점을 기록한 지난해 10월에 비해 46%나 감소했다. 그럼에도 생산량은 크게 줄지 않았다. FT에 따르면 EOG리소스는 올해 투자를 40% 축소할 계획이지만 생산량은 3% 정도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천연가스업체 헤스는 투자를 14% 줄였지만 생산량은 오히려 12%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텍사스 남부 이글포드와 페르미안의 신규 유정의 리그(시추설비)당 생산량은 각각 24%, 30%씩 늘어났다. 미국 셰일업체의 생산성이 높아진 비결은 비용 절감이다. 장비와 기술을 표준화해 원유를 생산하면서 비용을 낮췄다. 또한 패드 드릴링(채굴설비를 조금씩 이동시켜 주변의 셰일오일을 생산하는 기술) 등 기술의 발전도 경제성을 끌어올렸다. 생산성 있는 유정에 투자를 집중하고 수압파쇄기 등 장비와 서비스 공급자에게 단가 인하 압력 등을 가해 생산성을 높였다. 아담 시민스키 EIA 청장은 “배럴당 100달러선에서 이뤄지던 셰일오일 생산이 50~75달러에서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유사 애니의 전 부사장인 레오나르도 마우게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미국 셰일 혁명의 실제 잠재력을 믿지 않았다. 셰일업체의 힘을 과소평가했다”고 말했다. 셰일업체 고사 전략이 사우디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셰일업체의 한 임원은 “저유가로 셰일업체를 고사시키려는 전략이 (구조조정 등을 거친) 미국 오일산업을 더 강하게 단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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