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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환 칼럼] 사죄는 일본의 양심에 맡기자

중앙선데이 2015.03.15 02:31 418호 30면 지면보기
최근 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독일은 과거(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했다”고 일본에 훈수했다. 2차 대전 후 독일이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등 나치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진솔하게 참회하고 당사국들에게 깊은 사죄와 충분한 배상을 했다는 의미다. 아사히신문사의 강연에서 “일본이 역사 문제를 둘러싼 중국 및 한국과의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메르켈의 답변이었다. 이 자리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없었지만 정상회담 파트너였던 그를 염두에 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는 올해 독일과 일본 두 전범국가의 국제적 위상은 이렇게 달라져 있다. 전쟁범죄의 질을 따지자면 독일이 일본을 훈수할 입장은 못된다. 600만명의 유대인을 잔혹하게 인종청소했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를 가진 독일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독일 총리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이처럼 당당하게 일본에 ‘함께 가자’고 권유할 수 있게 된 힘은 바로 사죄에 있다.

전후 독일사는 사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970년 12월 7일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 꿇어 애도를 표한 장면은 압권이었다. 이를 두고 “그 날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10년째 집권하고 있는 메르켈도 기회 있을 때마다 고해성사하듯이 참회의 발언을 했다.

지난 1월 베를린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70돌 연설에서는 “나치 만행을 되새겨 기억하는 것은 독일인의 항구적 책임”이라고 했다.

물론 일본도 사과를 하기는 했다. 50년 전 한·일 수교를 하면서 우리에게 배상금도 지불했다. 무라야마·고노 담화를 통해 식민지배로 이웃나라에 고통을 준 점과 군위안부 제도 운영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독일과 다른 점은 일관성과 진정성에 있다. 사과란 한번 하면 그 이전의 마음가짐으로 되돌아가선 안되는 ‘불가역성’을 지니는 행위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은 가끔 사과하면서도 종종 도발하는 이중성을 보여 왔다. 그 탓에 독일과는 달리 지금까지 과거사 문제로 피해국들과 껄끄러운 관계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과거사를 대하는 독일과 일본의 차이는 이처럼 간극이 크다. 결국 선택은 일본에 달렸다. 사죄를 통해 가장 큰 이익을 얻는 나라는 사죄를 받는 나라가 아니라 바로 사죄를 하는 나라임을 독일이 이미 보여줬다.

우리도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독일의 교훈을 배우느냐, 마느냐는 일본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계속 일본에 사죄를 강요해 봤자 효과가 없다. 일본 우익의 교묘한 ‘피해자 마케팅’에 휘말리면 제3국 눈엔 우리가 마치 떼쓰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칠 위험도 있다. 이스라엘·프랑스·폴란드는 독일에 먼저 사죄를 요구하지 않았다. 독일의 사죄를 받아들이고 용서해 줬을 뿐이다.

우리는 영토 등 국익과 직결된 문제에서는 결코 일본에 양보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 일이 우리의 최고 국익이 걸린 사안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우리가 아베 정부의 태도를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통 큰 결단을 먼저 내림으로써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토대를 조성해야 한다. 이는 비단 대통령이나 정부, 정치가들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도 더 큰 국익을 위해 아량을 베풀 필요가 있다. 사과는 일본의 양심에 맡기자. 금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다. 일본에 백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 백기를 들 일본도 아니다.


한경환 외교·안보 에디터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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