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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갑돌이가 을순이를 만났다면

중앙선데이 2015.03.15 02:07 418호 27면 지면보기
갑돌이와 갑순이는 서로 사랑을 했으면서도 왜 맺어지지 못했나. 어릴 때부터 궁금하게 생각하던 내용이다. 그냥 사랑은 그렇게 아픈 것인가보다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 50이 되어서 이유를 깨달았다. 둘 다 갑이 되려고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잠정적으로나마 갑돌이와 을순이, 아니면 갑순이와 을돌이가 될 수 있었더라면 맺어질 수 있었을텐데, 둘 다 갑이 되고자 했기 때문에 사랑을 했으면서도 맺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선남선녀가 결혼을 하면 오히려 더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둘 다 잘난 척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 중에 ‘갑질’이라는 게 있이다. 이전에도 갑과 을이란 말이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힘있는 이들의 권한 남용사건 이후 갑의 행위를 ‘갑질’이라고 부르며 무조건 나쁜 것으로 치부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와 같은 어휘는 계층간 갈등을 조장한다. 뿐더러 사회주의 식으로 사회를 무조건 계급적으로 규정하고 계급투쟁을 장려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된다. 물론 누구나 갑이 되고 싶어하고 을의 입장을 한탄한다면 그건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건강한 심리도 아니다.

모든 사람은 갑도 되어 보고 을도 되어 보아야 한다. 어떤 초등학교는 일부러 반의 모든 학생이 돌아가며 반장을 하도록 하는데, 바람직한 교육방식이라고 본다. 군대든 회사든 모든 조직에 속한 사람은 남의 지시를 따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남을 통솔하기도 한다. 성경에 예수님을 찾아온 백부장이 자기도 남의 휘하에 있고 자기 밑에도 부하가 있다고 말한 것과도 같다. 을의 경험을 통해 순종과 겸손을 배우고, 갑의 경험을 통해 리더십과 책임감을 배운다. 잘못된 갑질의 피해를 겪어 봐야 스스로 갑이 되었을 때 권위를 남용하지 않는다. 남의 밑에서 부목사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담임목사가 되면 안하무인이 될 위험이 있다.

하나님은 수퍼갑이다. 그건 피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부인하려는 사람들 중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아서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 밑에서 을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경우도 있다. 하나님 같은 전능한 존재를 믿어본 적 없는 사람은 겸손을 배울 기회가 없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절대 을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리하거나 억울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면서도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영광을 얻으셨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을 하나님은 높이신다. 그건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항상 수퍼 갑질을 행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죄 많은 인류에 대해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 인간의 완악함에 대해 누가 가슴 아파하는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기독교가 가르치는 것이 그것이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의 대상 앞에서 을이 돼 버린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을의 입장을 감수하신다. 자기 멋대로 사는 인간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갑질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인간을 참으시는 이유는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늘 갑의 인생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인생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엔 내 맘대로 안 되는 일과 내 맘대로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오히려 자신을 비우고 낮아질 때 갑질로는 해결할 수 없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진리는 굳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김영준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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