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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일본은 돈 풀어 과거 지우려 하나

중앙일보 2015.03.16 00:03 종합 29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정의화 국회의장이 방미 중이던 지난 4일(현지시간) 친한파 미국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미 의회 연설에 반대한다는 입장과 함께 “일본 정부가 5억 달러를 들여 미국 역사교과서 등 과거사에 대한 수정에 나서고 있다”고 전한 모양이다. 그는 “역사를 부정하면서 역사 바꾸기에 예산을 들인다면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혼다 의원은 2007년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의 미국 하원 통과를 성사시킨 주역이다.



 일본 정부의 과거사 로비설은 혼다 의원만의 얘기가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12일 “일본 정부가 미국의 조지타운대, MIT 공대 등을 포함해 9개 해외 대학에 일본학 연구 지원용으로 1500만 달러의 예산을 책정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보수적인 아베 정부의 전시 과거사 문제에 대한 편향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라고 해석하면서 “비판하는 쪽에선 이를 역사 세탁 시도로 본다”고 덧붙였다. 기사에 따르면 조지타운대, MIT 공대는 각각 500만 달러의 연구자금을 받고 일본 정부의 ‘재팬파운데이션’도 미국 등 해외 6개 대학에 각각 2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일본이 엄청난 돈을 풀기로 하면서 미국 워싱턴의 로비단체들은 신이 난 모양이다. 미국 내 풀뿌리 시민운동단체인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석 이사는 “일본 쪽과 접촉해 온 로비업체들이 계약을 따내기 위해 일본 정부에 눈도장을 찍으러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를 무대로 공공외교 차원에서 예산을 쓰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일본 국익을 위해 자비를 들여 해외의 일본학 발전을 지원하고 미·일 전문가들의 연구를 돕는 것은 제3자가 비판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하지만 혼다 의원의 우려에서처럼 ‘일본 알리기’가 아니라 ‘과거사 지우기’가 목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동북아의 과거사 갈등을 미국으로 확장시켜 ‘돈 전쟁’으로 오염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섣부른 돈 풀기는 잊혀졌던 태평양전쟁의 기억을 되살리는 역풍을 부를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를 부정하려다 미군 전쟁포로 학대로 번질지 모른다. 데니스 핼핀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지금도 웨스트버지니아주에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미군 전쟁포로가 생존해 있다”고 밝혔다. 어느 나라건 공공외교는 장점 알리기로 가야지 단점 지우기를 추구해선 논란을 야기한다. 그간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아시아의 대표 선수로 인정받았던 이유는 과거를 잘 지워서가 아니라 현재를 잘 만들었기 때문임을 일본 정부가 깨달았으면 한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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