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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순간 계좌이동

중앙일보 2015.03.17 00:02 경제 2면 지면보기


회사원 김국희(32)씨는 입사할 때 인사팀에서 만들어준 월급통장을 8년째 쓰고 있다. 얼마 전 정기예금을 새로 가입하려고 은행을 찾았다가 서운한 마음만 안고 돌아섰다. “주거래 고객이라고 해도 단 0.1%포인트도 우대 금리를 해줄 수 없다고 하더라. 이자율 자체가 워낙 낮아서라고 설명은 하는데 그동안 저축하고 거래한 돈만 얼마인데….”

9월부터 간편한 '계좌 갈아타기'
카드사·이통사 따로 연락 안 하고
이체 정보 확인 뒤 한 방에 바꿔
은행들 주거래 고객 잡으려 경쟁
수수료·대출금리 깎고 이자 얹어



 주거래 계좌를 바꾸는 불편함 때문에 한 은행에 잡혀있던 김씨 같은 고객이 ‘한풀이’를 할 순간이 다가 오고 있다. 6개월 후면 수백 조원 월급통장 시장에 자리했던 은행 간 벽이 사라진다. 오는 9월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서다. 이름 그대로 주거래 은행 ‘계좌’를 손쉽게 ‘이동’하는 제도다. 통신사 번호이동제와 비슷하다. 그동안 주거래 계좌를 바꾸려면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공과금, 카드대금, 보험료, 통신비 같이 계좌에 물려있는 이체가 문제였다. 바꾸려면 업체에 일일이 연락해 신청하고 바꾸고 또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했다. 하나라도 놓쳤다간 잔액이 없는 계좌 때문에 연체기록이 남거나 엉뚱한 데서 돈이 빠져나가는 일이 생기고 만다. 이런 번거로움 때문에 별 다른 혜택이 없는데도 주거래 은행을 유지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주거래 은행 갈아타기가 훨씬 쉬워진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금융결제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출금이체정보통합관리시스템(www.payinfo.or.kr)’에 들어간다. 주민등록번호와 공인인증서로 본인 확인 절차를 밟는다. 주민등록 정보를 수집하는 건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그러나 계좌 정보를 확인하려면 주민등록번호가 꼭 필요하다. 정부가 법적 근거에 부합한다며 예외로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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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뒤 자신의 계좌에 걸려있는 출금 이체 정보를 확인한다. 정확히 어느 회사에서 어떤 명목으로 계좌에서 돈을 빼내가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사이트에서 기존 주거래 은행 계좌를 해지하고 새로운 계좌를 등록·변경하면 끝이다. 카드사, 통신사나 한국전력에 ‘이체 계좌를 바꿨다’고 하나하나 연락할 필요가 없다. 주거래 계좌를 설정하면 출금 이체 정보는 자동으로 새 계좌로 옮아간다. 계좌 이동은 통합관리시스템뿐 아니라 각 은행 인터넷뱅킹 사이트를 통해서도 가능하다. 은행 지점을 방문해서도 처리할 수 있다. 본격 시행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다. 오는 9월 예정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결제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출금이체정보통합관리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9월 정식 개통 전까진 주거래 계좌에 연계된 출금 이체 정보를 조회하는 것만 가능하다.



 현재 국민·신한·하나·외환·우리·기업·산업·농협·수협 등 19개 은행의 계좌를 통합관리시스템에서 조회할 수 있다. 올 5월이면 우체국·새마을금고·신협·상호저축중앙회·산림조합 등 남은 금융회사가 모두 포함된다. 아직은 출금 이체 정보 가운데 통신요금(올레KT, LG유플러스, SK텔레콤)과 카드대금(롯데, 신한, 현대, 비씨, KB, 삼성, 하나, 씨티, 농협)만 확인할 수 있다. 6월 조회 대상 업체 수는 더 추가될 예정이다. 금융위원회 이윤수 은행과장은 “8만 개에 달하는 금융사와 업체 간 전산망을 연계하는 방대한 작업이라 시간이 꽤 걸린다. 은행과 카드, 보험, 통신사를 중심으로 올해 계좌 이동 시스템을 갖출 계획”이라며 “내년이면 전체 업계로 계좌 이동 대상을 확대하는 작업이 마무리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올해나 내년 초 계좌 이동을 할 생각이라면 이후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게 좋다. “규모가 작은 업체는 자동으로 계좌 연계가 안될 수 있기 때문에 제도가 자리 잡기 전까진 빠지는 부분이 있는지 챙겨보는 걸 권한다”는 게 금융결제원 설명이다.



 계좌이동제 시행을 앞두고 은행은 갖가지 ‘당근’을 내세우며 고객 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은행을 갈아탈 땐 ▶우대 금리 적용 ▶수수료 감면 ▶계열 카드·증권·보험사 연계 혜택 등을 꼼꼼히 따져보는 게 좋다. 은행마다 주거래 계좌를 새로 트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우대 혜택은 다르다. 이체·출금 수수료 감면은 기본이다. 우리은행은 신용대출을 받는 주거래 고객에게 이자 1%를 ‘캐시백’ 형태로 돌려준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신청하면 금리를 연 0.5%포인트 깎아준다. 기업은행은 월급통장을 개설한 고객에게 예·적금 금리를 최대 0.5%포인트 더 얹어준다.



 계좌이동제 시행에 은행이 주목하는데는 한층 커진 수시입출식 예금 시장 규모도 한몫 했다. 저금리에 마땅히 투자할 곳 없다 보니 수시입출식 예금에 돈을 그냥 묻어두는 사람이 늘었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수시로 돈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예금(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요구불 예금) 잔액은 올 1월 504조873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 457조1730억원과 비교해 5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이자는 낮게 주는데 반해 이후 펀드, 연금보험 등 다른 금융상품으로 연계하기 좋다는 점에서 은행은 월급·연금통장으로 대표되는 주거래 계좌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재테크’보다 ‘빚테크’가 앞서는 요즘이라 대출 이자와 수수료 혜택에 따라 주거래 계좌 갈아타기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기업·신한·외환 등 대부분 은행에서 전담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전략을 짜는데 분주하다. 우리은행 고영배 개인영업전략부장은 “계좌이동제 시행에 맞춰 주거래 계좌를 새로 만드는 고객 유치뿐 아니라 기존 주거래 고객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꾸준히 혜택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조현숙·심새롬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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