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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지하철·막걸리 … 한국인에게 다가가는 외국 대사들

중앙선데이 2015.03.15 00:14 418호 7면 지면보기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선 ‘리퍼트 붐’이 일었다. 각계각층의 시민들이 그의 쾌유를 기원했다. 그의 ‘공공외교’가 성공했다는 평가다. 사진은 14일 트위터에 올라온 리퍼트 대사와 가족. 리퍼트 대사는 트위터에서 “성원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뉴시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에 대한 당국의 수사가 한창이다. 경찰은 14일 피의자 김기종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김씨가 평소 갖고 있던 반미 감정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며 “리퍼트 대사가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라 범행 대상으로 삼고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밝혔다.

‘리퍼트 현상’ 계기로 본 주한 외교관의 공공외교

이번 사건은 자칫 우리의 전통적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를 크게 악화시킬 수 있는 악재였다. 사건 발생 초기 CNN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리퍼트 대사의 피습사건을 크게 다루면서 사건의 심각성을 부각했다. 한·미 정부는 피습사건이 개인의 비이성적인 판단에서 발생한 것에 무게를 두면서 양국 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리퍼트 대사에 대한 지지와 미안함이 담긴 ‘리퍼트 붐’이 일어난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비는 시민들의 기원이 쏟아졌으며 이를 위한 퍼포먼스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가 입원했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을 찾는 일반 시민도 적지 않았다. 리퍼트 대사의 피습사건이 이런 방향으로 전개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지난해 10월 한국에 부임한 리퍼트 대사의 ‘공공외교(Public Diplomacy)’ 활동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번 현상이 그가 벌인 공공외교의 성공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미국, 장갑차 사건 후 공공외교 강화
이화여대 조기숙(국제학부 교수) 공공외교센터장은 “리퍼트 대사는 한국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들에게 한국식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사생활을 소셜네트워크시스템(SNS)에 공개하는 등 한국인들과 친밀한 유대를 맺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으며 이런 평소의 활동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또 “미 정부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반미시위 이후 공공외교에 더 큰 비중을 뒀으며 크리스토퍼 힐 대사 이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공공외교를 활발히 벌이는 국가로는 미국·영국·노르웨이·스웨덴·호주 등이 꼽힌다. 미국과 영국은 전통적인 강대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하지만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앞세운 하드파워만으로는 그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양국은 ‘외교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사는’ 소프트파워 외교를 적극 펼쳐왔다. 노르웨이·스웨덴·호주·캐나다 등도 공공외교에 강하다. 중견국가로서 ‘틈새외교(Niche Diplomacy)’를 통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국가들은 우리나라의 공공외교의 지향점 설정에 도움이 될 만한 사례가 되고 있다.

영국 공공외교 정책의 단면은 외교관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잘 드러난다.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는 지난 2월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 입국한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공식 업무 시작 전 그는 부산의 한 가정에서 3주간 홈스테이를 했다. “한국의 평범한 가정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미 헤이 대사는 1년 넘게 한국어를 공부했다. 최근에는 한국인들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카카오톡 계정도 열었다. 그가 한국의 각계각층 인사들과 한식집에서 만나 삼겹살을 먹으면서 소주·막걸리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호주 정부가 공공외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국에 대한 이미지가 영국과 미국의 파트너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것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호주 정부는 차별화된 이미지 메이킹 전략에 몰두했다. 각국에 주재하는 대사들도 이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빌 패터슨 주한 호주대사의 경우 주말에는 등산을 즐기고 대중교통 수단도 스스럼없이 이용한다. 시민들의 정서를 직접 체험하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4일에도 K리그 개막전 관람을 위해 아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공공외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0년을 ‘공공외교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우리의 공공외교는 기존의 정무·경제외교와 함께 외교의 3대 축으로 설정됐다.

우리 정부의 공공외교 목표는 외교 대상국 국민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 신뢰와 호감을 얻고, 우리 외교정책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키워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로서 개발도상국에는 성장모델이 되고 또 선·후진국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한류를 바탕으로 우리의 전통과 현대 문화를 적극 알리는 것도 목표다. 이를 위해 세미나·공연·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다.

한국, 현지 언어구사 외교인력 부족
하지만 이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우선 우리 외교관들의 공공외교에 대한 인식부족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아직도 본국에서 출장 온 고위 인사들에 대한 ‘의전’이 업무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또 영어 등 주요 언어를 제외하면 현지어를 구사할 수 있는 외교관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선진국과 개도국을 오가며 근무하는 소위 ‘온탕·냉탕’식 근무지 발령도 문제다. 국익보다는 외교관들의 이해관계를 앞세운 전근대적인 인사라는 지적이다.

또 공공외교 활동이 지나치게 문화 분야에 국한돼 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사실 외교통상부의 문화외교국이 공공외교를 주도하고 있는 구조상 다양한 공공외교를 펼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문화외교국이 공공외교와 관련된 통합적인 조정과 통제 능력을 포괄적으로 갖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맞춤형 공공외교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반도 관련 이슈와 지역별 이슈, 글로벌 이슈를 구분해 적재적소에 필요한 전략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외교의 대상이 지나치게 북미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한국학에 대한 지원과 한국 관련 프로젝트 등의 지원 범위를 유럽과 저개발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현재 우리 정부의 공공외교는 난맥상에 빠져 있는 분위기다. 누가 업무를 맡느냐에 따라 정책 추진력이 달라진다. 외교부 내의 관료주의와 파벌게임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현재 일본은 과거사 문제 등을 놓고 공격적으로 공공외교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공공외교를 일종의 ‘외교적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외교(Public Diplomacy)=공공외교의 개념은 과거에 비해 크게 변했다. 미·소가 대립했던 냉전시대의 공공외교는 일방적인 국가선전(프로파간다)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공공외교는 상대국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활동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과거와 구분해 ‘신(新)공공외교’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최근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급속한 발달은 이런 추세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시민이 여론 형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어 국가 대 국가의 외교만으로는 외교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외교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각국은 민관협력(PPP)을 통한 공공외교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교육 등 소프트한 분야에서의 협력은 물론 경제 지원과 원조 등에서도 신 공공외교 전략이 깔려 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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